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네스티 “성매매 관련자 모두를 처벌하지 말자”
세계적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이하 앰네스티)가 성매매 관련자 모두를 처벌하지 말자는 방침을 표결로 정했다. 8월11일 앰네스티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국제 대의원 총회를 열었다. 총회에는 60개국에서 약 400명이 참석했다. 각 지부 회원 수에 따라 표를 할당받는데, 한국지부는 3표를 행사했다. 앰네스티는 구체적인 표결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최종 보고서는 국제이사회 회의가 열리는 10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모든 앰네스티 조직은 앞으로 성매매와 관련한 활동을 벌일 때 이 정책 방향을 따르게 된다.
여성이 대부분인, 성을 파는 이들을 처벌하지 말자는 주장에 대해 인권단체나 여성단체 사이에서도 이견이 크지 않다. 구조적인 차별과 불평등의 희생자로서 성을 파는 처지에 몰린 이들은 처벌받기보다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문제는 성매매에 관여하는 다른 사람들이다. 앰네스티의 이번 결정은 판매자는 물론 구매자와 알선업자, 업소 주인까지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것이다.
앰네스티는 어떤 방식으로든 성매매를 범죄로 보게 되면 그에 따른 위험은 결국 가장 약자인 성노동자(성을 파는 사람)에게 전가된다고 반박한다. 성을 파는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논리다. 앰네스티는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2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 유엔 에이즈계획(UN AIDS), 유엔 건강권특별보고관(UN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 to Health) 등이 실시한 조사를 폭넓게 검토했다. 성매매 종사자, 관련 단체를 만났다. 아르헨티나, 홍콩, 노르웨이, 파푸아뉴기니 등 4개국에 대한 자체 조사도 실시했다.
앰네스티는 ‘스웨덴 모델이 실패했다’고 판단
이번 결정에서 앰네스티는 ‘노르딕 모델’ 또는 ‘스웨덴 모델’이라 불리는 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성을 파는 이들을 처벌하지 않는 대신 구매자 등 다른 관련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수요를 억제하는 이 모델은 성매매 폐지를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안으로 지지해왔다. 1999년 스웨덴이 처음 도입한 이래 아이슬란드, 캐나다, 노르웨이, 북아일랜드 등 많은 곳이 이 정책을 채택했다. 올해 나온 스웨덴 정부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웨덴의 주요 도시에서 길거리 성매매가 1995년 이후 절반 이하로 줄었고, 성을 구매했다는 남성의 수 역시 40% 넘게 감소했다(경찰 추적을 꺼리는 고객들 때문에 많은 성매매가 음성화하고, 따라서 성 판매자들이 더 위험해졌다고 보는 연구자도 있다).
이번 앰네스티 결정이 성매매(성노동) 합법화도 아니다. “만약 성노동이 합법화된다면 정부는 공식적으로 성노동을 규제하는 매우 구체적인 법률과 정책을 마련할 것이고 이런 규제는 또 다른 운영 방식을 야기해, 결국 규제를 피한 성매매로 성노동자들은 다시 처벌받게 될 수 있다.” 앰네스티는 성 판매자 2명이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함께 일하는 것도 ‘집창촌’으로 간주해 금지되는 등 성노동자의 인권과 관련이 없는 입법 사례에 주목했다. 그러면서도 앰네스티는 합법화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법이 만들어진다면 성노동자의 인권을 증진시키고 국제인권법에 부합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가디언〉 사설은 합법화가 아닌 ‘비범죄화’에 강조점을 두는 이 같은 제안에 대해 “언제부터 규제되지 않는 시장이 인권을 보장했는가”라고 반문했다.
앰네스티가 말하는 대로 모든 처벌을 제거하면 성매매 시장과 성 산업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닐까? 많은 여성단체가 우려하는 지점이다. 여성인신매매반대연합(CATW)은 비범죄화로 이익을 얻는 유일한 이들은 알선업자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2002년 성 판매자의 법적 지위를 강화할 목적으로 성매매를 합법화한 독일에서 섹스 관광과 같은 성 산업이 번창하는 것은 단골 사례로 인용된다. 비범죄화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독일처럼 법을 완화한 나라들이 오히려 인신매매를 부추겼다고 말한다(앰네스티는 그 같은 증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한국 여성단체들이 앰네스티 결정을 비판하며 낸 논평에도 이런 우려가 담겨 있다. “불평등과 불의에 기반하여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더욱 활개를 치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한국여성단체연합 등 5개 단체 논평, 8월13일)
성 판매자 처벌에 대해 위헌 심판이 진행 중
결국 세계관의 충돌이다. 앰네스티는 어떤 형태의 인신매매에도 반대하며 아동을 성적으로 착취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했다. 하지만 강제·착취·학대가 개입되지 않은, 성인이 서로 합의한 성매매 그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판단은 하지 않았다. 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는 “합의에 의한 성노동이 인권침해라는 생각은 윤리적이고 가치적인 판단이다. 우리는 그것을 판단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는 비범죄화로 성산업 시장이 커지더라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성매매 시장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강요나 인신매매로 성매매에 유입되는 이들을 줄이고 이미 종사하는 이들의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앰네스티 결정에 반대하는 많은 인신매매 반대 단체와 여성 단체에게 성매매는 그 자체로 인권침해다. 이들이 보기에 비범죄화는 성매매 근절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다. “포주와 고객을 비범죄화하는 것이 그 시장을 거대하게 부풀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장이 커지면서 학대자들이 더 많아졌고, 명백한 결과로서 학대가 더 많아졌다”라고 아일랜드에서 7년간 성매매를 경험한 레이철 모란은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정미례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공동대표는 “성매매 자체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고 착취다. (성 판매자가)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전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구매자와 알선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성매매 여성이 덜 위험해진다는 것은 허상이다”라고 일축했다.
한국 성매매특별법의 경우 구매자와 알선자, ‘자발적’ 성 판매자 모두를 처벌한다. ‘성매매를 한 사람’을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하는 조항에 대해 2014년 성매매 종사 여성이 위헌 심판을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현재 성 판매자를 처벌하는 것이 위헌인지 심리가 진행 중이다. 지난 4월9일에는 헌법재판소가 첫 공개 변론을 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