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전시장에서 진행 중인 〈7인의 사무(또)라이전〉은 본 전시 기획자들의 주관적인 견해가 반영된 전시로, 가나인사아트센터와는 무관함을 말씀드립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에 한하여 선택적으로 관람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 곳곳에 붙어 있는 안내 문구다. 4전시장 입구에는 ‘본 전시는 19세 이상 관람 가능한 전시입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흰 가림막이 쳐져 있다.

〈7인의 사무(또)라이전〉은 이하, 홍성담 등 사회참여형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12월16~22일). 발랄하게 권력을 풍자하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전시관 측의 안내문만 보면 마치 ‘이 전시에 대관을 해준 것은 우리의 실수였다’라며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이다. 이 전시를 보고 불편해할지도 모를 ‘윗사람’을 의식한 안내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검열’은 2015년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단어다. 11월27일 서울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열린 ‘예술 검열 반대와 문화민주주의를 지키는 문화예술인 만민공동회’는 ‘문화 융성’을 일으키겠다던 박근혜 정부가 ‘검열 융성’만 하고 있다며 성토하는 자리였다. 물론 박근혜 정부 때만 문화예술 검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술의 역사는 검열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검열의 대상과 양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이렇게 정리했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당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이슈는 주로 성 표현물의 수위, 청소년 연령 제한, 문신 및 대마 비범죄화 등과 같은 문화적 요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군부독재 시절의 정치 검열이 부활했다. 예술 검열과 예술 지원을 연계해서 압박하고 검열의 주체가 사법기관이 아니라 예술 행정가라는 점에서 다르다.”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7인의 사무(또)라이전> 웹 포스터.

풀어서 말하면 이렇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런 것을 우리 사회가 허용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검열의 기준이 되었고, 검열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는 정부 지원을 줄이는 방식으로 반드시 보복을 하며, 이를 사법기관이 아니라 현장의 예술 행정가들이 나서서 한다는 점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올해 벌어진 대표적인 검열 사례는 이런 것들이다.

12월14일, 부산광역시가 감사원의 부산국제영화제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용관 부산국제집행위원장 등 영화제 집행부 3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해 영화제 때 세월호 구조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한 후 부산시는 행정 지적사항이 발견되었다며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계속해서 종용해왔다. 그러나 영화인들과 해외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이 부산시에 강하게 항의하면서 포기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감사원과 검찰을 통해 영화제를 압박하고 있다. 영진위는 다른 영화제를 도와야 한다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을 40% 삭감하기도 했다.

10월24일에는 국립국악원에서 논란이 일었다. ‘금요공감’ 프로그램에서 공연될 예정이던 〈소월산천〉에서 박근형 연출가가 맡은 연극 부문을 제외하라는 압력이 들어온 것이다. 용호성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은 공연장인 풍류사랑방의 극장 시설이 연극 공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박근형 연출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부녀를 풍자한 연극 〈개구리〉(2013년)를 무대에 올린 후로 박근혜 정부의 집중 견제를 받아온 터라 문화예술인들의 반발도 컸다. 〈소월산천〉을 비롯한 5개 공연이 취소되고 김서령 예술감독이 사퇴하는 등 파장이 컸다. 하지만 정부 측은 ‘모르쇠’ 행정으로 일관했고, 누구 하나 징계받는 이도 없었다.

ⓒ이원재 문화연대 제공11월27일 열린 ‘문화예술인 만민공동회’ 모습.

지난 9월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이 “박근형 연출가가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그의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연극 지원 사업인 ‘창작산실’의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었다”라는 내용이 담긴 관련자들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심사위원 평가점수가 1위였던 이윤택 작가의 작품 또한 탈락했다. 이 작가가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일의 책임 라인에 있는 이들은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이한신 예술지원본부장, 장용석 예술지원부장 등이다. 예술위는 올해 ‘연극 창작산실 대본 공모’와 ‘창작뮤지컬 육성·지원 대본 공모’ 사업 결과를 발표할 때 작품명 대신 접수번호만 공개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연합뉴스12월16일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는 범시민대책위’가 고발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국내를 넘어 프랑스까지 뻗친 ‘검열 행정’

박근혜 정부의 검열은 국경을 넘어서도 발생했다. 10월23일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열린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 세미나가 대표적이다. 한국과 프랑스는 2015년을 ‘한·불 상호교류의 해’로 선포하고 다양한 문화교류를 해왔다. 한국 정부기관(예술경영지원센터)이 후원하는 이 세미나에서 동국대 영상대학원 차승재 교수는 발제자로 예정되어 있었다. 프랑스 쪽 담당 교수에게 영문 발제문까지 보낸 상태였다. 그런데 정부기관으로부터 정부에 비판적인 차 교수가 포함되면 행사를 지원할 수 없다는 압박이 들어왔고, 결국 차 교수는 자진 하차했다. ‘한·불 상호교류의 해’ 조직위원회에서 부문별 자문위원을 구성할 때도 정부에서 특정인을 빼라고 해 논란이 되었다. 영화 부문 자문위원이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의 프랑스 영화 프로그래머 이수원씨였는데 그를 제외하면서 이후 자문위원단이 아예 해체되었다.

10월18일에는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세월호 사건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팝업씨어터 작품 중 하나인 〈이 아이〉 공연을 방해해 문제가 되었다. 이 사건은 ‘검열 당사자’인 유인화 센터장, 양효석 본부장, 임수연 공연사업부장이 ‘직무정지’ 처분을 받아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이번 논란을 거치는 와중에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상급기관인 문화예술위원회가 독립기관인 센터를 다시 예술위 산하 부서로 축소해버린 것이다. 연극인들은 검열이 더욱 직접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9월8일에는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검열 시비가 발생했다. 남서울분관에서 열린 ‘2015 예술가 길드아트페어’에 전시된 홍성담 작가의 작품 〈김기종의 칼질〉이 논란이 되자 전시 총감독인 홍경한 〈경향아티클〉 편집장이 작가와 상의 없이 작품을 내려버렸다. 보수 언론에서는 〈김기종의 칼질〉을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에 대한 김기종씨의 테러를 옹호하는 작품이라고 공격했지만, 작가는 가치 평가를 유보하고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자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미술계에서는 논란이 일었다고 곧바로 전시를 철회한 것은 경솔한 처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올해 상반기에도 검열 사례가 많았다. 4월3일에는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서울연극제 개막 직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을 안전 문제로 일시 폐쇄하겠다고 통보해 행사에 큰 타격을 주었다. 서울연극제를 주관하는 서울연극협회는 세월호 유가족을 적극 도운 예술단체였다. 2월9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용산참사를 다룬 소설 〈소수의견〉의 작가 손아람씨에게 인권위원회 발간 잡지 〈인권〉에 실을 원고를 청탁했다가 게재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1월27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15년 문학 분야 장관 상장 심사결과’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전태일 청소년문학상’과 ‘근로자문화예술제’에 대한 장관상 수여를 거부해 논란이 되었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거나 풍자한 전단지를 제작해 살포한 박성수·변홍철·윤철면씨 등이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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