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집안 숨기려 성을 바꿔 살았다” 정희상 기자 1942년 봄, 중국 시안에 있던 임시정부(임정) 광복군 훈련소에서 한 젊은 여성이 허드렛일을 도왔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독립운동가 남편을 일제 경찰의 흉탄에 잃은 홍매영이었다. 백범 김구 주석이 그를 불렀다. “일제에 남편을 희생당하고 고생하는데 동암 선생도 망명 생활을 하면서 식구를 잃고 홀로되었으니 나이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이 화촉을 밝히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게 어떻겠는가.” 백범은 이렇게 서른 살 홍매영과 예순두 살 동암 차리석의 인연을 맺어주었다. 차리석은 평양 숭실학교 졸업 후 신민회에 가입했다. 1911년... 포항 지진, 그 후 1년 포항·신선영 기자 포항시 흥해 실내체육관 2층 23호. 6.6㎡(2평) 크기의 텐트가 신순옥씨의 임시 거주지다. 신씨는 1년째 대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15일 5.4 규모의 강진 이후 지진대피소로 지정된 이곳에는 지금도 91가구가 등록된 상태다. 주택의 50% 이하가 파손돼 수리 후 거주할 수 있는 ‘소파’ 판정을 받은 ㅎ아파트 이재민 195명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 전체 등록 인원은 208명이다. 흥해초등학교는 컨테이너 14개를 붙여놓은 임시 교실에서 5학년과 6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다. 학교 인근에는 거주 불가 판정을 받... 점쟁이를 자처한 대법원과 12년 투쟁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전 기획실장) 주말 저녁, 냉장고 안을 청소했다. 마침 끓이고 있던 된장국에 고추장 반 숟가락을 넣어야 했던 터라 눈에 들어온 고추장이 반가웠다. 뚜껑 위에 박힌 제조일자는 2014년이었다. 절반 정도 남은 고추장 통에서 적당량을 덜어 된장국에 풀고 뚜껑을 닫다가 ‘산들바람’이라는 상표에 눈길이 멈췄다. ‘그랬지, 산들바람이었지.’ 혼잣말을 하고는 된장국 끓이던 불을 끈 채 식탁 앞에 앉았다. 1㎏짜리 매실고추장 통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011이 선명하게 적혀 있는 문의 전화번호가 새삼스러웠다.12년. 무척 긴 세월이다. 모질다면 피해자 입장일 가난한 나라의 최고급 홍차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내가 두 번째로 여행을 떠난 도시는 홍차 산지로 유명한 다르질링이었다. 인도 제국의 고도이자 첫 번째 여행 도시였던 콜카타에서 기차로 12시간, 다시 지프를 갈아타고 두 시간 반을 이동해야 다르질링에 도착할 수 있었다. 홍차의 본고장에서 먹는 차 맛이 궁금해 동네 카페로 갔다.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탐구심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서 몇 군데 카페에서 더 맛을 보다 다르질링 홍차는 맛이 없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야 말았다. 이 편견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달 후 뭄바이에서 인도 차협회가 운영하는 일종의 안... ‘부모’ 교수와 ‘자녀’ 학생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아버지가 구속됐다. 쌍둥이인 딸들을 위해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다. 셋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다. 아버지는 교사로, 두 딸은 학생으로. 교무실 금고에 시험지가 보관돼 있는 중간·기말 고사 며칠 전, 아버지가 평소 하지 않던 야근을 하며 교무실에 머물렀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이보다 관심은 못 받았지만,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부모-자녀 관계인 같은 대학 교수와 학생의 사례들이 공개됐다. 아버지가 가르치는 수업 8과목을 수강하면서 모두 A+를 받은 아들, 아버지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아버지의 책임·감독하 망설이다 꺼내놓은 1991년 봄의 기억 이오성 기자 한 편의 영화와 소설이 만났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각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통점이 있었다. 어떤 시간과 기억, 그리고 아무도 말하지 않으려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억은 각자 다르지만, 그 시간은 1991년이다. 영화는 10월31일 개봉한 〈1991, 봄〉 (권경원 감독)이다. ‘강경대 정국’ 혹은 ‘분신 정국’이라 불렸던 1991년 5월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13명의 시민과 대학생이 정권에 의해 죽임당하거나,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강기훈씨.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 일컬어진 사법 날조극의... ‘내가 나로 사는 것’이 가능한 사회 [프리스타일] 전혜원 기자 얼마 전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만났다. 외식업에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를 물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자기가 좋아해야지.” 그는 “잘하는 일 말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잘하는 일은 해봐야 일이다”라고도 했다. 