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동안 한국 정치를 뒤흔들었던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정상회의록)’ 사건이 검찰의 잇단 망신으로 일단락되었다. 정상회의록을 둘러싼 검찰의 이중 잣대가 법원에서 연달아 깨졌다. 지난해 검찰은 정상회의록 내용을 유출한 여당 인사에게 약식기소라는 가벼운 처벌을 하려다 법원의 정식재판 명령이라는 제지를 당했다. 그 결과 검찰 구형보다 센 형이 선고되었다. 이례적인 경우다. 검찰의 칼날이 무뎠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은 셈이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5월 ‘정상회의록 삭제’ 1차 공판. 직접 모두진술에 나선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 김광수 부장검사는 프레젠테이션에서 신흠의 한시 ‘상촌휘언(象村彙言)’을 인용했다. “선조 즉위년부터 임진왜란 직전까지 역사 기록이 깜깜하다/ 임란 도중 사관 4인방이 사초책을 모두 불태우고 도망갔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사적을 다 찾아 기록하자면 10년 걸려도 완성할 수 없을 것이다/ 도망자들에게 다시 역사를 맡기는 것은 나라의 수치다.”

ⓒ연합뉴스정상회의록 폐기를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조명균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왼쪽)과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가운데)이 2월6일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 건물을 나서고 있다.

사관들이 사초를 불태워 ‘선조실록’은 〈조선왕조실록〉 중 가장 질이 떨어진다는 오명을 얻었다면서, 자신이 맡은 사건을 여기에 빗댔다. 이에 앞서 2013년 11월 그는 참여정부 시절의 백종천 대통령비서실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정상회의록을 대통령 기록물에서 삭제했다며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등으로 기소했다. 피고들의 행위가 역사에 남을 대역죄라는 힐난이 담긴 비유였다. 그 정도로 검찰은 이 사건에 매달렸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 부장검사가 사건을 진두지휘했고 검사 7명, 수사관과 분석관 21명을 투입해 114일 동안 수사했다.

검찰은 수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역사적 진실을 규명한다는 의지로 91일간 압수수색을 통해 객관적 사실을 확인했고 정치적 논쟁을 배제하고 오로지 법률에 따라서만 수사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을 각각 징역 2년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논리는 법원에서 철저히 깨졌다. 지난 2월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부장 이동근)는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단순명료했다. 두 사람이 삭제한 회의록은 대통령 기록물이 아니라고 봤다. 사초(史草)가 아니라는 뜻이다. 대통령의 결재 여부가 대통령 기록물을 가르는 기준인데, 당시 처음 올라온 녹취록을 열람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검토를 지시하며 결재를 하지 않았다.

또 재판부는 처음 만들어진 정상회의록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사건 회의록 파일은 최종 완성된 단일본을 전제로 하는 녹취 자료 초본의 속성을 가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사건 문서관리 카드에 대해 재검토 지시를 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 회의록 파일의 내용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전체적인 수정·보완을 지시했으므로, 이 사건 회의록 파일은 완성본이 아니다(2013고합1232).”

그렇기에 초본은 삭제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완성된 정상회의록 파일과 헷갈릴 우려가 있기에 초본은 없애는 게 맞다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통일부·국정원·대통령비서실 등의 사실 조회나 관련자 진술만 봐도 그런 관례는 존재했다.

‘선거용’으로 정상회의록 꺼내든 여권

검찰은 처음 만들어진 녹취록을 ‘원본’,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수정·보완된 녹취록을 ‘변경본’이라 규정했지만, 재판부가 ‘초본’과 ‘완성본’이라는 단어로 각 문서의 성격을 정리해 사건의 본질을 명징하게 했다. 실무자가 정상회의록의 녹취 완성본을 만들면서 부정확한 초본은 보안과 혼선 방지 등을 위해 지웠다는 것이다. 초본과 완성본 사이에는 반말이 높임말로 바뀌는 등의 변화가 있지, 내용은 기본적으로 같다는 점은 검찰조차 인정했다.

ⓒ시사IN 자료‘사초 폐기’ 논란은 여권이 주도했다. 왼쪽부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정문헌 의원, 남재준 전 국정원장.

하지만 검찰은 재판 내내 ‘노무현 탓’을 펼쳤다. 훗날 정상회의록이 공개될 경우 자신이 정치적으로 곤란해질 상황을 막기 위해 삭제를 지시했다는 논리를 법정에서 설파했다. 심지어 기소 후 1년이나 지난 지난해 11월에서야 이와 같은 범행 동기를 추가해 공소장 변경을 했다. 이 때문에 “샅샅이 뒤지며 수사할 동안에도 찾지 못했던 범행 동기를 재판 중 갑자기 어떻게 찾았느냐”라는 변호인 쪽의 반발을 샀다.

무죄판결이 난 날 노무현재단은 “검찰은 수사는 물론 공판 과정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모욕 주기에 열을 올렸다. 노 대통령을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피고인석에 앉혔다”라고 논평을 냈다. 그만큼 이번 재판은 ‘노무현 재판’이기도 했다는 말이다.

검찰은 항소하겠다고 밝혔지만, 당장 체면을 구겼다. 수사팀 29명에 4억여 원 상당의 디지털 증거분석용 특수 차량까지 투입하는 등 대대적인 예산을 투입했던 수사가 1심부터 실패했다.

기록 관리의 정상 프로세스가 ‘사초 폐기’ 사건으로 둔갑한 데에는 정치권의 영향력이 컸다. 연산군도 안 하던 짓이라며 2013년 7월 새누리당이 고발해 시작된 수사였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다음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초 증발은 국기를 흔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언급했다. 정권에 코드를 맞춘 무리한 기소였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정상회의록을 봤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은 여당 인사들은 ‘봐주기’로 일관한 점도 검찰 비판에 힘을 싣는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현철)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라고 말해 이 사건에 불을 붙인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만 약식기소했다. 정상회의록과 똑같은 내용을 대선 유세장에서 읊었지만 출처가 ‘지라시’라고 둘러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2급 기밀문서였던 정상회의록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공개한 남재준 전 국정원장 등에게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나마도 법원이 제동을 거는 바람에 정문헌 의원은 정식재판을 받았다. 이현철 부장검사는 약식기소 때와 같은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부장 김우수)는 두 배인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으로 오랫동안 정치·사회적 논란과 대립이 일어났고, 외교 신인도에 큰 손상을 초래했다. 향후 남북 정상 간 회담 개최 결정 및 회담 과정에서 남북 정상 모두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게 될 여지도 없지 않다(2014고합704)”라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자신의 발언에 정치 생명을 걸겠다던 정 의원은 슬그머니 항소를 포기했다.

정상회의록을 둘러싸고 봐주기와 무리한 기소를 남발한 ‘정치 검찰’은 결국 법원의 제재를 받았지만, 이 판결이 검찰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김광수 부장검사는 지난 2월23일 법무부 대변인으로 영전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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