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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써내려간 대학 잔혹사

2016년 01월 13일(수) 제434호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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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에게 등록금 못지않게 절실한 문제는 뭘까. 학생회 비리는 누가 감시할까. 이슬람과 대학 사회 사이 편견은 없을까. 제7회 <시사IN> 대학기자상 수상작들은 ‘대학다움’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던진 질문이자 고백이다.

제7회 <시사IN> 대학기자상


몸으로 써내려간 대학 잔혹사


다양한 기획의 고민들 조금은 아쉬운 완결성

 

이 계절, 캠퍼스는 조용하다. 방학 중이라 계절학기 과목을 수강 중인 학생들이 종종 눈에 띌 뿐이다. 학내 언론사도 대체로 짧은 휴식기를 갖는다. 썰렁한 편집국을 지키는 건 편집국장과 부장단이다. 다음 학기 제작을 위해 남들보다 일찍 기지개를 켠다. 제7회 <시사IN> 대학기자상 수상자 대부분도 일찌감치 시동을 걸고 있었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기업화된 대학을 상징하는 대학 내 구조조정, 학내 민주주의의 현재를 말해주는 총장선거 문제, 학생회 비리 등을 다룬 기사가 다수 출품됐다. 해가 갈수록 대학의 위기를 가리키는 징후가 뚜렷해지는 가운데 주거 문제, 수저계급론, 성폭력 등 생활과 밀착된 관심사도 눈에 띄었다. 체념하고 순응하기보다 질문거리를 던지는 언론의 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의 수상작들은 대학이 대학임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의 물음이자 고백이다.

 

   
 

 

● 대상  

가톨릭대학교 <가톨릭대학보> 배도현 기자

‘죽어라 말하는 우리의 주거’

 

대상 소식을 전하려 연락처를 찾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원자와 수상자의 이름이 달랐다. 그제야 응모작의 ‘기타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입대한 선배를 대신해 학보사 후배가 지원했다고 적혀 있었다. 배도현씨(경영학과 13학번)는 강원도 동해시 동해해양경비안전서 이경으로 근무 중이다. 주소를 수소문해 수상 소식을 전했다. 며칠 뒤인 크리스마스이브, 연락이 닿았다. 동해항에서 1시간여 거리, 망망대해에 정박한 경비정에서 배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가 유난히 작았다. 배치된 지 이제 2주. 뱃멀미에 갓 적응한 상태라고 했다. 특유의 ‘다나까’체(~다, ~까로 끝나는 군대식 말투)가 낯설었다. 부모님과 통화하며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서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 믿지 않았다. “훈련소에 있는 기간이 응모 시기라 생각도 못했는데 영광이다.” 취재량이 많아 후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대상을 받은 <가톨릭대학보> 배도현 기자. 등록금 못지않게 절실한 학생 주거 문제를 다뤘다.  
대상을 받은 <가톨릭대학보> 배도현 기자. 등록금 못지않게 절실한 학생 주거 문제를 다뤘다.

배씨는 ‘죽어라 말하는 우리의 주거’ 기사를 통해 청년들의 녹록하지 않은 주거 현실을 짚었다. 등록금 못지않게 학생들에게 절실한 이슈다. 조사에 따르면 서울 소재 33개 대학 기숙사의 수용률은 19%가 되지 않는다. 서울 지역 원룸 평균가는 월 41만원. 그럼에도 청년의 23.6%가 최저주거기준 미달인 주거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배씨는 가톨릭대학교가 들어선 부천시 역곡동에 거주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거 형태, 계약 기간, 주거 면적 등의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약 60%가 주거빈곤 계층에 속했다. 수십 곳의 고시텔·원룸 등을 방문해 집 때문에 현재와 미래를 저당 잡힌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사를 준비하던 당시, 배씨 자신도 보금자리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기숙사에서 강제 퇴사를 당해 학보사에서 3주를 버티다가 한 달간 고시원 생활을 했다. 자취를 하며 불안한 주거 환경을 체감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국장을 하며 들었던 문제의식과도 맞물렸다. 사회문제를 여과 없이 담백하게 담으면서도 학보사의 특수성, 즉 지역성을 어떻게 녹여낼지 고심하던 참이었다.

