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상 타결에 불만이 고조된 이스라엘을 달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눈물겹다. 미국은 자국 스파이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유대계 죄수의 사면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일종의 화해 제스처였다. 하지만 체면만 잔뜩 구긴 채 기대한 효과를 얻지 못했다.

문제의 죄수는 미국 해군정보사령부 정보분석관 출신인 조너선 폴라드(60). 유대계인 그는 이스라엘 공군 대령 출신의 한 인사에게 1984년 6월 포섭되었다. 중동에서 벌이는 미국의 스파이 활동에 관한 1급 기밀을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대가로 현금 1만 달러와 귀금속, 호텔 숙식비와 보석 구입비 등 5만 달러 이상을 보상받았다. 폴라드는 1985년 11월 간첩 혐의로 체포됐고, 1987년 유죄가 인정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현재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위치한 연방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7월28일 미국 정부의 사면 결정에 따라 형기 30년을 채우는 11월 석방된다. 미국의 전격적인 결정이 없었다면 그는 감옥에서 최소 15년 이상 더 보내야 할 처지였다. 폴라드의 변호사와 지지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11월 이전에 그를 석방해줄 것과 석방 뒤 이스라엘로 출국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탄원한 상태다.

ⓒAP Photo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애슈턴 카터(왼쪽) 미국 국방장관이 7월21일 예루살렘에 있는 총리실을 찾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폴라드는 줄곧 “미국을 위해하려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지극한 애정’에서 스파이 행위를 했다”라고 말해왔다. 미국으로서는 조국을 배반한 반역자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1995년 정식 시민권을 받은 ‘국민 영웅’이다. 그가 수감된 이후 이스라엘이 범국가적 차원에서 역대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맹렬한 사면 로비를 펼친 이유이기도 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0년 12월 오바마 대통령에게 사면을 촉구하는 공식 서한을 보내고 야인 시절인 2002년 1월에는 옥중의 폴라드를 직접 찾았다. 또 2012년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은 이스라엘 국회의원 80명의 서명이 담긴 사면 탄원서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심지어 2010년 중동평화협상이 한창일 때, 이스라엘은 요르단 강 서안의 정착촌 건설 중단을 10개월 더 연장하는 조건으로 폴라드 석방을 미국에 제의하기도 했다.

ⓒAP Photo조너선 폴라드(위) 전 해군정보사령부 정보분석관은 스파이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폴라드 사면 운동에는 미국 내 유대계 인사들도 적극 동참했다. 2011년 하원 정보위원장 출신 리 해밀턴 전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사면을 촉구했다. 2010년 11월 연방 국회의원 29명이 사면 탄원서를 백악관에 보냈다. 또 2011년 조지 슐츠·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폴라드의 감형을 촉구하는 서한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고, 공화·민주당의 전직 연방 상원의원 18명도 이 대열에 참여했다.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미국 내 유력 인사들까지 폴라드의 사면을 요구했지만, 그간 미국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앙정보국과 연방수사국, 법무부 등 주무부서가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보 당국은 폴라드가 넘긴 기밀자료 중 일부가 1980년대 옛 소련에 들어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중대한 피해를 끼친 만큼 사면은 절대 안 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란 핵협상 타결 뒤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오바마 행정부 1기 출범 이후 악화되기 시작하던 미국·이스라엘 양국 관계가 이란 핵협상 타결로 최악의 상황에 빠지자 이를 개선하기 위해 ‘폴라드 사면’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7월24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복수의 행정부 관리 말을 인용해 “오바마 행정부가 폴라드 석방 준비에 들어갔다. 미국 관리들은 이 같은 조치가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순탄하게 해주길 희망한다”라고 전했다.

정치분석가 대다수도 사면 카드가 이스라엘을 달래기 위한 화해 제스처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스라엘 신문 〈예디오스 아로노스〉 칼럼니스트 로넨 버그만은 “폴라드의 사면 시기를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 폴라드는 이란 핵협상 타결과 관련해 이스라엘을 위로하기 위한 상이다”라고 썼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미국 정부는 적극 부인한다.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은 CNN 방송에 나와 “폴라드는 관련 형법에 따라 장기형을 복역한 사면 가능성이 있는 죄수 중 한 사람일 뿐이다”라며 이란 핵협상과의 연계설을 부인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사면 결정은 외교적 사안과 결코 연계되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론은 이들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사면 카드가 ‘노린 건’ 이스라엘이 아니다?

사면 카드가 미국의 ‘의중’대로 효력을 발휘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현재까지는 부정적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란 핵 문제를 자국의 ‘존재’ 차원에서 취급했던 이스라엘이 폴라드 석방을 대가로 이란 핵 타결 반대를 철회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암논 루빈스타인 이스라엘 헤르즐리야 대학 교수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게 미국의 의도라면 순진한 생각이다. 두 사안은 완전히 별개다. 하나는 인도주의적 사안인 반면 다른 하나는 대다수 이스라엘인들이 실존적 문제로 간주하는 전략적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폴라드의 석방을 고대한다”라는 말 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 같은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폴라드 사면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얻을 반사이익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사면 결정이 폴라드 석방을 위해 로비해온 민주당 찰스 슈머 상원의원 등 유대계 의원을 겨냥했을지 모른다’라고 지적했다. 유대계 의원의 마음을 얻는다면 9월 초에 있을 의회의 이란 핵협상 타결안 찬반 투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에는 상원의원 44명 중 유대계 의원이 9명, 하원은 188명 중 18명이 있다.

의회는 타결안에 대한 심의가 끝나는 9월 초 상·하원 표결에 들어간다. 현재 공화당은 타결안을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우군인 민주당의 지지가 절실하다. 물론 공화당이 장악한 상·하원에서 타결안이 부결되어도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 일부가 공화당에 가세할 경우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을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슈머 의원처럼 영향력 있는 중진 의원을 포섭하는 게 중대한 과제다. 그런 점에서 폴라드 사면 카드는 이들의 마음을 얻는 데 일조했으리라고 백악관은 판단한다. 폴라드 카드가 겉으로는 이스라엘을 겨냥하지만 실제로는 민주당 유대계 의원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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