내내 거침이 없었지만 특히 이 부분은 확신이 강하게 느껴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명제는 익숙하다. 자기 계발서에서, 교육과정에서 분명 들었을 말이다. 한데 묘하게 낯설다. 결정적인 순간에 모두가 이 명제를 따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 사회가 이 명제를 자영업 시장에 적용해본 적은 아마도 ... [미쓰백]을 불러준 관객들의 외침 양정민 (자유기고가) “미쓰백이라고 불러.” 영화 〈미쓰백〉의 주인공 상아는 같은 동네에 사는 여자아이 지은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터인 세차장과 마사지 숍에서 그는 이름 대신 그저 ‘미쓰백’으로 불린다. 세상을 향해 가시를 바짝 세운 채 남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는 상아에게는 그런 호칭이 차라리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유독 지은이 불러주는 ‘미쓰백’이란 이름은 마음에 쿡 박혀서 쉽사리 떠나지 않는다. “미쓰백 엄마는 어디에 있어요?” “미쓰백은 미쓰백이 싫어요?”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상아는 아동학대에 시달리는 지은에게서 어린 시절 자 [보헤미안 랩소디] 팩트체크 [음란서생] 배순탁 (음악평론가) 가히 열풍이다. 스트리밍 사이트를 쭉 훑어봤는데 팝 차트 상위권에 예외 없이 이 곡이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당신의 예상대로 주인공은 바로 그룹 퀸(Queen)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 이하 ‘보랩’으로 표기)’다. 나는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처럼 영화에 대한 훌륭한 안목을 갖고 있지 못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 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보헤미안 랩소디〉는 내가 제법 잘 풀어낼 수 있는 분야가 없지 않은 영화다. 바로 팩트... 영포빌딩에 처박힌 이명박 정부 5년 [취재 뒷담화] 고제규 편집국장 400 일일이 숫자를 세어보니 〈시사IN〉이 단독 입수한 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만 400여 건. 퇴임하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해야 할 대통령 기록물. 2500 단독 입수한 문건을 A4 용지로 출력해보니 2500여 장. 이 가운데 우선 12개 꼭지를 뽑아 제582호 커버스토리로 기사화. 이번 호에는 지난 커버스토리에 담지 못한 꼭지 기사화. 3402 검찰 공소장을 읽다 보니 ‘현안 자료, 주간 위기 징후 평가보고, 주요 국정정보 등 3402부를 과일 상자, 복사용지 상자 등에 담아 영포빌딩으로 발송’이라는 대목이 눈에 확 띄... 배달 라이더여 접속하고 가입하라 전혜원 기자 최악의 폭염을 기록한 2018년 여름, 맥도날드 앞에서 ‘폭염수당 100원’을 요구한 청년이 있었다. 맥도날드 합정메세나폴리스점에서 라이더(배달원)로 일하는 박정훈씨(33)다. 폭우·폭설 때 수당으로 지급하는 100원을 폭염 때도 지급하라는 그의 1인 시위는 큰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맥도날드 라이더들에게는 여전히 폭염수당이 없다. 위험한 상황에서 배달을 거부할 ‘작업 중지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뿌옇게 덮은 11월7일 박씨는 자체 구매한 흰색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박씨는 지난 10월 세계 최대 차량 공유업... [카드뉴스] 이명박 청와대 문건 공개 12 - 대운하 추진 시사IN 편집국 12. 대운하 추진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 공약은 ‘한반도 대운하’였다. 하지만 지지층에서도 대운하 공약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6월19일 특별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반대한다면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명박 청와대는 ‘대운하 프로젝트’를 회복시킬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시사IN〉이 입수한 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에 따르면, 2008년 9월부터 12월 사이 청와대는 다양한 채널을 가동해 대운하 프로젝트에 대비했다.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해외 사례를 살... [카드뉴스] 이명박 청와대 문건 공개 11 - 법회 사찰② 시사IN 편집국 11. 법회 사찰② 2008년 8월25일 정무수석실이 작성한 ‘주간 정국분석과 전망’ 문건은 중장기 전략을 조금 더 구체화한다. “불교 내 일반 신도와 운동권 승려(실천승가회 등)를 분리하는 작업이 수반돼야 함.” “운동권 승려들의 ‘反정부성’과 부도덕성을 부각해야 할 것임.” 2008년 9월1일 정무수석실이 작성한 ‘8월 정국분석 및 9월 전망’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향후 불교계를 누가(우파 성향 對 좌파 성향) 주도하느냐 주목. 불교계에서는 내년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내부 운동원 측의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임. ... [카드뉴스] 이명박 청와대 문건 공개 10 - 법회 사찰① 시사IN 편집국 10. 법회 사찰①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불교계와 갈등을 빚던 정권 초기인 2008년, 전국 주요 사찰의 법회 개최 움직임을 보고받은 정황이 확인되었다. 