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국가대표든, 클럽이든, 초등학교든 경기를 가리지 않는다. 열정만 있다면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 진정성에 감동한다. 하지만 축구에 미친 사람도 한국 축구를 사랑하기는 힘들다.

아시아의 맹주 한국 축구는 썩어 있었다. 프로 리그인 K리그를 비롯해 실업·대학 리그가 승부 조작 비리에 빠져 있었다. 축구 선수는 브로커가 되고, 도박사가 되어 있었다. 축구판의 부패 구조는 사람까지 죽이고 있다. K리그 선수 2명이 목숨을 끊었다. 승부 조작은 축구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한국 축구장에서 심판 매수는 별로 뉴스가 되지 않는다.

승부 조작 파문으로 한국 축구는 벼랑에 서 있다. 그런데 자성하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대한축구협회는 뒷짐만 지고 있다. 한국 축구계의 ‘영원한 야당’ ‘축구계의 DJ’로 불리는 허승표씨(64·전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해 축구협회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축구협회장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한 그를 만나 한국 축구에 대해 물어보았다. 

ⓒ시사IN 윤무영한국 축구계의 ‘야당’으로 불리는 허승표 전 한국 축구연구소 이사장은 그동안 축구협회가 희생 없이 열매만 따먹었다고 주장했다.

사회가 많이 깨끗해졌는데 축구계는 곪고 썩어서 냄새가 난다. 6월9일에는 프로축구에서 승부를 조작한 혐의로 선수와 브로커 14명이 기소됐다. 예견된 일이었다. 정몽준 전 축구협회장이 축구계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18년 동안 수많은 징조가 있었다. 어떤 코치는 대표선수를 시켜준다는 조건으로 돈을 받았고, 전 심판위원장은 대학 감독에게 돈을 받고 심판에게 승부조작을 지시했다. 선수 부모들에게 수천만원을 받고 승부를 조작했다. 많은 사건이 오랫동안 축구협회 핵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문제가 된 선수만 나무랄 수 있겠는가. 어리고 돈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닌가. 승부를 조작하게 만드는 심판·감독 그리고 구조적인 문제가 더 나쁘다. 대한축구협회는 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가?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개선된 것도 없다. 축구협회 핵심 멤버에게서 일어난 사건들이 표면화될 정도다. 가려진 사건은 더 많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18년이 지났다. 엘리트 축구, 초·중·고교에서 대학 진학하는 시스템에 불합리한 점이 많다. 특히 전국대회 8강에 들어야 대학에 가는 제도는 부정을 일으킬 소지가 너무 많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가 이제 축구계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승부 조작 같은 문제는 축구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고, 3~4년 전부터는 만연되어 있었다. 축구협회에서 몰랐을 리 없다. 그냥 덮고 넘어간 것이다. 이번에는 선수들이 자살해서 크게 불거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축구협회의 직무 유기다.

이번 사건에서 보면 축구 환경이 열악하다. 프로 선수를 제외하고는 가난한 선수가 너무 많다. 축구 선수를 만드는 데도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우리나라는 국가대표 선수 몇 명을 키우려고 축구 선수 수천 명을 희생시키는 구조다. 이 구조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초등학교 선수들은 합숙비며 대회 참가비를 내야 한다. 크게 보면 학부모 돈으로 축구 선수를 육성한다. 2군 선수와 실업 선수는 구조적으로 못 먹고살게 되어 있다. 2군 선수들이 여관비와 밥값을 내야 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프로에서도 드래프트 제도가 생기면서 고액 연봉자와 함께 연봉 1000만원짜리 선수가 많이 나왔다. 구조적으로 열악해서 돈에 대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축구협회의 지원은 없는 건가? 축구협회 예산이 1000억원을 넘었다. 이 돈은 대표팀과 축구협회 직원을 위해 쓰라는 돈이 아니다. 축구 저변을 위해 예산을 내려보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축구협회는 대표팀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곳이다. 축구협회의 수입은 대표팀 광고비, A매치 비용, 월드컵 참가비 등에서 나온다. 이 대표 선수들은 열악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프로에서 상품으로 만들어놓은 거다. 그런데 협회에서 열매만 따먹는 식이다. 돈을 벌었으면 그 돈을 초·중·고교로 내려보내야 한다. 잉글랜드 축구협회 같은 경우는 총수입의 50%를 유소년 축구 육성과 저변 확대를 위해 지방축구협회에 예산을 지원한다. 이래 놓고도 축구협회는 자기들이 잘해서 돈을 버는 줄 안다. 자신의 정체를 망각한 게 대한축구협회다. 조중연 회장은 2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고, 그만큼 되는 판공비를 쓴다. 억대 연봉을 받는 축구협회 간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런데 축구협회는 그 내역을 대의원에게도 공개하지 않는다. 그만큼 축구 저변의 환경이 더 열악해진다는 뜻이다. 축구협회가 세무조사를 받아야 한다. 1000억원이 넘는 돈을 버는 거대 기업이 제대로 된 세무조사도 안 받고 있다. 축구협회는 자정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 축구협회 간부들은 불감증에 걸려서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협회가 이 정도인데도 훌륭한 선수들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연합뉴스정몽준 축구협회 명예회장(왼쪽)과 조중연 축구협회 회장(오른쪽)이 김연아 선수를 경기장에 초청했다.