2주 정도 그간 나온 기사, 보고서, 책 등을 참고하며 공부했다. 최저주거기준(국토해양부가 공고한 1인 최저주거기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3주간 설문지를 돌리고 2주간 사람들을 만나 취재한 뒤 1주일 동안 기사를 쓰고 마무리했다. 역곡동에 사는 ‘역곡커’는 비싼 월세를 내면서도 최저주거기준 미달인 주거빈곤에 처해 있었다. 공부를 할수록 모르는 게 나왔다. 그는 “무식한 게 제일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임차·임대의 기본 개념도 이참에 알았고 1년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도 습득했다. 청년들의 주거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의 도움을 받았다. 지역사회나 학교 모두 학생의 주거 문제를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책임의식이 아쉬웠다.

학보사 기자를 하는 동안 거창한 시대의 고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공동체의 아픔에 귀 기울이려고 애썼다. “일상을 버티기도 힘든데 주거 문제에까지 나서기는 버거우니까 대학 기자가 대신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상 소식에) 기쁘기도 했지만 1년 전 기사인데 변하지 않은 현실이 안타까웠다. 단지 대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그는 스스로를 ‘마지막까지 광장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기자는 한번 쓴 기사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삭이듯 이어진 통화를 마칠 무렵, 그의 ‘다나까’ 체가 다소 누그러졌다. 며칠 뒤 동해에서 보내온 사진 속에, ‘경례’ 자세를 한 그가 있었다.

 

● 학내 취재 보도상

한동대학교 <한동신문> 박천수 기자

‘총학이 움켜쥔 거짓 장학금 명단’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총학생회 집행부의 장학금 도용 사실을 고발한 <한동신문> 박천수 기자.  
ⓒ시사IN 조남진
총학생회 집행부의 장학금 도용 사실을 고발한 <한동신문> 박천수 기자.

<한동신문>의 응모작이 유독 많았다. 알고 보니 편집국장의 독려가 있었다. 박천수씨(국제어문학부 10학번)는 수상작을 포함해 다섯 건을 응모했다. 마지막까지 낼지 말지 망설이던 기사였다. 가장 ‘애정하는’ 기사였지만 학교 이름이 불미스러운 일로 오르내리는 데 대한 부담이 있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으니 염려 말라는 선배의 조언에 결심을 굳혔다.

그가 지난해 11월 작성한 ‘총학이 움켜쥔 거짓 장학금 명단’ 기사는 당시 총학생회 집행부의 장학금 도용 사실을 고발하고 있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성적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자, 타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신청했다. 소문을 듣고 취재에 들어가 기사를 싣기까지 두 달여가 걸렸다. 총학생회 집행부 주변의 지인들에게 사실 여부를 묻고 다니다 결정적인 증언자를 만나 본격 취재를 시작했다.

취재 과정에서 심정적으로 힘들었다. 총학생회의 반응 때문이었다. 그들은 학생회 일을 한 데 대한 보상 차원에서 장학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터뷰하고 기사가 나가기 전까지도 이게 문제가 될지 모르는 눈치였다. “인터뷰하고 나면 소통이 되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내가 잘못 생각했나 싶었다. 사정은 이해가 간다. 일이 너무 많은데 학점은 감당이 안 되니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였다.” 개인적으로는 무거운 사안이고 정직을 표방하는 학교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기사를 내고 나서 많이 떨렸다.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외로웠는데 기사가 나간 뒤에는 혼자일까 봐 무서웠다.

