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이 사과했는데, 일본에 위안부 문제 사과를 계속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발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다.” 박근혜 대통령 동생 박근령씨(전 육영재단 이사장)가 일본 포털 사이트와 한 인터뷰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례적으로 박 대통령 측근들 사이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원로 측근 그룹 ‘7인회’ 멤버인 새누리당 김용갑 상임고문은 “국민이 박 대통령을 향해 ‘자기 동생도 관리하지 못하면서 남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도로 계획된 발언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한 전직 국회의원은 “근령이가 박씨 집안에서 가장 마음씨 곱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냥 막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 자식 중 유일하게 서울대 나왔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파문 이후, 박근령씨의 남편 신동욱 공화당 총재(47·전 백석대 교수)가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있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9월7일 신동욱 총재를 만났다. 신 총재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
박근령씨가 일본에서 한 인터뷰 때문에 비난을 많이 받았다. 아내가 가슴속 신념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여파가 너무나 컸다. SNS에서 “광화문에서 보면 죽여버리겠다” “1억원이 있으면 신동욱 암살 현상금을 내걸고 싶다”라는 글을 보거나, TV 패널이 “박근령씨 입에 지퍼를 채우고 싶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섬뜩하다. 한·일 간에 평행선이 이어지면 아버지가 이루어놓은 한·일 관계를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까먹었다는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아내가 했다. 친구끼리 싸우고 나서 “술 한잔 먹자” 하면 사과 아닌가. 꼭 “사과할게. 반성하고 있다”만이 사과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왜 그 단어가 들어가야만 사과라고 생각하나. 종전 70주년,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문제를 풀어보자는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참여한 거다.

발언들은 박근령씨의 소신이었나? 거기서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우리 부부는 위협을 당하더라도 소신을 다해 이 나라를 구했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구했다? 박근령 인터뷰가 대한민국과 박근혜 정부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발언 이후 대통령 지지율이 2%가량 내려앉았다가 다시 반등했다. 전문가들은 8월14일 임시공휴일 때문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수준이 그렇게 낮지 않다. 흐트러진 보수 세력이 박근령 발언으로 집결한 것이라고 본다.

인터뷰 때 돈을 받지는 않았나? 비행기 표와 숙소를 지원받았을 뿐 인터뷰 사례로 돈을 받지는 않았다. 우리 부부는 부정부패에서 자유로워지려고 정말 노력했다. 그렇게 살아온 우리가 가난 때문에 양심을 팔고 매국노질을 했을 거라는 시선이 죽임보다 더 가슴 아프다.  

일본 발언 후 청와대에서는 뭐라고 하던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연합뉴스2007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모인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박지만씨와 부인 서향희씨·박근령씨(맨 오른쪽부터).
박근령씨가 “대통령이 못하는 얘기를 대신 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청와대에서 한마디가 없었다는 건가? 없었다. 그 이전에도 별말 없었다.

박근령씨와 신 총재를 관리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이 없다는 말인가? 모른다. 지금까지 청와대 사람을 만난 건 대통령 화환 사건 때 한 번이 전부다. 아내 환갑 때 대통령 이름으로 화환 한 번 받았던 게 자작극이라는 의혹까지 일어서다(2014년 6월 박근령씨 환갑 때, 박 대통령이 보낸 호접란을 받았다는 SNS 사진이 올라왔다. “축 환갑. 둘째야 사랑한다, 대통령의 딸인 대통령 언니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청와대 국장이라는 사람에게 감청·도청은 다 시간 낭비고 날 쫓아다닐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게 전부다.

일본에 다녀온 후 어떻게 지내나.

얼마 전 공화당 의장이 경기도 포천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는 공화당을 만든 산파이자 나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당 주변에서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공격을 많이 당하고 있다. 가까이 있는 동지들이 모두 불안에 떨고 있다. 나 또한 무섭고 불안하다.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 사건 이후 악몽을 많이 꾼다. 그런데 이젠 공화당에 대해 선관위 조사까지 시작됐다.

선관위 조사라니? 지난주 월요일(8월31일)에 조사받았다. 공화당 홈페이지에 당비 계좌번호를 후원금 계좌로 표기한 게 문제가 있다는 것과, 당원이 아닌 사람이 당비를 냈다는 의혹 때문이다. 공화당 당비가 1년에 668만원이다. 그중에 우리 가족이 3분의 1 정도를 냈으니까 나머지 400만원 정도를 가지고 조사한 것이다. 벼룩의 간을 내 먹지, 거기서 유용할 돈이 어디 있겠나. 공화당에는 유급 당원이 없다. 정치 동호회처럼 각자 생업이 있고 시간이 날 때 활동을 한다. 거의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한다. 선관위는 검찰로 사건을 이첩했다고 했다(선관위 담당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있어서 절차에 따라 조사했고 혐의가 드러나 검찰에 이첩했다”라고 말했다).

다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 명백한 정치 탄압이다. 정말 검찰에까지 이첩될 줄은 몰랐다. 검찰과는 악연이 있어서 두렵다. 요즘 사극을 자주 보는데 우리 부부는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고초를 당한다. 왜 그렇게 우리를 죽이려 드는지 모르겠다. 아내 곁을 떠나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있다. 하지만 나까지 없으면 아내는 더 고초를 겪을 것이다. 우리는 여에도 야에도 서 있을 공간이 없다. 어딜 가도 우리 편이 아니라고 한다. 박근령과 신동욱의 나라는 독도 같다. 장수가 적군의 화살에 맞아 쓰러지면 영광이지만 전장에 나가지도 못하고 아군의 칼에 맞으면 얼마나 비통한가. 그렇다고 적군에게 갈 수도 없고.

