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범들은 약 5년 동안 수백 회에 걸쳐 하나은행에 수기로 작성한 허위 매출증권(물건을 팔고 돈을 받기로 약속한 계약을 기록한 증권. 앞으로 돈이 들어온다는 증거이므로 은행에 담보로 제출하고 대출받을 수 있다)을 제출하는 허술한 방식으로 거액을 빌렸다. 그런데도 은행 측에서는 이 정도의 돈을 대출하면서 현장 실사도 하지 않았다. 정상적인 은행 대출 심사 시스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금융권에서는 평가한다. 사기범들의 또 다른 표적이었던 우리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들은 서씨 등이 담보로 제출한 매출증권이 이상하다며 현장 실사를 예고한 바 있다. 그러자 주범들이 사기가 들통 날 것을 우려해 황급히 대출 신청을 철회하는 바람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나은행 측의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느슨한 대출 심사에 ‘혹시 은행 안팎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금융권에서, 하나은행의 느슨한 대출 심사 시스템에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고 거론되는 인물은 김승유 전 하나은행 회장과 김종준 하나은행장이다. 김승유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정권과 유착해 은행 부실을 일으켜 문제가 된 적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 전 회장이 영업정지 직전의 미래저축은행에 145억원을 투자하도록 하나캐피탈(하나그룹 자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당시 하나캐피탈의 대표가 바로 김종준 현 하나은행장이다. 김승유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통해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을 소개받은 뒤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하나캐피탈은 미래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면서 60억원대의 손실을 안아야 했다. 지난해 4월 금감원은, 미래저축은행에 대한 하나캐피탈의 투자 결정 과정에서 서류를 조작했음은 물론이고 이사회 의결도 없었던 사실을 적발하고, 김승유 전 회장과 김종준 하나은행장을 징계한 바 있다.
한편 미래저축은행의 김찬경 전 회장은 2012년 영업정지 직전 고객 돈 수백억원을 빼내 중국 밀항을 시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때 김찬경 전 회장의 변론을 맡았던 이가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부 초대 민정수석인 곽상도 변호사다. 곽 변호사는 서정기씨가 사기 대출한 돈으로 계약한 경기도 시흥시 ㈜신천지농장 대지에 근저당을 설정한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나은행은 이번 사기 대출로 16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현장 실사도 없이 거액을 빌려준, 무모하기 짝이 없는 대출 심사에 대해 아직 책임도 묻지 않았다. 말 못할 사정이 없고서야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라고 금융권 관계자들은 말한다. 금융감독원 측은 “현재 하나은행에 대해 부실 대출 책임을 가리는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관련자들을 행정 징계 처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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