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박근혜 대통령, 국정화 강행 이유는?


‘자유의 적’이 된 자유주의자들


최인훈의 〈광장〉이 공산주의 미화?

 

해외 학자들 “한국 정부 국정화, 아베와 똑같아”


국정화 전선, ‘상식 대 비상식’으로

 

국정화가 몰고 온 역사 열풍

 

 

해외에서 한국 관련 연구를 하는 교수와 강사 204명(10월30일 현재)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의견을 밝혔다. 10월24일 154명이 성명서를 발표한 이후 지속적으로 느는 추세다.

‘한국 역사학자들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지지하는 성명서’에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 대학 교수, 놈 촘스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교수,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 대학 교수, 새뮤얼 킴 컬럼비아 대학 교수 등이 동참했다. 일본 근대사를 전공한 알렉시스 더든 교수는 지난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 왜곡에 항의하는 학자 500여 명의 참여를 이끌어낸 바 있다.

해외 한국학 연구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한국 정부의 국정교과서 계획은 민주국가로 인정받은 한국의 국제적 명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일본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를 둘러싼 지역 내부의 분쟁에서 한국의 도덕적 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역사에 단일한 해석을 적용해 ‘올바른’ 역사를 만들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해외 한국학 연구자들이 성명서를 통해 의견을 밝힌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반년 만에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이 일면서다. 2008년 11월, 당시 브루스 커밍스 교수, 카터 에커트 하버드 대학 교수, 찰스 암스트롱 컬럼비아 대학 교수 등 해외 학자 114명이 “역사 교과서를 강제 수정하려는 시도는 집권 세력의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으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스스로 훼손한 행위다”라고 비판했다.

ⓒ시사IN 신선영10월24일 해외의 한국학 연구자 154명이 발표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서. 10월28일 현재 여기에 동의하는 연구자가 203명으로 늘었다.

2009년, 북미 학자 240명은 6월항쟁 22주년을 맞아 ‘한국 민주주의 역행’을 우려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2013년에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침해를 우려한다’는 내용에 해외 한국학 연구자 206명이 동참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에 참여한 해외 한국학 연구자 가운데 6명으로부터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들었다. 인터뷰는 이메일과 전화 통화로 진행했다.

 

● 박노자(42·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동방언어 및 문화연구학과 한국학 전공 교수/ 모스크바 대학에서 한국 고대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모스크바 대학과 경희대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2011년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볼 때 긍정적으로 조명되지 않는 부분을 바꾸려는 정치 행위일 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일제강점기에 일부 조선인이 관료로 ‘출세’한 것을 긍정적으로 서술하려는 거다. 역사학자가 이런 일을 할 수 없으니까 전문가 집단 전체를 배제하고 정치가 뛰어들었다. 지금 상황은 시민과 지식인이 반대해도 무시하고 끝까지 추진할 태세다. 명분을 잃었지만 후퇴도 못하고 본인이 판 함정에 스스로 빠져 국정교과서를 반드시 실현시킬 것이다.

국정교과서의 탄생은 한국과 중국 관계를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 집단은 일제 침략에 대한 한국 또는 조선 민중과 중국 민중의 투쟁을 역사의 큰 흐름으로 본다. 조선에서는 김구 선생이 국민당과 손잡고 독립운동을 펼쳤고, 조선 공산주의자는 중국 공산당과 손잡고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은 중국과 협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식으로 ‘교정’된 서술은 한국 역사가 대일본 제국의 일부가 되는 거다. 일제 식민지가 긍정되고 독립운동은 합법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묘사될 위험이 있다. 그러면 한국의 과거는 중국과의 공동 역사 담론과 멀어지면서 역사적·지역적 동질성이 깨진다. 북한의 항일 투쟁 위주의 역사 서술과도 결정적으로 이질화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 우파를 강화시키는 교과서가 될 거다. ‘일제가 한국의 자본주의를 배양시켰다’ ‘일제강점기에 출세한 사람이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다’는 식이다.

박근혜 통치기에 접어들어 국내 상황은 본질적으로 바뀌었다. 노르웨이에서는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면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기록될 것이다. 정치적 단죄는 물론이고 당장 하야할 일이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도 대통령이 계속 통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자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벌인다는 게 민주사회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국가권력이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파괴하는데 박근혜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이 절반이 된다니, 전반적으로 집단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은 한국에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해외 학자들도 연구하고 학생 만나느라 한국 사회에 개입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해외에서 한국학을 하는 사람조차 좌시하지 못할 만큼, 한국의 민주화 성과가 무너져가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종범이 되는 기분마저 든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에서 한국학을 하는 이들은 한국 국가기관으로부터 지원금 등 보조금을 받기 때문이다(박노자 교수는 현재 한국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학생들이 새로운 ‘교과서’에 시달려야 할 상황이 안타깝다.

