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노키즈존(No Kids Zone) 논란이 일고 있다.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 때문에 곤란해하던 카페나 음식점에서 아이들 출입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환영파도 있고 비난파도 있고, 와글와글해질 수 있는 문제인데, 그림책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닐까.

비아트릭스 포터는 작은 사내아이의 넘치는 본성의 기운을 피터 래빗이라는 토끼에 얹어 풀어냈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뛸 만큼 뛰고, 그런 다음 녹초가 된 피터를 엄마가 침대에 눕히고 약을 먹여주는 이야기. 입은 쌉쌀하지만 몸은 충분히 풀린다.

모리스 센닥은 환상 세계로 넘실넘실 항해해 가서 괴물들의 왕이 되는 맥스를 보여준다. 자기를 잡아먹겠다고 덤비는 괴물들을 단숨에 제압하고, 함께 괴물 소동 놀이를 하는 명장면들! 한바탕 엔도르핀이 솟고 난 뒤, 아이들은 맥스와 함께 야생의 시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현실에서 몸으로 실컷 분출할 수 없는 어린 야생의 에너지는 그림책에서 이렇게 풀린다.

한성옥은 역설, 그러니까 거꾸로 말하기를 사용한다. 전시장에서 ‘나 잡아봐라’ 하며 뛰는 아이들, 선을 넘어가 조각품에 손을 대는 아이들, 연극이 공연되는 극장 안에서 떠드는 아이들, 하나만 받아야 할 기념품을 두세 개씩 쓸어 담는 아이들. 아이고, 사랑스러운 녀석들! 엄마와 아빠는 그런 표정들이다.
 

<행복한 우리 가족> 한성옥 지음, 문학동네어린이 펴냄
묘하게 뒷목이 당기는 가족…‘우리’는 어때?

그러면서 부모는 아이들 앞에서 모범을 보인다.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고, 불법 유턴을 하고, 과속을 하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잔디밭에 갖고 가지 말아야 할 음식물을 갖고 들어가 먹고, 흘리고 그냥 나온다. 장애인 자리에 편안히 주차하고 집으로 들어온 이 가족의 하루 마무리는, ‘정말 잘 나온’ 사진과 ‘피곤할 텐데 용케’ 쓴 일기로 자신들을 과시하는 블로그 올리기이다.

정말이지, 〈행복한 우리 가족〉 아닌가. 독자의 몸에서 나오는 반응은? 피이, 비웃음이다.

이쯤에서 표지와 면지를 다시 유심히 볼 것을 권하고 싶다. ‘행복한 가족’의 꼬리에 폭탄이 하나 매달려 있다가 뻥! 터진다. 매캐한 연기 사이로 이 가족의 새까만 속사정이 너덜너덜 드러난다. 흠, 볼만하군! 그런데 묘하게 뒷목이 당긴다. 이 볼만한 꼴이 이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걸까? 비웃음이 슬그머니 방향을 돌려 내게로 날아온다. 그러면서 쓴웃음으로 변한다.

역설은 그렇게 쓴웃음을 끌어낸다. 쓴웃음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낮춰보게 만든다. 비난과 훈계와 분노보다 겸손하게 효과적이다. 노키즈존으로 시끄러운 논란의 장에 이 쓴웃음이 좀 퍼질 수 있다면 좋겠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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