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첫걸음을 뗀 부산국제영화제가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 올해 제20회 영화제를 마친 부산국제영화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시아 최고 영화제다. 해가 가기 전에 부산국제영화제 20년을 정리하는 인터뷰를 하고자 부산 영화의전당을 찾아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이하 김 수석)를 만났다. 김 수석은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해온 터줏대감이다. 그런데 20년 소회를 묻는 질문에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담담하게 고발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구조 실패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이후 정치적 홍역을 치렀다. 정부 지원이 축소되고 영화제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부산시가 집행위원장 흔들기에 나섰다. 다행히 영화인들이 한목소리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하고 칸 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명 영화제 집행위원장 등이 지지 성명을 발표하면서 흔들기가 잦아들었다. 이후 부산국제영화제는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문화예술인들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그러나 부산시의 감사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본편의 주인공은 감사원이었다. 감사원이 부산국제영화제를 감사한 후 부산시에 고발을 권고했다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영화제를 반석 위에 올린 공을 인정받기는커녕 고발대 위에 선 김 수석으로부터 저간의 사정과 현재 심경을 들었다. 그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20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묶은 〈영화의 바다 속으로〉를 펴내기도 했다.
 

ⓒ시사IN 조남진

현재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감사원이 수개월 동안 감사를 진행했다. 대개 며칠 하고 끝내는데, 아주 이례적으로 오래 했다. 부산시의 감사도 5일에 불과했다. 정치적 의도가 명확한 감사였다. 감사원에서 부산시에 부산국제영화제 고발을 권고했는데, 조만간 고발할 것 같아서 상황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 임기가 내년 2월까지라 그 전에 뭔가 있을 것 같다.

감사원이 문제 삼는 부분이 무엇인가?
부산국제영화제는 재정의 많은 부분을 스폰서십에 의존한다. 연간 30억~40억원 규모다. 스폰서를 유치한 사람에게 사례비를 준다. 이 사례비 집행의 기록이 미비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 후원을 받기 어려워질 것 같다. 정부 지원도 삭감되지 않았나?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부산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을 지난해 14억6000만원에서 6억6000만원이 삭감된 8억원으로 책정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 신생 영화제를 돕겠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돈으로 신생 영화제를 지원한 것도 아니고 그냥 반납했더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영화제에서는 집행위원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칸 국제영화제나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경우도 한 집행위원장이 오랫동안 맡곤 하는데….
영화제는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이 네트워크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니다. 전임 김동호 위원장이 15년을 맡으며 초석을 다졌고 이용관 현 집행위원장이 7~8년 동안 부위원장으로 함께 일하며 자연스럽게 인수인계를 한 뒤 2011년부터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이용관 위원장의 경우, 영화평론가 출신으로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일본 영화제는 영화사 사장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경우가 많고 중국은 관료들이 주로 맡는데, 이런 관행이 영화제 성장을 막는 요소로 작용한다.

정치적 외풍에 시달린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않은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일은 있었다.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가 영화제에 왔다. 우리가 한 것은 “지금 김대중 후보가 입장하고 있습니다”라고 안내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자 당시 야당에서 김 후보를 홀대한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당시 여당 소속인 이회창 후보가 남포동 야외무대에 오르려는 것을 오석근 사무국장이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막은 일도 있었다. ‘영화제 무대 위에는 오직 영화인만 오를 수 있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당시 현장에 있던 문정수 전 부산시장이 ‘그때 이회창 총재를 단상에만 올렸으면 내가 부산시장에 재선될 수 있었는데 영화제 측에서 막는 바람에 한 번 더 못했다’고 농담처럼 타박하기도 했다. 허남식 부산시장 재임 시절 한진중공업 다큐멘터리 상영을 놓고 문제가 제기됐는데, 시장이 ‘알아서 하라’고 해 상영된 적도 있다.

다시 〈다이빙벨〉을 상영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상영하겠나?
당연히 상영한다. 우리는 직접 검열도 거부하지만 이런 식의 간접 검열도 거부한다. 전 세계 영화제 중에서 우리가 인정하는 영화제는 전부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영화제다. 검열을 받아들이는 순간 부산국제영화제는 2류가 된다. 이런 관료주의와는 맞서야 한다. 검열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산 지원을 못 받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영화제의 정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부산국제영화제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부산국제영화제의 <자객 섭은낭> 기자회견. 왼쪽부터 김지석 수석, 허우샤오시엔 감독, 배우 장첸.