 

● 도널드 베이커(70)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아시아학과 교수/ 정약용의 사상을 연구하면서 2008년 외국인 최초로 다산학술상 학술대상을 수상했다. 평화봉사단 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긴다.

먼저 한국에서 ‘학문의 자유’ 제한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교수와 교사, 학생들에게 지지의 뜻을 밝힌다.

우리는 역사가로서, 역사가 결코 어떤 고정된 형태를 띨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모호함으로 가득하다. 역사의 탐구가 풍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역사로부터 얻은 통찰은 우리가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미국의 철학자 겸 시인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것을 되풀이할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아베 정부가 하려는 역사 왜곡과 사실상 똑같다. 그들은 역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해 정부의 목적에 따라 이용하려고 한다.

미국의 우익은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느냐를 놓고 수십 년간 싸워왔다. 언젠가 미국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가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는 국립인문학재단이 운영하는 프로젝트에 상당한 예산을 배정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세우는 프로젝트였는데, 부시 2세 행정부가 정권을 잡고 딕 체니 부통령의 부인을 국립인문학재단 수장 자리에 앉힌 이후, 그 프로그램은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역사에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도록 요구한다는 이유로 종료시킨 바 있다. 그 지침은 아예 대중에 공개되지도 못했다. 이는 고등학생들이 스스로 미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할 만한 내용보다 미국 정부가 과거에 저지른 실수들에 지나치게 치중했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역사가들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역사가들은 한 가지 정답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역사가는 역사가들끼리도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과거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켜나가는 방법이다. 과거에 대해 논쟁함으로써 그로부터 교훈을 얻고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에 다다르게 된다.

 

● 군 드 괴스트르(52)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한국학과 교수/ 1994년 벨기에 루뱅 대학에서 ‘윤치호 사례로 본 한국 문화 민족주의의 딜레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 기억의 정치, 역사 서술 등을 연구해왔다.

지난 몇 주간 진행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을 보면 교육부가 정치 중립적인 기관이 아닌, 특정한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권력자가 만족해할 만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을 띤다. 교육부는 자기 스스로 인가한 교과서에 대해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보수 정권은 한국의 주요 역사학회를 북한식 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의 옹호자로 몰아세운다. 우스꽝스러운 수준이다.

국정교과서 논쟁이 ‘역사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가’ ‘역사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 없이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다. ‘올바른’ 역사가 존재한다는 주장과 ‘객관적’이라는 단어의 남발은 소름끼칠 정도다. 부인할 수 없이 절대적으로 옳은 역사가 존재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사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역사가들의 사실 해석은 구체적으로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1987년 6월항쟁은 경제사적 관점에서 한국 경제발전의 새로운 시기의 출발점으로 볼 수 있지만, 사회사적 관점에서 노동자 의식화의 새로운 국면으로 볼 수 있다. 둘 다 같은 시기를 다루지만, 서로 다른 자료를 사용하고 서로 다른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둘 다 국사라는 만화경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1986∼1990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있었다. 1987년 여름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민주화가 한 걸음 한 걸음 진행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 권위주의 국가에 맞선 학생과 활동가, 평범한 시민의 존엄과 끈기, 그리고 한국인이 근현대사 전체에 걸쳐 정치적·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은 사실에 나는 깊이 감명받았다. 당시 민주화 투쟁이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

한국 사회를 가르는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매우 극명하다. 정치적 양극화가 한국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지만, 한국의 경우 이데올로기 양극화가 여러 논쟁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 2008년에 시작된 ‘보수 결집’ 움직임은 뉴라이트가 한국의 국가 정체성을 ‘범한국’에서 ‘남한’ 중심으로 재정립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역사 교과서 논쟁은 여야의 정치적 대결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 렘코 브뢰커(43)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한국학과 교수/ 라이덴 대학과 서울대를 거치며 한국사를 공부했다. 탈북자 장진성 시인이 쓴 〈경애하는 지도자에게〉를 네덜란드어로 번역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남한의 민주화 역사’ ‘남한 자유주의’라는 사실과 상충한다. 세계에서 오로지 하나의 진실과 관점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나라는 전체주의 국가뿐이다. 제대로 기능하는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남한 정부가 처한 압력은 이해하지만(북한이 이웃인 상황은 어떻게 보아도 쉽지 않다), 교과서로 한 가지 관점을 가르치는 건 결국 자멸적인 행동이다.