구속된 전력이 있다(2007년 신동욱 총재는 중국 칭다오에서 박지만 EG 회장의 사주를 받은 박용철씨(박지만 회장의 5촌 조카)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며 박 회장을 살인교사 혐의로 고소했다. 칭다오에서 살해 위협을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을 사주한 이가 박지만 회장이라는 증거를 대지는 못했다. 결국 신동욱 총재는 2심에서 무고 혐의로 구속된다. 재판 과정에서 신씨의 결정적인 증인 박용철씨가 살해당했다. 박용철씨 살해범으로 지목된 5촌 조카 박용수씨도 변사체로 발견된다. 그 후, 박용철씨의 운전사 노릇을 했던 황 아무개씨도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항소심 선고(2011년 8월16일) 전까지 귀신을 붙들고 싸우는 듯한 처절함이 있었다. 아무도 내 얘기에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항소심 선고가 났을 때 재판부를 향해 수류탄이 있다면 던지고, 기관총이 있다면 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구치소로 가면서 결심했다. 가족으로서의 도리가 우선이니 모든 걸 가슴에 안고 죽겠다는 생각으로 상고를 포기했다. 나 하나 희생해서 3남매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조카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느님이 나를 살리려 여기(감옥)에 놓으셨다’라고 생각했다.

박근령씨는 박지만 회장 측에 육영재단을 빼앗겼다. 출소 후, 청와대로부터 어떻게 지내라는 말이 있었나? 먹고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았나?(육영재단을 두고 박근령씨와 박지만씨 측은 폭력배까지 고용해 격하게 싸웠다. 결국 한센병 환자 100여 명을 해결사로 고용한 박지만 회장 측에서 박근령씨 측 폭력배들을 몰아냈다. 이후, 해결사로 동원됐던 한센인 대표 임두성씨는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전혀 없었다. 출소하면 모든 게 정리가 될 거라 생각했다. 출소 후 아내에게 “억울함은 있지만 옥살이로 내 마음의 빚은 다 덜어낸 것 아니냐”라고 했더니 “당신은 남은 인생 동안 나에게 정말 잘해야 합니다”라고 하더라. 알고 보니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이혼만 하면 모든 부채를 정리해주고 평생 살 만한 돈을 주겠다는 유혹이 있었다고 하더라. 우리 가문을 지키려 노력한 사람을 어떻게 배신할 수 있냐며 다 돌려보냈다고 한다. 2013년 출소할 즈음, 〈동아일보〉 단독 기사가 나왔다. “박 대통령 제부 만기 출소, 청와대 신경 쓰이네”라는 제목이었다. 내가 숨 쉬는 것 자체가 신경 쓰인다면 그것도 불충이 아닌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쪽과 이야기했다. “이 정권 동안 외국으로 보내달라. 한국 땅을 영원히 밟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신변 안전은 보장해달라. 그것도 용서가 안 된다면 이혼하겠으니 아내만은 보호해달라. 힘이 약해서 억울하게 당한 죄밖에 더 있나.” 그쪽에서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최필립 이사장이 돌아가시면서 물 건너갔다. 공화당은 초미니 정당이지만 박근혜 정부를 위해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는 당에서 따님을 모시지 않으면 모순이다. 제가 정부에 비수를 꽂아야 하는 일이 있다면 정치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천륜을 저버리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천륜인데, 대통령 형제들끼리는 왜 이렇게 사이가 좋지 않은가? 내 시각은 좀 다르다. 아내는 대통령과 직접 소통은 없지만 간접 소통은 이뤄진다. 처남(박지만씨)과는 직접 소통이 있다. 일본 발언 이후에 처남으로부터 “누님 건강이 우선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왔다.

일본 발언과 관련한 말은 없었나? 그저 그것뿐이었다. 집을 마련해준 것도 그렇고(지금 박근령씨가 거주하는 전셋집은 박지만 회장이 마련해주었다). 지금 청와대와 단절돼 있다고 대한민국 사람들이 전부 알고 있는데도 아내를 찾아와 부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청와대를 다녀왔다고 하면 우리 아내 성품상 그걸(청탁들) 다 감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또 일본에 가는가. 무슨 일정이 있나? 아내가 지난번 일본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시력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성격도 밝아졌다. 9월8일에는 진료차 일본에 간다. 10월에 열리는 교토 영화제 특별심사위원 위촉장도 받을 예정이다. 우리 부부는 한·일 관계를 위해 민간외교라도 하자는 생각이다.

일본에서 또 인터뷰하는가? 인터뷰 계획은 없다.

〈시사IN〉에 인터뷰를 요청한 이유는? 선관위 조사를 받으면서 너무 억울하고 가슴이 아팠다. 아내가 심리적으로 너무 위축돼 있다. 주진우 기자와 나의 공통점 하나는 깨끗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열심히 싸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러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낀다. 다시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나. 진실은 왜곡될 수 있지만 진실이다. 살아서 평가를 못 받는다면 죽어서라도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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