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친숙한 동화 중 상당수가 잔혹하거나 성적인 함의를 담고 있었다. 가령 신데렐라의 언니들이 신발에 발을 맞추기 위해 발을 잘라냈다거나, 백설공주가 아버지와 근친상간 관계였다는 식이다. 여러 버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가 각색되다 보니 원형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상당히 잔혹했다는 건 사실인 듯하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만큼 잔혹한 존재도 없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곤충이나 동물에게 폭력을 가한다. 아직 타인의 고통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순수하다, 순진하다는 말은 아직 나와 세상 간의 관계, 더불어 세상의 이면을 깨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아름다운 어둠〉은 작고 아름답고 천진난만한 요정들이 주인공이다. 천진난만함 속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요정 오로르와 엑토르는 차를 마시며 지난 파티에서 서로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대화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그들이 살던 세상이 무너져내린다.

요정들은 영문도 모른 채 세상 밖으로 나오는데, 그들이 살던 세상은 사실 한 소녀의 몸이었다. 숲속에서 잠자던 소녀가 그만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한 것이다(왜 죽었는지 정확히 나오지는 않는다). 소녀의 몸속에서 요정 오로르를 비롯해 다른 수많은 요정이 함께 살게 되었다. 그동안 아무 걱정 없이 살던 요정들은 소녀의 몸이 부패하는 듯 점점 무너지는 현실세계를 마주해 살아가야만 한다.

처음에는 오로르의 헌신적인 리더십 아래 요정들도 서로 돕는다. 이들은 맹수나 배고픔 등 다양한 위험에 맞선다. 시간이 지나며 가장 큰 위협은 바로 그들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허영과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요정 젤리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다른 이를 망설임 없이 희생시킨다. 다른 요정들 역시 배고프다며 친구 요정을 먹기도 하고, 힘없는 곤충의 다리를 뜯어버린다. 요정 중 가장 어른스럽고 총명한 제인까지 다른 요정에게 희생당하자 오로르는 깊은 어둠에 잠식당하고 만다.
 

〈아름다운 어둠〉 파비앵 벨만·케라스코에트 지음, 북스토리 펴냄

아름다운 자태로 잔인함을 뽐내는 그 간극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완성도 높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소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앙증맞은 크기의 어여쁜 요정들이 아름다운 자태로 아무렇지도 않게 잔인함을 뽐내는 그 간극이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오로르가 분노에 못 이겨 아무 잘못도 없는 쥐의 두 눈을 찔러버리는 장면은 보는 이의 심장을 한순간에 후벼 파는 듯 섬뜩하기만 하다.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밝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름다움의 이면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펼쳐낸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스타일의 매력은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를 색으로 멋지게 풀어내거나, 순간적으로 시점을 달리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연출의 묘미에서도 드러난다. 작화는 두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케라스코에트’라는 팀이 맡았다. 이들은 〈보테〉라는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기자명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온라인콘텐츠 팀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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