다행히 반응이 있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기사에도 이례적으로 ‘좋아요’와 댓글 수가 많았다. 총학생회는 전체 학생에게 사과의 글을 올렸고 문제가 된 장학금을 기부금 형식으로 학교에 되돌려주었다. 총학생회 집행부를 대상으로 공개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다. 기사가 게재된 시점을 기준으로 한 달 반 정도 상황이 이어졌다. 시작점을 제공했으니 마무리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언제 끝날지 몰라 막막하기도 했다. 다룬 기사 중 가장 무거운 사안이었고 반향도 컸다. 대학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될 것 같다. 개인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았다. 구조적인 걸 보려고 노력했다. 현재 회칙으로는 집행부 임명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없어서 학생들과 학교 당국은 장학금 대상자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웠다. 사과로 이어진 건 독자들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박천수 기자는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뒤 신문사에 들어왔다. 보통이라면 학점과 스펙 관리로 바쁠 시기다. 오히려 1학년 때 그런 강박이 심했는데 책을 많이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차기 편집국장이기도 한 그는 “학보사 기자를 하며 주목받는다는 게 희귀한 경험이다. 그런 경험을 하게 해주어 감사하고 신문사 식구들에게도 고맙다”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동신문사를 나서는데 한 귀퉁이에 놓인 남루한 2층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를 비롯한 기자 여럿이 신세를 지는 곳이다. 마감 날 밤샘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 사회 취재 보도상

고려대학교 <고대신문> 유민지 기자

‘우리는 이슬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고대신문> 유민지 기자는 히잡을 쓰고 학교 안팎을 돌아다니며 체험 취재를 했다.  
ⓒ시사IN 신선영
<고대신문> 유민지 기자는 히잡을 쓰고 학교 안팎을 돌아다니며 체험 취재를 했다.

유민지 <고대신문> 기자(서어서문학과 12학번)는 지난해 최종심에도 후보작을 올렸다. 바텐더 아르바이트 체험기를 기사로 풀었다. 대학생이 학업과 병행하며 등록금을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리려는 취지였다. 실험성으로 반향을 일으켰지만 선정성 논란도 있었다. 재수 끝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에도 체험 기사였다.

지난해 3월, 프랑스 주간지 테러 사건을 비롯해 IS(이슬람국가)로 간 ‘김군’ 등으로 나라 안팎이 떠들썩했다. 이슬람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았다. 그녀에겐 무슬림 친구들이 있다. 교내 교환학생 교류회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도 이슬람교도가 있다. 여행지에서 사귄 유럽 친구들은 히잡 하나만으로 불편한 시선을 감내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슬림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나흘간 민트색 히잡을 쓰고 학교 안팎을 돌아다녔다. 학교 광장에서 무슬림 친구와 함께 기도를 드렸다. 생각보다 시선이 따갑지는 않았지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화로 반기다가도 면접에 나타하면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체험을 생각해낸 건 일단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종교적으로 결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친구들과 이야기해봤는데 괜찮다고 조언해주었다. 무슬림 학생 커뮤니티를 알게 되어 모임에 참석하고 관련 서적을 읽었다. 히잡을 두르고 체험하면 어려움들이 더 눈에 들어올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카페에 갔을 때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지하철에선 사람들이 힐끔거리기도 했지만 따뜻한 시선도 있었다.

스스로 사회가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부터 테러 등을 계기로 국내에서 무슬림을 차별할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접근했다. 장벽은 있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무슬림을 오해하지 말자고 쓰고 싶었던 나도 사실 그런 걸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부끄러웠다.” 체험 기사와 함께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깨는 기사도 준비했다.

개인적으로는 품을 많이 들인, ‘자식’ 같은 기사다. 체험 기간은 짧았지만 정기적으로 무슬림 커뮤니티에 나가 소통을 했다. 이슬람교도 30여 명을 만났다. 방학부터 준비해 두 달이 걸렸다. 기사를 쓰고 나서 시각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어떤 사안에 접근할 때 고정적인 틀을 가지고 했다면 이후로는 취재 전까지 어떤 편견도 갖지 않으려고 한다. 기사가 나간 후 무슬림 취재원들이 특히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독자위원의 반응도 좋았다. 읽히기만 해도 성공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알아봐주는 독자가 있었다. 앞으로도 체험형 기사를 독려하는 편집국장이 되고 싶다. 당장은 2016년 총선 이슈를 대학신문이 어떻게 다룰지 고민이다.

