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은 태생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음악뿐 아니라 춤과 패션 등이 포괄된 복합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2000년대 전후 국내에서 지지부진하던 아이돌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좀 더 거대하고 복합적인 조직체로 재탄생하고, 연습생 훈육 시스템이 더 공고화·체계화되면서이다. 이를 통해 아이돌은 가창력과 춤 실력은 물론 연기·어학 실력, 나아가 개인기까지 갖추어야 했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최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다목적 아이콘으로 아이돌을 활용하게 된다.

아이돌 시스템은 급속도로 변해온 산업과 문화에 적응한 결과물이다. 디지털 온라인 음악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된 뒤 아이돌 시스템은 ‘앨범’ 대신 ‘싱글’ 중심의 시장으로 재편을 주도했다. 아이돌의 ‘예능’ 매체에 대한 의존도는, 케이블 음악방송이 급성장하는 맥락에서 점점 더 강화되었다. 또한 인터넷과 휴대 기기의 급격한 발전에 힘입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확대와 팽창은 아이돌을 둘러싼 생산과 소비 패턴을 바꾸어놓았으며, 이를 통해 팬덤은 강화·확장되었다. 2000년대 후반 이른바 ‘아이돌의 진화’는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아이돌 스타 시스템은 ‘음악 그 자체’로는 생존할 수 없는 현실을 더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뉴시스아이돌이 다시 주목받게 된 데에는 음악적 포지셔닝이 주효했다. 빅뱅과 아이유 등은 실력파 가수로 각인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들어 아이돌이 다시 주목받게 된 데에는 역설적으로 음악(을 통한 포지셔닝)이 주효했다. 가령 빅뱅, 2NE1이 실력파로 각인된 데에는, 다소 특화한 장르를 표방하고, 나아가 가수가 아닌 창작자, 작곡가·프로듀서로 마케팅한 것이 주효했다. 연령대가 다소 높은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대중의 주목을 받는 걸그룹으로 거듭난 것도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통한 변신이 큰 몫을 했다. 나아가 아이유가 ‘아이돌 같지 않은 아이돌’로 낙점된 데에는, 이른바 ‘아날로그 감성’에 가창력과 표현력을 갖춘, 말하자면 (작곡은 하지 않지만) 여성 싱어송라이터 같은 포지션이라는 데 있다.

반면 아이돌 음악이 편협하고 천편일률적이라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이돌과 그 음악이 특정 시스템에 의해 제조된 상품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고, 이에 따라 창의성 또는 예술성이라는 잣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음악으로 여겨져왔다. 이 부분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런 논란의 진위와는 무관하게, 여기에 어떤 선입견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가령 몇 년 전 일어난 ‘오토튠 논란’에는 디지털=인공적=차가움=나쁜 것(이와 반대로, 아날로그=인간적=따뜻함=좋은 것)이라는 편견이 배후에 자리한다.


ⓒ뉴시스
주목할 점은, 아이돌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희석된 데에는 이들의 음악이 내수용(가요)에서 나아가 해외용(K-pop)으로 각광을 받았다는 인식이 주효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몇 년간 활황하던 아이돌 음악이 이제는 시효가 만료되었다는 선고를 내리려던 찰나, 외국에서 당도한 소식은 아이돌(에 대한 논쟁)을 다시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했다. 이는 아이돌을 둘러싼 ‘일부의’ 시선이 얼마나 모순적인가를 보여준다. 아이돌에게 가해지던 한결같은 비판 목소리는, 국위선양과 경제적 수익 창출이라는 국가·경제 이데올로기 앞에서 무력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해외 진출에 몰입하는 음악(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한국의 산업 및 경제 구조와 동형 관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른바 개발도상국의 성장 동력으로서 ‘수출형 산업’을 강조했던 한국형 산업 구조와 중첩되며 케이팝의 성공 신화는 한국의 ‘경제성장 신화’를 반복한다. 근면 성실이라는 의제와, 노력을 통한 성공이라는 근대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순간, 과도한 노동 조건과 강도는 합리화되고, 그에 대한 보상은 부차적이 된다. 아이돌 스타 시스템은 이처럼 자본과 산업 구조 속에서 편입되고 작동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동아시아 대도시 중간 계급 청년의 문화

여기서 ‘케이팝’으로 수렴되는 아이돌 음악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국외로 시선을 돌리는 장면과, 동시대 팝의 트렌드를 추종하는 글로벌한 전략은 중첩된다. 드라마에서 시작되어 아이돌 음악으로 전화된 ‘(신)한류’를 통해 케이팝은 ‘동아시아 대도시 중간 계급 청년의 트랜스메트로폴리스 미디어 문화의 하나’로 정착되어왔다. 이제는 기획과 생산 단계에서부터 일국(一國)을 초월한다. 홍보와 마케팅을 위한 현지 에이전시가 참여하는 수준 이상으로, 애초부터 다국적 자본이 투여되어 제작되고 외국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개입한다. 유럽 작곡가 그룹 ‘디자인 뮤직’의 이름은 SM엔터테인먼트의 노래를 아는 이에게는 매우 친숙할 것이다.

이제 아이돌의 음악에서 국적을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빈번한 표절 시비는 어쩌면 최신 트렌드를 조합해 생성하는 글로벌한 태도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기제일지 모른다. 소녀시대 노래를 예로 들면 이트라이브의 ‘지(Gee)’와 외국 작곡가의 ‘런 데빌 런(Run Devil Run)’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또는 미국이나 일본에 진출(하려 시도)한 음악이 한국산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일본에서 활동했던 보아나 동방신기의 음악은 한국의 것인가? 물론 외국 작곡가의 곡이 그대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정도 차이는 있지만) 유영진 같은 국내 작곡가의 손길을 거쳐 제작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처럼 아이돌 음악은 국지적인 ‘가요’로부터 글로벌한 ‘팝’으로의 전도를 열망해온 산물이고, 또는 그 둘이 복합적으로 혼성화된 결과물이다.


ⓒ연합뉴스비틀스의 음악을 녹음했던 영국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 주변에서 6월19일 유럽 팬들이 한국 아이돌 그룹 샤이니를 기다리고 있다.

원산지가 중요하지 않은 이 음악과 문화는 (국가적 이데올로기와 결탁하면서도) ‘브랜드’ 가치를 우선하는 (삼성 같은) 대기업의 전략과 비슷한 행보를 취한다. 그런 점에서 SM엔터테인먼트가 파리 공연에서 ‘한국산’이 아닌 ‘SM 타운’을 내걸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렇지만 아이돌 음악을 통한 모든 사례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동아시아 권역에서 현지화 시도는 상당수 실패했다. 아이돌 시스템의 최대 목표인 ‘미국 진출’은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유럽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아직까지는 일종의 마니악한 현상으로 남아 있다. 이와 더불어 많은 이가 지적했듯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둘러싼 고위험 투자 및 수익 회수 시스템은 여전히 문제적이다. 지망생들이 데뷔를 위해 10대를 고스란히 바쳐야 한다거나, 데뷔하고도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며 또 계약 문제를 비롯해 정당한 대가를 받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들 또한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기자명 최지선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