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6~27일 열린 제65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한국의 임상수·홍상수 감독이 나란히 진출했다. 〈돈의 맛〉(임상수)과 〈다른 나라에서〉(홍상수)를 들고서다. ‘문제적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두 감독의 이번 영화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김형석·이형석, 영화 평론을 업으로 삼은 두 ‘형석’이 두 ‘상수’를 각각 뜯어보았다.

임상수 감독(사진)의 영화를 떠올릴 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광경은 〈바람난 가족〉(2003년)의 병실 장면이다. 병으로 누워 있는 아버지(김인문)는 아들 주영작(황정민)에게 피를 쏟는다. 한두 방울이 아닌, 구토하듯 뿜어내는 피는 아들의 셔츠를 흠뻑 적신다. 병든 간에서 나온 썩은 피. 그 ‘나쁜 피’는 아마도 대대손손 혈통을 이어 흘러갈 것이다.


ⓒ뉴시스임상수 감독.
〈돈의 맛〉(2012년)을 보면서, 이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재벌 집안의 시작은, 이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왕회장’ 백판수(권병길)다. 영화는 일본풍 의상을 통해, 그가 일제강점기 시절 매판자본으로 부를 축적한 친일 자본가였다는 걸 암시한다. 그렇게 축적된 자본은 세습을 통해 21세기까지 이어졌고, 그 자손들은 ‘돈의 맛’에 중독되어 있으며, 아마 그 돈은 영원히 대물림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임상수 감독은 ‘가족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휴머니즘 넘치고 따스한 ‘가족 영화’는 아니다. 그는 한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일반적 견해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가족을 걱정한다. 그는 가족이 더 이상 개인을 억압하거나 서로를 기만하게 하거나 무엇을 감추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더 이상 신성할 수 없으며, 그 안에서 기본적인 욕망조차 해소될 수 없다면 해체되어도 어쩔 수 없다. 그의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년)는 바로 이 솔직한 욕망을 다룬, 호정(강수연)의 표현에 따르면 ‘아랫도리’에 대한 영화인데, 여기에도 ‘간통죄’라는 구시대의 칙칙한 유물이 그를 얽맨다.


여기서 임상수 감독은 그러한 가족의 근원에 가부장제로 상징되는 남성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여러 영화에서 이 부분에 딴죽을 건다. 〈눈물〉(2001년)에 등장하는 십대 네 명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건 아버지에 대한 증오이며, 특히 창(봉태규)은 아버지 세대의 폭력에 병적으로 반항한다. 〈바람난 가족〉은 가족의 중심이 꼭 남성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아버지는 죽어가고, 대신 어머니는 진짜 삶을 찾아 재혼하며, 며느리인 호정(문소리)은 남편 주영작(황정민)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당신 아웃이야. 안 돼, 더 이상은….” 이 영화는 모계사회의 대안적 가능성에 대해 긍정하는 셈인데, 이것은 지금의 가족제도로는 더 이상 살아가기 힘들다는 현실 인식이기도 하다.

이런 인식은 〈그때 그 사람들〉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광복 후 한국 사회의 ‘보스’이자 21세기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장기 집권자’ 박정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감독은 박정희라는 아버지가 죽지 않고서는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 삽입된 기록 필름에는, 결국 법원 명령에 의해 개봉할 때 삭제되었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슬픔에 잠긴 (현재 가장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의 모습이 있다.


느슨한 연작 형태를 띠는 〈돈의 맛〉(위)과 〈하녀〉(아래 사진)는 가족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즐길 만하다. 두 영화의 가족은 서로 연결된다. ‘돈’을 매개로 구성원의 역할이 정해지고, 그 논리에 따라 가족이 확장되기도 한다.


임상수의 또 다른 ‘가족 영화’

느슨한 연작 형태를 띠는 〈하녀〉(2010년)와 〈돈의 맛〉도 ‘상류층 대 하녀/집사’라는 이분법적 구도보다는 가족의 관점에서 볼 때 더 즐길 만하다. 두 영화의 가족은 연결된다. 〈하녀〉의 어린 딸 고나미(안서현)는 〈돈의 맛〉에서 윤나미(김효진)로 성장했고, 〈하녀〉에 은이(전도연)가 있다면 〈돈의 맛〉에는 주영작(김강우)이 있다.

먼저 훈(이정재)과 해라(서우) 부부를 중심으로 구성된 〈하녀〉의 가족은 암투가 벌어지는 왕실처럼 느껴진다. 해라와 은이는 중전과 후궁의 관계이며, 그 중심에는 ‘핏줄’이라는 원초적인 소유 관계가 있다. 반면 〈돈의 맛〉의 재벌가에서 중심은 백 여사(윤여정)와 윤 회장(백윤식) 부부가 아니다. 선대로부터 내려온 ‘돈’이다. ‘돈’을 매개로 구성원의 역할이 정해지고, 그 논리에 따라 가족은 확장되기도 한다. 주영작은 비서의 위치에서 돈 심부름을 하다가 백 여사(윤여정)와 그 딸인 나미 모두와 관계를 맺게 된다. 외국 자본가 로버트(달시 파켓)도 ‘자본적 가족’의 일원이다. 그리고 외국인 하녀 에바(마우이 테일러)는 윤 회장과 사랑하는 관계가 된다.

〈돈의 맛〉은 한국 사회의 ‘문제적 존재’인 재벌을 이야기하지만, 거시적 시각에서 분석한다거나 재벌 해체의 근거를 주장하는 식의 강경한(?) 어조를 띠지 않는다.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은, 돈 많은 집안에서 벌어진 조금은 황당하고 슬프며 일면 코미디 같은 이야기다. 그 안에는 돈 때문에 모욕을 견뎌야 하는 주영작이 있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미를 아는 나미가 있으며, 욕정과 복수심에 찬 백 여사가 있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하녀의 남자가 되려 하는 윤 회장이 있다.


 

그런데 임상수 감독의 가족 이야기는 언제부터인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칸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으면서부터 조금씩 매력이 덜해간다. 개인적으로 임상수라는 감독에게 끌렸던 건, 그가 한국 상업영화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개기는’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라거나 ‘사회제도에 대한 공격적 담론’ 같은 딱딱한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말 그대로 ‘개기는’ 영화를 만든다. 그는 “언제부터 대한민국 경찰과 검사가 내 아랫도리를 관리했어!”라며 소리치고, 아버지의 멱살을 잡으며, 변호사 남편에게 과감히 ‘아웃’이라고 선언하고, 대통령의 죽음을 보여준다. 때론 직설법으로 때론 냉소로, 때론 뜨겁고 때론 차갑게, 그의 영화들은 논란이든 뭐든 상관없이 ‘개기는 맛’이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하녀〉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잘 모르겠고, 〈돈의 맛〉은 할 이야기가 더 있는데 마저 다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왜 그는 머뭇거리는 걸까? 왜 갑자기 그의 영화에 감상주의가 등장한 걸까? 정말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기자명 김형석 (영화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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