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잎부터 만화 키드였던 건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 팔이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버지가 사다준 잡지 〈소년 중앙〉이 만화와의 첫 만남이었다. 커가면서 책 대여점이 하나둘 늘었다. 10대 시절, 남들 읽는 만큼 만화에 탐닉했다. 본격적인 건 대학에서였다. 만화와 문학, 특히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는 수업에서도 들을 수 있고 얘기할 기회가 많았는데, 만화는 그렇지 않았다. 대단한 예술인데 그걸 인정하기보다 폄하하려는 시선이 강했다. 그때 만화 동아리가 눈에 띄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만화를 읽고 세미나를 하며 적극적으로 감상했다. 강상준씨(34)의 만화 입문기다.

ⓒ시사IN 윤무영만화에 대한 ‘저열한 사회적 위상’이 강상준씨를 만화에 열중하도록 만들었다.
누구나 만화를 즐기던 시절은 있었다. 어느 순간 주변을 보니, 읽는 사람만 읽고 있었다. ‘애들 문화’ ‘뒷골목 문화’로 치부되거나 ‘오덕’ 등 특정한 부류만 읽는 책이라는 편견이 강했다. 강씨는 그런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싶었다. 마니아는 아니지만 만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무얼 읽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되는 만화 32편을 골라 소개하고 책으로 묶었다. 〈기생수〉 〈무한의 주인〉 〈리얼〉 〈지뢰진〉 〈우주형제〉 〈두더지〉 등이 그 목록에 올랐다. 

〈필름2.0〉 〈BRUT〉 같은 영화·문화 잡지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등에 관한 글을 써온 강씨는 현재 프리랜서 라이터 겸 편집 기획자다.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을 번역했고, 〈좀비사전〉 〈탐정사전〉 등을 기획 편집했다. 그의 관심사가 읽히는 이력이다. ‘언제나 주류보다는 비주류에 연연했으며 앞으로도 종신토록 그렇게 살 예정’이라는 프로필이 인상적이다. 만화의 ‘저열한 사회적 위상’이 지금까지도 그를 만화에 열중하도록 만들었다. 잡지사 입사를 희망할 때 자기소개서에도 썼다. 남들이 낮춰 보는 만화를 즐기다 보니 삐딱해지고 반골이 된 것 같다고.

32편 목록에는 그만의 기준이 있다. 현재 찾아 읽을 수 있는 만화, 과거의 독자가 아닌 현재의 독자와 다음 세대 독자에게 필요한 만화, 과거의 평가와 무관하게 지금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만화다. 일본 만화로 한정한 건 영화로 치면 할리우드, 야구의 메이저리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본에만 가도 지하철에서 호호백발 할머니가 순정만화를 보고 있다. 흔한 광경인데 되게 감동적이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만화가 읽고 싶어져

하나만 꼽으라면 〈지뢰진〉이다. 그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만화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알찼다. “정말 만화가 예술이라는 걸 느꼈다. 단순히 글과 그림의 합이 아니라 만화만이 할 수 있는 게 있었다. 회화와 소설과는 다르다. 메시지에서는 어른의 세계, 보이지 않는 뒷골목의 비정함 같은 걸 알았다.” 한국 만화로는 윤태호 작가의 〈야후〉와 박흥용 작가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꼽는다. 언젠가 위대한 만화에 대해 쓰게 된다면 꼭 들어갈 작품이다.

남들은 영화와 만화 보는 게 직업이라서 좋겠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쓰는 게 일이다. 좋아하는 작품만 쓸 수도 없다. 마감 시한 3일을 주고 원고를 청탁하는 곳도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계속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그의 글은 친절하다. 해당 만화를 읽지 않아도 그것에 대해 알 수 있게끔 줄거리 요약이 잘 되어 있다. 영화 잡지에서 일할 때 줄거리 쓰는 것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었다. 한 주에 많을 땐 다섯 편의 영화를 보고 줄거리를 정리해야 했다. 그때 훈련이 되었다. 그가 간추린 줄거리를 따라 읽다 보면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친절한 건 책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책 표지 뒷면에는 본문에 수록된 작품의 일본 내 연재 기간이 실려 있다. 1954년부터 현재를 아우른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