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해마루의 장완익 대표변호사(53)는 친일 과거사 문제 전문 변호사로 불린다. 2004~2010년에는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사무처장과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을 지냈다.

장 변호사는 일제 치하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을 대리해 올해로 16년째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을 이끌어오고 있다. 2000년에는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5명, 2005년에는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피해자 4명과 후지코시 피해자 15명을 대신해 손해배상 소송을 한국 법원에 냈다.

이 소송은 오랜 세월을 끈 만큼 우여곡절을 거쳤다. 1·2심은, 피해자들이 이미 일본 법원에서 패소했으므로 그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로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법리적으로 볼 때, 한·일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개별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끝난 것은 아니며 손해배상 청구 시효도 만료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 항소심에서 일본 전범기업들로 하여금 줄줄이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한국 고등법원에서 패소한 일본 전범기업들은 모두 대법원에 상고했다.

ⓒ시사IN 이명익

그런데 대법원 심리를 앞두고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한국의 대표적 로펌으로 꼽히는 김앤장이 일본 전범기업을 대변하고 나선 것이다. 김앤장은 최근 대법원에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끝난 일이다”라는 요지의 상고 이유서를 제출했다. 또 손해배상 청구의 경우 불법행위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 내에, 혹은 그것을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내에 제기해야 하는데 일제강점기 한국인 피해에 대해서는 시효가 지났으니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폈다. 2012년 대법원이 내린 법리 판단을 뒤집으라는 요구다.

이에 대해 장 변호사는 “하필 한국을 대표하는 법률사무소가 일본 정부와 같은 논리를 들고 나와 일본 기업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으니 과연 주권국가 법조인으로서 적절한 처사인지 회의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장완익 변호사가 16년 전 이 소송을 맡은 것은 개별 피해자가 아닌 강제징용 피해자 전체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초석을 놓자는 생각에서였다. 그가 고법 파기환송심에서 승소하고도 왜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차압을 진행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전범기업의 한국 내 재산에 대한 사전 차압이나 국내 거래 채권에 대한 가집행도 검토했지만, 전체 피해자와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그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16년에 걸친 소송… ‘유족’이 이어받기도

그만큼 장 변호사는 이 사건이 단순히 소송에 참여한 개별 피해자 몇 사람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끝날 게 아니라 전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독일 정부와 전범기업은 2차 대전 당시 주변국 강제징용 피해자를 지원하고 배상하는 방법으로 2000년에 미래재단을 만들었다. 가해 국가에서 시작된 사례이지만 일본은 이를 외면하고 있으므로 피해국인 우리가 먼저 재단을 만들어 일본 기업과 정부를 끌어들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현재 존재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그 모태가 될 수 있으리라 전망했다.

김앤장의 전범기업 변호에 맞닥뜨린 장 변호사는 요즘 소송에서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에 앞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죄스러움이 더 크다고 한다. 그는 “피해자들이 대법원 판결을 목 빠지게 기다리다 돌아가시는 현실이 제일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미쓰비시중공업 피해자는 원고가 5명이었지만 16년이 지나는 동안 전원이 세상을 떠 유족들이 소송을 이어받았다. 신일철주금은 4명의 원고 가운데 현재 2명만 생존해 있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