정부의 압박을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정부 산하기구가 아니다. 민간 사단법인이다. 1990년대 초반 이용관, 전양준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의 부산 지역 평론가가 김동호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모시고 영화제를 만들었다. 물론 부산시가 가장 많은 예산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정부의 예산 지원도 받는다. 하지만 부산시장이나 정부가 임명하고 해임하는 산하기관이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말 그대로 ‘우리 영화를 진흥시켜야 하는’ 기관인데 예산 지원을 빌미로 검열 기관이 된 모양새다.
영진위는 아시아 국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한국의 영화산업이 성장한 비결로 영진위의 역할을 꼽았다. 정부의 영화정책이 검열에서 지원으로 바뀐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영진위에 대해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영화제나 지역축제도 해당 지역 단체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다 보니 부산국제영화제가 외압을 잘 견뎌주길 기대하는 것 같다.
영화제나 지역축제 개막식을 보면 그 나라의 민주화 수준이나 사회적 수준을 알 수 있다. 정치적 후진성이 개막식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민주화 수준이 뒤질수록 행사를 관이 주도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조직위원장인 시장이 개·폐막 선언만 한다. 정치인은 어떤 행사에서도 앞에 나설 수 없다. 그것이 전통이다.

〈다이빙벨〉의 경우처럼 영화는 저널리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영화제를 하다 보면 아시아 각국의 정치 상황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지 않나?
지난 20년간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정치적 격변을 경험했다. 그러한 격변기의 사회가 영화 속에 담기기도 하고 영화인들이 고초를 겪기도 했다. 타이완의 경우 국민당 일당 지배체제가 무너지고 민진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타이완 영화인들이 자국 안에서 소외되어온 고산족 이야기를 담았는데, 이 영화들이 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 이란의 경우 자파르 파나히가 가택연금을 당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영화를 만들어왔고 부산국제영화제는 그의 영화를 소개했다. 일종의 ‘연대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바흐만 고바디의 작품들도 제작을 후원했다.

해당 국가에서는 상영하지 못하는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가 소개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중국의 독립영화가 대표적이다. 그런 독립영화를 상영할 경우 다른 중국 작품들의 상영도 막겠다는 위협이 있었지만 부산국제영화제가 상영을 취소한 적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아직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검열과 정치적 부패, 전근대적인 영화 제작·배급 시스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러한 현실을 담아내는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 사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2010년에 쿠르드족 영화 특별전을 개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독립국가 건설을 갈망하는 쿠르드족의 염원과 쿠르드족 문화에 대해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2012년에는 아프가니스탄 국립영상자료원 특별전을 선보였다. 탈레반 정권의 몰락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영화 산업과 문화가 어떻게 재건되고 있는지 소개하는 기획이었다.

ⓒ연합뉴스10월11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그런 역할과 연대의 전례 때문인지 부산국제영화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에 해외 영화인들이 많은 지지와 성원을 보내왔다.
그래서 올해는 ‘내가 꼭 가줘야겠다’는 영화인들이 더 많았다. 개막식 직전 날씨가 좋지 않아 비행기 결항과 연착이 속출했는데, 다들 공항을 바꾸거나 혹은 기차나 택시로 갈아타고 개막식에 달려와주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20년간 이룬 성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부산국제영화제는 제1회 때부터 지금까지 동일한 목표를 두고 있다. 바로 ‘아시아 영화의 동반성장’이다. 아시아 영화를 발굴해서 세계에 소개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목표는 어느 정도 이루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거나 아시아 프로젝트 마켓(APM)에서 제작된 영화, 아시아 영화 아카데미(AFM)에서 육성된 영화인, 아시아 영화 펀드(ACF)에서 투자받은 영화가 칸이나 베를린에서 호평을 받은 사례가 많다. 여기서 같이 교육받은 아시아 영화인들이 협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온 아시아 영화인들을 보면 상당히 편안해하고 마치 친구 집에 놀러온 듯한 분위기다.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대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면 그들 역시 마찬가지다. 나도 그들에게 자문 요청을 많이 한다. 거장 감독이건, 신인 감독이건, 세일즈 회사 관계자건, 영화기구 관계자건 상관없이 그들과 상의한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영화제에 적극 반영한다. 우리는 우리 영화제에 참가한 게스트들을 가급적 가족으로 만든다. 가족이 되니까 편안한 것이다.

그것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 요인인가? 또 다른 요인이 있다면?
영화제를 처음 시작할 때 리서치를 했다. ‘아시아 영화의 동반성장’이라는 목표는 그런 연구를 바탕으로 설정한 것이다. 또 하나 방향을 정한 게 바로 ‘비경쟁 영화제’로 하자는 것이었다. 경쟁 영화제는 너무 많아서 빈틈이 없었다. 지금도 그때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 특히 신인 감독 발굴에 독보적이다. 이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딛고 칸이나 베를린 같은 경쟁 영화제에 진출한다.

대표 사례를 소개해달라.
2012년 폐막작 〈텔레비전〉이 대표적이다. 방글라데시 모스토파 파루키 감독의 〈텔레비전〉을 우리가 발굴해 지원하고 폐막작으로 밀어주었다. 이것이 많은 방글라데시 젊은 감독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아부샤헤드 이몬의 〈잘랄 이야기〉도 발굴해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했다. 자연스레 다른 영화제들도 방글라데시 영화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제 방글라데시 영화의 뉴웨이브 시대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 하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그래서 방글라데시 영화인들은 모두가 부산국제영화제의 기여를 인정하고 있다. 그동안 변방의 영화에 머물렀던 방글라데시 영화가 세계의 이목을 받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정작 우리 정부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 안타깝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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