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텔레비전 진행자 샤이마 레자위. 여성은 얼굴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을 저버리고 부르카(이슬람 여성 베일의 한 종류)를 벗어던진 채 방송을 진행한 후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의 모델이 된 소녀 아이샤. 결혼 후 구타와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가 붙잡혀 귀를 잘린다. 14세에 70세 남자에게 팔려간 여성 라지아. 18년 동안 학대당하다 남편에 의해 심한 화상까지 입는다. 모두 이슬람 국가에서 벌어진 일이다.

세 여성에게 벌어진 일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서구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했을 때에야 비로소 문제가 문제로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서구 사회는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이슬람 사회는 그렇지 않은가? 이슬람 여성 인권과 관련해 서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들여다보자. 프랑스는 2011년부터 공공장소에서 부르카를 착용하는 걸 금지했다. 영국 학교에서도 이슬람 베일을 금지해 논란이 되었다. 당사자인 이슬람 여성들은 이들이 이슬람의 전통을 억압한다고 비난한다.

ⓒ오은경 제공오은경 교수(위)는 베일을 통해 이슬람 여성이 처한 현실을 읽어냈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학대당하고, 서구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동정받는 것이 바로 이슬람 여성이다. 동덕여대 오은경 교수는 오늘날 이슬람 여성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베일의 비밀을 벗겼다. 왜 이슬람 여성들이 베일을 쓰게 되었고, 베일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다르게 인식되며, 현대 이슬람 여성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두루 살폈다.

이슬람 여성의 베일은 크게 다섯 종류다. 가장 간단한 것이 스카프로 머리를 둘러싸는 바쉬 외르튀쉬(북아프리카·터키·시리아 등). 다음은 두건 모양으로 가슴 부위까지 가리는 히잡(아랍 국가)이다. 니캅은 히잡 위에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는 것으로 목과 가슴까지 온다(파키스탄·모로코). 차도르는 검은색의 망토형 베일이다(이란). 아프가니스탄의 부르카는 가장 보수적인데, 베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가리고 눈 부위는 망사로 처리했다.

이슬람 여성의 베일은 처음에 종교와 무관한, 중동 지역의 기후를 극복하는 ‘발명품’이었다. 덥고 건조한 기후에 적합한 의복이었다.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초기에는 지배층 여성들이 착용했는데 이때 베일은 특권을 의미했다. 신분이 높고 보호받을 위치에 있는 여성만 착용할 수 있었다. 지배층 여성 위주로 베일을 쓰다 확대되는 양상은 그리스로마 문명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한국 여성권한척도 이슬람 국가보다 낮아”

이슬람교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부계 사회가 확립되고 베일 착용이 전 이슬람 여성의 의무로 확대된다. 왕의 여성을 ‘하렘’에 격리했던 전통도 전 사회로 확장돼 여성의 사회활동이 통제된다. 베일과 격리가 이제 정숙한 여인의 상징이 되어서 전 계층으로 확장된다.

저자는 이슬람 여성의 베일에서 우리의 과거를 읽었다. 장옷(두루마기처럼 생긴 외출복)을 쓰는 여성이 더 정숙한 여성으로 보이고 여성을 집안에 격리하려 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 오 교수는 “이슬람 세계가 서구 열강에 침략당하면서 열등감을 느낄 때 베일 착용이 더 강조되는 등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심해졌다. 왜란과 호란을 겪은 조선 사회가 여성의 정절을 더 강조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슬람 여성의 명예살인은 조선 시대 열녀문이 남성의 명예를 위해 여성을 희생시켰다는 점에서 닮은 부분이 많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여전히 베일을 쓰고 다니는 이슬람 여성이 억압과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오늘 우리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 여성들도 ‘보이지 않는 베일’을 쓰고 산다. 한국은 여성권한척도(GEM)가 이슬람 국가보다 낮은 나라다. 이것이 이슬람 여성의 베일에 담긴 억압의 의미와 복잡한 함의를 읽어내야 하는 이유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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