술은 향이다. 혀로 느끼는 맛도 물론 있기는 하나, 술에 대한 기호와 품평은 대체로 향을 기준으로 삼는다. 대중의 기호도가 높고 품평의 대상으로 집중 거론되는 술일수록 그 향의 스펙트럼이 넓다. 와인이 세계의 여러 술 중에서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 복잡한 플레이버 휠에 맞추어 내 입안에서 요동치는 향을 설명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 한국인에게 주어졌던 술들은 대체로 이 향과 거리가 멀다. 특히 한국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인 희석식 소주는 과연 향이라 이름붙일 것이라도 있는지 난감하다. 코 저 안쪽을 지나 뇌까지 찌르는 날카로운 알코올 향에 혀를 때리는 쓴맛, 그리고 그 독한 향과 맛을 죽이기 위해 넣은 첨가물이 혀끝을 들척지근하고 니글니글하게 만든다. 한국인의 음식이, 특히 안주가, 점점 더 짜고 달고 맵게 변화해온 것도 소주 탓이 크다.

원래 소주는 향의 술이다. 쌀로 밥을 짓고 누룩과 물을 더하여 발효한 후 여기에 물을 부으면서 거칠게 걸러내면 막걸리(탁주)이고, 술독 가운데에 용수를 박아 맑은 술을 뜨면 약주(청주)이며, 이 약주를 소주고리에서 달여 진하게 한 술이 소주이다. 막걸리에서 약주, 약주에서 소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알코올만 농축되는 것이 아니라 향도 짙어진다. 나쁜 향은 지우고 좋은 향만 골라 소주에 담아야 하는데, 밥을 지을 때부터 소주를 내릴 때까지 각각의 과정에서 소주의 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는 무수히 많으며, 따라서 좋은 향의 소주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들이 대체로 막걸리는 고급과 하급의 차이에 크게 개의치 않고 약주는 그 차이의 분별에 다소 까다로우며 소주에는 온 감각을 집중하여 까탈스럽게 구는 것이 단지 가격의 차이 때문은 아니다. 술의 종류에 따라 향의 강도가 달리 느껴지니 본능적으로 그리 행동하는 것이다.

소주가 향에서 멀어지게 된 것은 알코올 농축 기술의 발달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술에서 고농도 알코올을 뽑아낼 수 있는 기계가 우리 땅에 들어왔다. 의료나 제조 산업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다. 그 용도로만 쓰면 될 것인데, 고농도 알코올에 물을 더하여 소주를 만들었다. 희석식 소주이다. 농축하였다가 물을 더하는 일이니 맛이나 향이 달라질 것 없을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되도록 순수한 상태의 알코올로 추출을 하다 보니 좋은 향이든 좋지 않은 향이든 다 달아난다. 현재 시판되는 희석식 소주는 주정이라 불리는 95%의 알코올 액에 물과 기타 첨가물을 넣어 만든다.

희석식 소주가 등장하자마자 주류 시장을 크게 점령한 것은 아니었다. 예부터 마셔오면 ‘향의 술’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또 ‘농민의 술’인 막걸리의 수요가 컸다. 1960년대부터 한국은 급격한 산업화가 진전되었다. 농민은 노동자로 신분을 바꾸었고, 노동자에게 ‘일하면서 마시는 농주’는 적절한 술이 되지 못하였다. 퇴근 후 귀가 전까지의 짧은 시간에 취기를 올릴 수 있으면서 노동자의 주머니에도 부담 없는 희석식 소주가 시장을 넓혔다. 맛과 향은 엉망이어도 그 격동의 시대에 서민의 벗이 되어준 것은 분명하다. 희석식 소주나마 없었다면 그 시대는 참으로 삭막하였을 것이다.

희석식 소주 탓에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소주(이를 증류식 소주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불러야 할 필요가 있는가 싶다. 원래 이 술의 이름은 소주이고 희석식 소주가 나오면서 그 분별을 위해 ‘증류식’이라는 덧말이 붙었다. 그냥 소주라 하고, 희석식 소주만 희석식 소주라 부르는 것이 바를 것이다.)는 거의 사망 상태에 이르게 된다. 지역의 몇몇 소주들이 연명을 하였기는 하나 전통주 혹은 민속주라는 범주에 갇히어 현재의 소비자와 소통하는 데 실패하였다.

요즘에 문득 소주의 시대를 맞고 있다. 주점에서 희석식이 아닌 소주를 흔히 마시게 된다. 이 일을 두고 전통주 혹은 민속주에 대한 기호의 회복이라고 보면 안 된다.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소주들은 오히려 지역의 전통주 혹은 민속주 범주 밖에 있는 것들이다. 소주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술은 향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소비자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술 향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말부터의 와인 붐, 그 뒤를 이은 사케 붐, 외국 맥주 붐, 몰트위스키 붐 등등으로 나타났고, 최근에 소주 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 술꾼들의 감각이 점점 섬세해지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 마셨던 소주 중에 화요, 일품진로, 대장부가 흥미로웠다. 셋 다 쌀술이고, 셋 다 개성이 강하다. 화요는 첫 모금에는 알코올 향이 강하게 치는 듯하지만 뒤가 가볍다. 꽃향기가 있다. 일품진로는 오크 향이 강하여 ‘양주 아냐?’ 하는 느낌부터 드나 뒤로 은근한 쌀술의 향이 붙는다. 대장부는 첫 모금에 당장 ‘이건 쌀술!’ 하는 향을 올린다. 쌀로 빚은 약주의 향인데 소주에서 이런 향을 맡는다는 것이 신비롭다. 아주 가벼운 단맛이 올랐다가 뒤끝 없이 뚝 떨어진다.

술맛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국 전통 소주에 대한 수요와 품평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나도 즐겨 마셨다. 그동안에 소주의 질은 꾸준히 상승하였고 시장도 커졌다.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대중화는 요원해 보였다. 소주 특유의 강한 향을 거북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또 가격 문제도 있었다. ‘프리미엄 소주’라는 이름으로 비싸게 팔리니 선뜻 집어들 수가 없었다.

근래에 나온 대장부21이 소주 대중화를 막고 있는 두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목 넘김에 거북함이 없고 코 안쪽으로 치고들어오는 역함도 없다. 순하고 편안하다. 단지 도수를 낮추었기에 얻어지는 효과는 아니다. 소주의 특징인 날카로움이 가볍게 단 곡물 향 덕에 산뜻하게 변하였던 것은 25도짜리 대장부에서도 그랬다. 그러니 웬만한 한국음식과 두루 잘 어울린다. 여기에다 대장부21은 가격이 싸다. 희석식 소주에 조금만 더 쓰면 된다. 맛이며 가격에서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소주 맛을 알릴 수 있는 술로 적합하다.

술의 향은 사람의 향으로 스민다. 좋은 향의 술을 마셔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소주를 마셔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쌀을 원료로 한다는 점이다. 소주 시장이 커지면 농민이 산다.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