그 정도로 문제가 많다면 축구계는 그간 왜 잠잠했던 건가? 부분적인 반발은 있었다. 축구인들이 나서서 피켓 시위를 한다든지 하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 뿐이다. 언론이 정몽준 회장에게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축구 기자 중에 ‘정몽준 장학생’이 많다는 소리가 들린다. 정 회장이 2002년 월드컵 유치에 공헌을 했다는 것 하나로 모든 게 덮인 거다. 그러면서 정 회장과 축구협회가 독재성을 띠기 시작했다. 그 사이 축구계에는 문제점이 쌓여갔다. 이번에 문제가 터졌는데, 스포츠 토토와 일부 선수의 잘못으로만 이야기하는 건 잘못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곪았던 것이다. 월드컵 유치를 정 회장이 다 했다고 하면 난센스다. 많은 사람과 국가가 절대적으로 힘을 합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월드컵 4강의 모든 공은 정 회장하고 히딩크 이 두 사람이 나눠 가졌다. 그 공으로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된 것 아닌가. 정 회장은 월드컵 끝나고 축구인들에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안 했다.

그래도 정몽준 회장이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현재의 축구협회로 키워놓은 것 아닌가? (웃음) 정 회장이 축구협회장 되고 나서 1년인지 2년인지 9억원 정도를 내놓은 것으로 기억한다. 현대 직원들을 축구협회 간부로 데려왔는데 연봉 차이가 좀 있었다. 그걸 보전해준 것이다. 그 외에는 대차대조표나 장부를 봐도 정 회장이 돈 낸 거 찾기 어렵다. 국민은 매년 100억원씩 내는 줄 아는데 실제 낸 게 별로 없다. 18년, 5대째 정몽준과 그 아이들이 독재하고 있다. 정 회장이 물러나고 그가 지명한 사람이 축구협회장이 됐다. 다음번에도 조중연·오규상·이회택·정몽규·권오갑 등 정 회장 주변에서 회장이 될 거다. 모든 축구인이나 일반인이 다 안다. 축구협회가 굉장히 폐쇄적이고, 굉장히 독선적이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고인 물은 썩는다.

정 회장은 이제 협회에서 손을 뗀 것 아닌가?(정 회장은 1993~2009년 16년간 축구협회장을 지내고 물러났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정몽준 회장을 회장이라고 하고, 조중연 회장은 전무라고 이야기한다. 축구계의 통설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본인들이 그걸 알아야 한다. 정몽준 회장의 영향력 아래 한국 축구가 있는 이상 발전은 어렵다. 정 회장은 정치인이다. 지난번 총선에서 정 회장은 경기를 뛰어야 하는 안정환 선수를 데리고 다녔다. 황선홍 감독도 선거판에 가고. 축구협회 간부들은 선거판에서 살다시피 했다. 국제축구연맹 규정에 선수들을 정치에 이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최근 정몽준 전 회장이 김흥국씨를 보궐선거 유세에 대동해 문제가 됐다. 그분은 정치인이다. 축구도 정치를 위한 방편이었다. 정 회장이 한국 축구를 위해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나 부회장을 하겠다고 보는가?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 회장은 스위스 사람이다. 30년간 국제축구연맹 사무총장, 회장을 하고 있다. 스위스 축구와는 별개의 문제다. 스위스 대표팀이 세계 정상급에 있는 것 아니다. 아무 상관없는 거다. 정몽준 회장이 국제축구연맹 회장을 하면 그건 개인적인 거지, 한국 축구 발전하고 별 상관없다. 가장 좋은 건 국제사회에 한국 축구에 대한 신뢰를 심는 것이다. 국제경기 할 때 약속 잘 지키고, 부정부패 게임 없고…. 내가 국제담당을 오래해서 축구계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다. 결국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이제, 정몽준과 그의 아이들은 이번으로 임기를 끝내고 떠나줘야 한다. 20년 축구협회 집권한 결과가 이런 참담한 현실로 귀결되었다. 더 기다려야 할 이유가 있느냐? 더구나 정 회장은 국제 축구계에서 결정적일 때마다 선택을 잘못해서 국제축구연맹이나 블래터 회장과 사이가 안 좋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한국 축구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 우려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축구계에서 근본 대책과 자성의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회 유치, 보조금 지급, 심판 문제 등 축구협회에 실질적인 권한이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말을 못할 뿐이다. 과거에 ‘축축모’(축구 발전을 위한 축구인들의 모임), 축구연구소 등 축구인들이 자성하고 연구하는 모임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철저하게 축구협회에서 배제됐다. 정 회장을 비판하면 철저히 응징하고 축구계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 했다. 18년 동안 그 사람은 제왕이었다. 아무도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

축구인들의 열정이 부족한 것 아닌가? 축구협회 회장은 대의원 투표로 뽑힌다. 그런데 지난번 선거까지는 중앙대의원 제도라는 게 있었다. 28명 대의원 가운데 5명은 선거 한 달 전에 축구협회에서 직접 지명하게 돼 있다. 축구협회장 선거는 5대0에서 경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 불합리성 때문에 아예 경쟁이 안 됐다. 올해 초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랬더니 축구협회는 기득권층에 유리한 선거제도로 바꾸려고 세 번이나 제도 개정을 시도하다가 각 시도 축구협회 회장의 반발로 무산됐다. 우리 축구협회가 정말 축구를 위한 협회로 거듭나지 않으면 제2, 제3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자기네만 살찌고 축구 선수들은 배가 고프다. 축구협회가 도박과 조작을 지도하고 육성하는 기구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축구협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정 회장과 핵심 멤버들은 한국 축구를 끌고 나갈 능력이 없다. 정 회장과 축구협회 간부들은 이제 축구에서 손을 떼야 한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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