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채원순씨(59)는 성산중학교 2학년이었다. 점심 무렵 담임 선생님이 그를 불렀다. 집에 일이 생긴 것 같으니 얼른 가보라는 것이었다. 운명의 1970년 12월15일, 그는 아버지(채재춘·당시 45세)와 남동생(채원철·당시 13세)을 그렇게 잃었다. 이날의 남영호 침몰 사고로 고모(채강녀)와 삼촌(채재홍), 조카 등도 함께 수장됐다. 이튿날 부산에서 있을 고모 아들 결혼식에 가려고 배를 탄 것이 채씨 일가 6명을 떼죽음으로 내몰았다.
비극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채씨 일가가 살던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는 1943년 4·3사건 당시 100여 명이 희생된 바 있다. 이들이 집단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12월1일마다 마을 사람들은 공동제사를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남영호 사고로 또다시 종달리에서만 희생자 29명이 발생한 것이다. 아들 결혼식에 가다 숨진 채씨 고모 또한 4·3 때 남편을 잃었다. 부부가 4·3과 남영호 사고로 연이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시어머니는 4·3사건으로, 며느리는 남영호 사고로 남편을 잃은 집도 있었다. 당시 신문기사는 종달리를 '비극의 과부촌'으로 묘사했다. 채씨는 "12월만 되면 집집마다 제사를 지내느라 온 동네가 명절처럼 부산하다"라고 말했다.
나종열 남영호 조난자 유족대표회장은 “4·3과 남영호, 두 사건이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씻지 못할 상처로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부산 등 육지 거주자 50여 명도 타고 있었지만 남영호 사고의 최대 희생자는 제주도민이었다. 특히 배가 출항하는 서귀포와 성산 일대에서 희생자가 많았다. 서귀포에 9000가구, 성산에 3800여 가구가 살던 그 시절, 사고의 충격파는 좁은 지역사회를 덮쳤다.
그러나 섬사람들이 주로 희생된 참사에 중앙정부와 언론은 길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앙 일간지에서는 일주일도 안 되어 남영호 기사가 사라지거나 그 비중이 대폭 축소됐다. 시대적 특수성도 작용했다. 나종열 회장은 “서슬 퍼런 박정희 시대 아닌가. 언제 잡혀갈지 모르니 다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제주도민은 그렇게 4·3에 이어 남영호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채 가슴에 묻어야 했다.
그로부터 40여 년, 남영호는 세상에서 거의 잊혔다. 사고 직후 서귀포항 귀퉁이에 세워진 조난자 위령비는 1982년 서귀포항이 확장되면서 중산간 일대(서귀포시 상효동)로 옮겨졌다. 제주도는 물론 유족조차 잊고 지낸 이 위령탑을 찾아낸 것은 〈한라불교신문〉 기자였던 조인석씨(현 춘강어울림터 원장)였다. “제보를 받고 혹시나 싶어 찾아가 봤는데, 수풀과 잡목이 우거져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는 곳에 위령탑이 외롭게 서 있었다”라고 조씨는 회고했다. 그 뒤 20년 가까이 조씨는 남영호 사고일이면 해마다 이곳을 찾아가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산 사람 복지 못지 않게 죽은 사람 복지도 중요하다"는 소신에서였다.
이 사실이 지역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지난해부터는 제주도가 나섰다. 민·관 합동으로 추모사업회를 구성하고, 위령비를 다시 서귀포항 인근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추진키로 한 것이다. 지난해 12월15일에는 첫 민·관 합동 위령제도 지냈다. 유족들은 이에 감격하는 한편 이런 노력이 좀 더 빨랐다면 유족 및 지역사회의 치유도 앞당겨지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한다. 나 회장은 “40년 지난 지금까지도 남영호 사고와 관련한 정부 통계치가 들쭉날쭉이다. 육지에도 남영호 사망·실종자가 있는 만큼 정부가 이를 제주도만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실체 파악에 나서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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