 

● 방송 부문상

경희대학교 <대학의 소리 방송국(VOU)>

서민선·서일교·이정민·정구현·정규진

‘막걸리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조남진</font></div>방송 부문상은 경희대학교 <VOU>가 토크쇼 형식으로 제작한 ‘막걸리네’가 받았다. 왼쪽부터 서민선, 서일교, 정구현, 정규진, 이정민씨.  
ⓒ시사IN 조남진
방송 부문상은 경희대학교 가 토크쇼 형식으로 제작한 ‘막걸리네’가 받았다. 왼쪽부터 서민선, 서일교, 정구현, 정규진, 이정민씨.

‘막걸리네’는 방송 부문 응모작 중 형식이 가장 독특했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내레이션 중심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토크쇼 형식이다. 출연진 세 명이 캠퍼스 야외에 주저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이야기한다. ‘막 걸린다’는 뜻과 막걸리라는 의미가 중의적으로 쓰였다. 막걸리를 마시며 학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던지는 것이 기획 취지다.

시사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당시 이정민 PD(스페인어학과 14학번)는 걱정이 되었다. 일단 재미있지 않으면 보지 않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주로 페이스북이나 모바일로 콘텐츠를 소비하기 때문에 참신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시사성도 중요했다. 형식은 가볍되 취재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전하려고 했다. JTBC <썰전>의 대화 포맷을 참조했다. 대본은 없고 대강 이야기 구조를 정해놓았다. 취재를 맡은 서일교 기자(일본어학과 14학번)와 정구현 기자(프랑스어학과 14학번), 전체적인 진행을 맡은 정규진 아나운서(스페인어학과 14학번)가 출연진으로 등장했고 편집 등 기술적인 부분은 엔지니어 서민선씨(응용화학과 14학번)가 담당했다.

마침 3월이라 단과대마다 오리엔테이션(OT)을 끝낸 시점이었다. OT 비용 내역 공개를 둘러싼 이야기를 주제로 잡았다. 단과대별로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몇만원부터 20만원대까지 편차가 컸다. 체육대가 특히 비쌌다. 체육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운동복 비용을 고려하더라도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OT 비용에 관해서는 아무도 재정 감사를 하지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 단과대 총학생회에 물으니 대다수가 앞으로 지출 내역을 공개할 의향이 있다고 했지만 체육대와 예술대는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방송의 초점은 두 단과대에 맞춰졌다.

아직 추울 때라 떨면서 방송했던 기억이 있다. 막걸리에 손이 계속 갔다. 1인당 한 병 이상 마셔서 나중에는 말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3대의 카메라가 돌아갔다. 음향 장비가 좋지 않아 웅성거리는 소리나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녹화를 중단했다. 10분 분량의 촬영이 2~3시간으로 길어졌다. 한 친구는 추위 속에서 촬영을 마친 후 몸에 있던 상처가 악화돼 수술을 하기도 했다. 2회부터는 막걸리와 비슷한 색의 음료로 대체했다. 편집에도 공을 들였다 전체적인 자막 틀만 세 번 바꾸면서 밤을 새웠다.

남학생 세 명의 입담이 중심이다. 동성끼리 수다를 떨면 더 과감한 내용이 나오리라 판단했다. ‘막걸리네’는 총 3회 만들어졌는데 수상작은 이 중 두 번째 작품이다. OT 비용 외에도 학과 통폐합 등의 이슈를 다뤘다. 가볍고 경쾌하되 주제를 정할 때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의 본령을 염두에 두었다. 2회의 반응이 특히 좋았다. 방영 이후 선후배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언론이 취재에 나서니 단과대에서도 반응이 있었다.