〈시사IN〉이 입수한 영포빌딩 이명박 청와대 문건 가운데 2008년 8월31일자 ‘#붙임. 주요 사찰 법회 개최 상황’ 문건을 보면, 전국 주요 사찰에서 법회가 열린 일시, 참석 인원, 내용이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문건을 보면,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 논란과 관련해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세세히 적혀 있다. 조계종 총본산인 서울 조계사의 법회는 이날 오전 10시에서 12시... 흑인·여성·노예로 과거에 끌려간다면 장일호 기자 모든 걸 다 알 수 없고 전부 다 알 필요도 없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것도 당연하다. 그래도 이런 책을 만날 때면 괜히 투정을 부리게 된다. 이렇게 좋은 작품과 대단한 작가를 지금까지 몰랐다니. ‘헛살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 아닐까. 이내 생각을 고쳐본다.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 정말 다행이야’라고. 타임슬립은 SF 장르의 클리셰(흔히 쓰이는 소재나 이야기의 흐름)다. 새로울 것 없다는 소리다. 타임슬립물의 주인공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미끄러진다. 주인공은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유리한... 기사 후~폭풍 정희상 기자 10·26의 또 다른 주역이 다시 소환되었다. 지난해 10월 ‘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코너에서 다룬 ‘육군참모총장감 박흥주의 선택(제524호)’ 기사가 올해에도 주목받았다. 〈시사IN〉 페이스북 계정(facebook.com/sisain)에 “그분들이 나라를 살렸다” “진정한 애국자” 등 댓글이 달렸다. 지금이라도 명예회복을 시키고 유족에게 합당한 예우를 갖춰야 한다는 댓글이 호응을 받았다. 박정희 독재 체제에서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 이수근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뒤늦은 재심과 무죄, 비운의 가족사(제58... 멀리 보고 달리 보다 [편집국장의 편지] 고제규 편집국장 불면증이 생겼다.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다음 날 겨우 눈을 붙인다. 불면증 원인을 자가 진단해보면, 〈시사IN〉 정기 구독자 감소도 원인 중 하나다. 편집국장이 당연직 이사를 겸직하고 있어서, 매주 구독자 추이를 보고받고 사인을 한다. 조금 전 사인한 구독자 추이 서류에서도 마이너스였다. 불면증에 시달리다 겨우 눈을 붙였는데 선잠을 빼앗는 기자가 있다. 이종태 기자도 그중 한 명이다. 동병상련. 이 기자 역시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아예 마감이 다가오면 ‘올빼미족’이 된다. 새벽에 기사를 쓴다. 기사를 쓰는 것까... 과자를 따라가는 기록 여행 [프라하의 도쿄바나나]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한옥마을 남쪽 사람들 권행백 지음, 온하루 펴냄 “관광지가 된 한옥마을에서 전주천을 건너오는 자본의 힘에 두려움을 느꼈다.” 도랑물이 휘어져 흐르는 전주 한옥마을의 중심지를 주말에 걷다 보면 어깨가 부딪친다. 연간 1000만명이 다녀간다는 말도 허언이 아닌 성싶다. 저자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동네 모습과 그 뒤에 숨겨진 애환을 좇는다. 한옥마을은 토박이들이 자본의 논리에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서글픈 현장이기도 하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동학혁명의 피비린내와 식민지 민초들의 땀내가 여전히 배어 있다. 저자는 전주천 남쪽... 지성과 ‘B급’ 사이 웹툰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박성표 (〈월간 그래픽노블〉 전 편집장) 한국 독서율은 확연한 하향세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2017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를 보면 1년간 일반 도서 1권 이상 읽은 사람이 59.9%로 조사 이래 최저치라고 한다. 이상하다. 전국에 개성을 앞세운 독립서점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유료’ 독서 커뮤니티도 빠르게성장 중이다.독서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마케팅에서 흔히 말하는 8대 2의 법칙(20% 고객이 매출의 80%를 만듦)이 출판계에도 통용되는 것일까? 그럼 어떤 사람들이 쇠퇴하는 독서 문화 속에서 꿋꿋이 자기 취향을 만들어가며 독서를 ‘중독’ 수준 시간과 땀이 빚은 ‘보아’라는 가치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여기 한 사람이 있다. 2000년 커리어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18년째 업무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력도 화려하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 동종 업계 최초, 최연소 수식어도 다수 얻었다. 그 명성이 남긴 여운은 지금까지 본인은 물론 해당 업계에도 은은한 영향력을 드리우고 있다. 운만 좋았던 것도 아니다. 그가 쌓은 금자탑은 타고난 재능을 바탕으로, 스스로도 “외로운 싸움이었다”라고 말할 만큼 혹독한 인내와 노력의 시간을 거친 것이다. 본인은 물론 뒤이어 데뷔한 후배들에게도 지금까지 좋은 귀감이자 훌륭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