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미래의 어느 날, 어쩌면 없을지도 모를 내 자식이 장효조와 최동원 선수에 대해 물어본다면 난 어떻게 답해야 할까. ‘안타 제조기’와 ‘무쇠팔’이라는 한마디로 그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소설은 이런 언어의 전달 불가능성을 극복하려 하는 가장 숭고한 노고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집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는 그런 노고의 공간을 아예 놀이터로 바꿔버린다. 야구라는 것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곱 이야기가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조각조각 뒤엉켜 놀며 야구의 본질에 접근한다.
야구가 사라진 시대, 야구에 관한 글만을 모으는 한 노인은 프란츠 카프카가 야구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지닌 백업 포수였을 거라 확신하고, 한 어린아이는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포르노 100편 보기와 야구 시 900편(713번째 시가 압권) 쓰기 훈련을 감내한다. 연장 98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한 시합이 등장하기도 하고, 공이 너무 잘 보여서 칠 수 없다는 어느 4번 타자는 자신이 스윙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를 언어철학적으로 설명한다.
어떤 이에게는 그저 엉뚱한 상상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한 문장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더구나 이 책에 나오는 ‘야구’는 ‘소설’의 메타포로도 읽히기에, 작품의 모든 맥락을 소설의 본질을 밝히는 이야기로 번역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야구와 소설을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두근두근’이나 ‘반짝반짝’이라는 예쁜 말의 도움 없이도 심장은 충분히 뛰고 세계는 필요 이상으로 빛난다.
1995년 초판이 출간되었고, 마니아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떠돌다 사라졌다가 2005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것만으로도 대견하지만, 야구와 소설을 모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알려졌으면. 그럼 2015년쯤에는 내가 이 책의 개정 작업을 담당하는 영광스러운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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