다섯 사람 중 두 사람은 이후 학보사로 적을 옮겼고 한 명은 그만두었다. VOU 국장을 맡고 있는 정규진씨는 방송의 파급력을 키우는 게 임기 내 목표다. “다른 학교의 경우 편집권을 손대거나 크기를 축소시키는 곳이 많은데 그래도 (우리의 경우) 많이 살아 있는 편이다. 그 살아 있음을 밖에 많이 보이려고 한다.” 이정민씨는 “학교나 학생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데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학교가 잘 돌아가도록 애쓰는 친구들이 있다는 걸 학생들이 좀 더 알아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특별상

동국대학교 <동대신문>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발간 중지 사태를 겪은 <동대신문>이 특별상을 받았다. 왼쪽부터 이승현, 양지연 전·현직 편집국장.  
ⓒ시사IN 신선영
발간 중지 사태를 겪은 <동대신문>이 특별상을 받았다. 왼쪽부터 이승현, 양지연 전·현직 편집국장.

2015년, <동대신문>은 창간 이래 처음으로 발간 중지 사태를 겪었다. 연초 동국대학교 총장 선출 과정에 종단 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논문 표절 시비가 더해졌다. <동대신문>은 이와 관련해 학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기사가 실린 해당 호는 주간 교수의 지시로 인쇄 직전 발행이 중단되었다. 기자들은 교수의 보직 사퇴와 신문의 정상 발간 등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항의했다. 교수는 자리에서 물러났고 예정보다 3일 늦게 신문이 발행되었다.

이승현 당시 편집국장(국문학과 08학번)은 보도에 반대하는 교수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교수는 공영방송의 선거 준칙같이 엄격한 기준을 내세우며 정확하고 공정한 설문을 요구했다. 이전 학기, 영어강의 실태조사는 온라인상에서 ‘폴(POLL)’ 형태로 간단히 했다. 차이가 있느냐고 물으니 그건 되고 이건 안 된다는 논리였다. “설문조사라는 게 항상 한계가 있고, 절대적인 건 없다.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 밝히고 독자가 판단토록 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총학생회의 이사장실 점거가 외부적으로도 이슈가 되어 <동대신문> 역시 고민이 깊었다. 학내 여론도 분열되어 생각이 제각각이었다. 직접 판단을 내리기보다 구성원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피기로 했다. 여론을 수렴해 독자의 이해를 돕자는 취지였다.

양지연 현 편집국장(경제학과 13학번)은 특별상을 받을 걸 예상했다고 담담히 밝혔다. 지난해에도 편집권 침해 사례는 많았지만 발행 중단까지 온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사태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기도 했다. 이승현 당시 국장은 발행 중단 이후 일간지 등에 보도자료를 돌린 뒤 기자들 전화를 100통 이상 받았다. 휴학생이라 다행이었다. 불교계 언론에는 <동대신문>의 비판적 기사가 도를 넘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동대신문>에 대한 악플이 달렸다.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 편협한 관점에서 공격을 당할 때마다 ‘왜 저렇게까지 하나’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이승현 국장에 이어 2015년 2학기 신문을 제작한 양지연 편집국장은 지난해를 회상하면 힘든 기억이 많다. 신문 제작도 힘든데 다뤄야 하는 내용이 무거웠다. 편집국 내부의 생각도 갈렸다. 그걸 아우르면서 공동의 성과물을 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발행 중지가 남긴 후유증은 자기검열이다. “각을 세우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장의 자리에 오니까 그러기만 해서는 안 되겠더라. 직진만 하기보다 목표가 같되 좌우로 돌아가는 방식을 궁리하게 되었다.”

이승현 전 국장은 학보사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2014년부터 학보사 생활을 했는데 2013년과 2014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압축적인 경험을 했다. 사건이나 사물을 볼 때의 시각도 완전히 바뀌었다. 그런가 보다 했던 데서 왜 그런지, 어떤 기준에서 봐야 할지 항상 생각하게 됐다.” 양지연 국장 역시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 “단편적으로 보면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사건인데 언젠가 나에게 영향을 끼치겠구나 생각하게 되니 어떤 이슈든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전 국장의 수상 소감은 <시사IN> 대학기자상 특별상의 취지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우리가 되게 고생해서 뭔가 이루려고 했는데 누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특별상 내용에 ‘대학 언론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항목이 있는데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선까지는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다. 물러서지 말아야 할 가치라는 게 있고 그걸 지키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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