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잔치>안재성 기록주목 펴냄
1991년 5월은 뜨겁고 암울했다.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의 진압으로 숨지고, 분신이 이어졌다. 그해 여름, 모두 13명이 사망했다. 전민련 사회부장이던 김기설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위기에 몰린 노태우 정부는 희생양을 찾았다. 김기설의 동료 강기훈이 유서를 대필했다고 마녀사냥에 나섰다. 검찰은 그를 범인으로 몰았다. 법원은 강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외대를 찾은 정원식 총리에게 밀가루를 뿌린 사건’과 맞물려 운동권은 패륜으로 몰리고, 정권은 위기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24년이 지났다. 2015년 5월14일, 대법원은 재심을 통해 ‘강기훈 무죄’를 확정지었다.

〈거짓말 잔치〉는 ‘강기훈 사건’을 다룬 논픽션이다. 작가 안재성씨가 재판 기록 등 공식 자료에 기초해 당시 일을 세세히 기록했다. 작가는 공정성을 위해 강기훈씨와 주변인들이 겪었을 심정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놀랐다거나 침통했다거나 하는 심리 묘사도 진술서에 나와 있을 때만 인용했다. 감정이 절제된 기록. 그런데도 읽는 내내 마음의 요동이 크다. 어떻게 한 사람을 이렇게 짓밟을 수 있나. 건조한 문체를 통해 부도덕한 정권과 ‘법 기술자’에 대한 분노가 전해져온다.

무죄를 유죄로 만드는 데 기여한 김기춘·강신욱·신상규·곽상도 등 당시 법무부와 검찰 관계자들은 출세가도를 달렸다. 이들 중 누구 하나 사과하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도 마찬가지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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