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오유)’ 운영자가 대한민국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인 댓글 조작 활동으로 오유 게시판의 평판 시스템이 무너졌고, 사이트 운영에 큰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오유’만이 아니다. 요즘 게시판이든 뉴스 서비스든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든, 인터넷에서 성장한 서비스는 모두 간섭과 검열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01년 말, 필자는 〈딴지일보〉에 쓴 ‘네티즌의 정치학’이란 글에서 인터넷 게시판과 댓글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한 바 있다. 그 당시 인터넷 게시판이나 댓글은 말 그대로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공간이었다. 물론 인신공격, 욕설, 유언비어도 많았지만 추천 수 많은 글이나 댓글은 그야말로 정보의 보고였다. 뉴스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만 봐도 여론이 파악되었고, 기사에 대한 추가 정보와 보충자료, 찬성과 반대의 근거, 명확한 사실관계, 그리고 편견을 듬뿍 담아 글을 쓴 기자의 과거 필력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게시판과 댓글 시스템은 대부분 단순한 추천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추천 수나 댓글이 많이 달린 글 혹은 추천 수가 많은 댓글을 상위에 노출하는 장치는 인터넷에서 가장 처음 도입된, 가장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집단지성 기반의 콘텐츠 필터링 장치였다. 2008년 전 국민적 여론의 집결지였던 ‘다음 아고라’ 게시판도 단순한 추천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글들을 걸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게시판과 댓글 시스템이 망가지고 말았다.

ⓒ시사IN 자료다음 아고라 경제방에서 활동하던 미네르바(본명 박대성)가 2009년 1월10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00년대 초 컴퓨터에 빨리 익숙해진 젊은 세대들이 먼저 인터넷에 진입하면서 자발적인 인터넷 공론장이 형성되었다. 〈딴지일보〉의 ‘독투’ ‘노사모’ ‘우리모두’와 같은 게시판 기반의 커뮤니티와 ‘서프라이즈’를 필두로 한 논객 문화가 꽃을 피웠던 때가 바로 이 시점이다. 그런데 2002년 대선이 끝나고, 인터넷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고 생각한 많은 보수 인사와 어르신들이 인터넷에 전략적으로 진입했다. 나아가 2004년 한나라당은 사이버 전사 10만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언젠가부터 게시판과 댓글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시위 때, 다음 아고라를 필두로 주춤하던 게시판 문화가 또다시 폭발했다. 아마도 그 시점이 전환기였을 것이다. 정부가 다음 아고라를 지목한 이후, 아고라 서비스는 ‘국정원 직원이 사무실에 상주한다’는 풍문이 돌 정도로 이상해졌다. 추천 수가 형편없는 글들이 상위에 올라오고, 보수 성향의 특정 ID 글이 한 달 넘게 메인 페이지에 뜨기도 했다. 아고라 경제방에서 활동하던 마네르바는 끝내 구속되었다. 누리꾼들은 미국 국적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망명’하기 시작했다.

대선을 계기로 ‘작전’ 공간이 된 인터넷

여론 조작 결정판은 2012년 국정원과 기무사 등의 대선 개입 사건이다. 대선을 계기로 게시판과 댓글은 ‘작전’ 공간이 되어버렸다. 망가진 게시판과 댓글 시스템을 피해 일부 사람들이 트위터로 이동했는데, 조직적으로 동원된 알바 부대는 마침내 트위터도 장악해버렸다. 21세기 초에 활짝 열린 한국의 공론장은 이렇게 무너졌다.

인터넷은 그 본질이 네트워크의 연결이다. 따라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정보가 흘러 다니도록 해야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불가능해져버렸다. 외국 기업들은 더 좋은 콘텐츠 생산 방법을 고안하고 더 효과적인 콘텐츠 전달 기술을 개발하려 치열하게 고민하는 때,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다. GDP의 30%가량을 차지하는 한국 IT 산업은 이렇게 국제경쟁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IT 산업으로 먹고사는 일이 앞으로도 가능한 것일까?

기자명 전명산 (정보사회 분석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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