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아이는 그날도 텔레비전 앞에 앉았고, 방영되는 영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좀 이상한 영화였다. 아가미 달린 양서류 인간이 여자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이야기. 아이의 기분이 아주 많이 이상해졌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때 느낀 ‘아주 많이 이상한 기분’의 정체가 바로 ‘사랑’이란 걸.

둘이 같이 물속을 헤엄치는 장면이 특히 좋았다. 사람이 아닌 것의 곁을 맴도는 사람의 몸짓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아이는 소망했다. 저 둘이 영원히 함께 있게 해주세요. 그러나 이야기의 결말은 소년의 기대와 달랐다. 총을 맞고 혼자 물속으로 사라진 아가미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알 수 없는 상실감으로 바뀌어 마음의 심연에 가라앉았다.

〈해양 괴물(The 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1954)의 아름다운 물속 장면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여섯 살 꼬마가 어른이 되었다. ‘좀 이상한 영화’를 보았으므로 더 이상 여느 일요일과 같을 수 없게 된 그날의 ‘아주 많이 이상한 기분’을 간직한 채 어른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좀 이상한 영화’만 만들어 관객을 ‘아주 많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게 하는 영화감독으로 자랐다.

〈크로노스〉와 〈악마의 등뼈〉가 그랬다. 〈헬보이〉 시리즈와 〈퍼시픽 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그가 필생의 역작을 만들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아니었다.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오래전 그날, 알 수 없는 상실감으로 바뀌어 마음의 심연에 가라앉은 라스트 신. 평범한 사랑이 아니라는 이유로 야멸차게 떼어놓던 그 엔딩을 마침내 마음의 표면으로 길어 올리며 감독은 말했다.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다”라고.

그리하여 2011년. 마흔일곱 살이 되어서야 여섯 살 꼬마의 간절했던 소망을 시나리오에 담기 시작한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쉰 살의 어느 밤, 파티에서 마주친 배우 샐리 호킨스에게 잔뜩 술에 취해 말했다. 오직 당신만을 생각하며 썼다고. 물고기 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고. 배우는 딱 한 단어로 대답했다. 판타스틱! 눈물 나게 아름다운 사랑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아주 많이 이상한 기분’

시각적으로 황홀하고 영화적으로 충만하며 감정적으로 요동치는 이 멋진 영화를 보고 난 뒤,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쳐 밤새도록 떠들고 싶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묻어둔 채 오직 감독의 이야기만 옮긴다. “물은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 사랑 또한 그렇지 않은가? 사랑을 어떤 모양에 집어넣든지 사랑은 바로 그것의 모양이 된다.”

제목이 ‘the shape of water’가 된 이유. 내가 이 영화를 흠모하는 까닭. 이 가혹한 시대가 갈라놓은 세상의 모든 핍박받는 연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어서 나는 이 영화를 권한다. 로저에버트닷컴(RogerEbert.com)의 말처럼 “끝나자마자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라서 자신 있게 추천한다. “어릴 적 난, 사랑에 빠진 그들과 사랑에 빠졌다.” 감독이 고백하듯, 영화란 건 원래 그러려고 보는 거 아닌가. 사랑에 빠진 그들과 사랑에 빠지려고. 이렇게 ‘좀 이상한 영화’를 보고 나서 ‘아주 많이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려고.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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