오스만 제국이 서유럽 교과서들에 (악역으로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등장하지 않거나 터키 교과서에 아르메니아 학살이 누락된 것 등 교과서 논쟁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네덜란드 교과서만 보더라도 인도네시아 식민지 점령기와 독립전쟁 기간 중 네덜란드 군인들이 저지른 잔혹행위들을 사실상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면 정부가 교과서를 집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인은 정치를 해야 한다. 역사 서술은 역사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나는 남한의 국가 이미지가 크게 걱정된다. 남한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성공적으로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세계는 남한에서 배울 것이 많다. 지금 남한이 전 세계에 보여주는 모습은 전체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국가다.

 

● 마이클 페티드(56)

미국 뉴욕 주립대학 빙엄턴캠퍼스 한국문학 전공 교수/ 1983년 미국의 한 무역회사 직원으로 한국 지사에 파견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그 뒤 고전문학을 연구하고 이화여대, 버클리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한국사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해외 학자 대다수는 박근혜 정부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정부의 보수적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 학자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한국에서 역사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노골적인 왜곡이 증가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이처럼 역사를 고쳐 쓰고 통제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시도에 맞서 싸우는 한국 동료들에게 지지를 표하고 싶다. 성명을 낸 해외 학자들은 각자의 직업적 삶을 한국에 바쳐왔으며, 이전 세대가 일군 민주적 진보가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우리는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박근혜 정부가 자행하려고 하는 부정의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박근혜 정부가 이 방침을 철회하도록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미국인으로서 이 일이 미국 사회에 널리 알려지고,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박근혜 정부의 역사 왜곡 시도는 사실상 동일하다. 한·일 정부의 이와 같은 통제는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대판 분서갱유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인들이 역사를 결정한다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다시 말해, 반정부 인사의 투옥과 독재 시절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정녕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의 ‘좋았던 옛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하는가? 역사를 고쳐 쓰는 일이야말로 ‘과거’로의 첫걸음이다.

 

● 윤성주(54)

미국 칼턴 대학 역사학과 부교수/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중국사 및 동아시아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칼턴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역사 교육은 학생의 민족 특수성보다 건강한 세계시민의 정체성을 함양하도록 지향해야 한다. 예컨대 탈냉전 시대에 남북의 평화적 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원일 뿐 아니라 평화를 지향하는 인류 보편의 열망을 담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학생들은 ‘쿨리 무역’이 중국인이나 인도인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부끄러운 식민시대의 단면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비판적 사유, 열린 담론, 자유로운 연설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 학생 스스로가 동일한 역사적 주제에 대해 앞선 세대보다 한 차원 더 높은 해석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아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 역지사지할 수 있는 상상력, 끊임없이 정직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비판적 사유가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의 국정교과서 논쟁을 보면 시대착오적이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국가주의를 내세우는 정치집단이 시민사회의 공공 기억을 독점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학생들이 역사적 주제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고 열린 탐구를 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폭거다. ‘신(神)에 의한 정치’를 하는 국가에서는 가능한 일이겠지만, 한국은 민주국가다. 박근혜 정부 각료 가운데 국무총리나 교육부총리가 미국 남부 지역 일부에서 돌출하고 있는 극단적 근본주의자와 비슷한 신앙을 견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역사에 대한 단일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서술은 ‘역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다.

국정교과서 논쟁을 보면 시민사회는 성숙했는데 정작 국가권력의 대표가 이를 따라잡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이 미래를 ‘선도’하고 있다고 믿는 데서 문제가 증폭된다. 다른 학문보다 ‘인간학’이기를 자처하는 역사학의 경우, 식민지와 냉전 시대에 두드러진 국가폭력 같은 인류사의 보편적인 주제를 비켜갈 수 없다. 이는 ‘자학’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가들은 이를 정직하게 마주하고 이에 대한 이해를 높여 해결 방안을 제시하면서 소통하고자 한다. ‘권력’이 불편하다고 하여 특정한 역사 주제를 희석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있을 수 없다.

해외에서 국내 국정교과서 논쟁을 지켜보는 마음이 참담하다. 미국 현지 동료들을 비롯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학문 활동을 하고 있는 동료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정부가 “21세기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간곡히 바라”면서 현사태의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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