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있을 때마다 크고 작은 투표·개표 불공정 시비가 일어난다. 이번 총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전 투표부터 봉인되지 않은 투표함이 곳곳에서 발견되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투표함을 지키며 밤을 새우는 시민도 있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보좌관들이 ‘단독으로 저질렀다’고 발표된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지율 51.6%로 당선된 2012년 대선 때는, 개표 조작 논란은 제외하더라도, 투표함의 보안장치와 봉인이 허술하게 관리되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투표 관리와 관련해 잡음이 되풀이해 나오는 상황이다.

조작이나 위조, 변조가 불가능한 투표 시스템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현재 각 당의 대선 후보를 선출 중인 미국에서는 텍사스 주의 자유당(Liberta-rian Party)이 대선 후보 선정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투표를 도입했다. 또한 유타 주의 공화당(Republican Party) 역시 블록체인에 기반한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활용했다. 2014년 돌풍을 일으킨 스페인의 신생 정당 포데모스는 ‘아고라 보팅’이라는 온라인 투표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는데, 아고라 보팅(agora voting.org)이 바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투표 시스템이다. 우크라이나는 아예 정부 차원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투표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블록체인은 원래 온라인 금융거래의 보안 기술로 고안되었다. 기존 금융회사들은 중앙집중형 서버에 거래 기록을 보관했다. 반면 블록체인은 거래 내역 정보가 특정 회사 서버에 집중되지 않고 네트워크 참여자의 컴퓨터에 똑같이 저장되며, 이 ‘블록’이 ‘체인’처럼 연결되어 하나의 장부를 만든다. 새로운 거래가 일어나면 기존 블록에 저장된 정보와 대조해 위조 여부를 판별한다.

ⓒ연합뉴스4월13일 개표소로 이송하기 전 투표함 상태를 개표 참관인들이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은행권 및 일부 국가들이 기술을 도입하면서 안전성이 확인되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안전한 투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다. 그 밖에도 블록체인 기반 투표 시스템의 장점은 아주 많다. 기본적으로 온라인 투표 시스템이기 때문에 투표의 장벽을 대폭 낮출 수 있다. 개인인증 시스템과 잘 연동된다면, 유권자는 선관위가 발송한 문자의 주소를 클릭해 후보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투표를 마칠 수도 있다. 투표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종이투표는 일정 기한이 지나면 폐기되지만,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선거 이력 하나하나를 영구히 보존하는 것도 가능하다.

직접민주주의를 일상에서 구현한다고?

좀 더 안전하고 민주적인 투표 문화를 만들어갈 수도 있다. 예컨대 현재의 투표 시스템은 한 번 투표하면 번복할 수 없는데, 이 시스템은 투표 종료일까지 자신의 최종 의사를 몇 번이고 변경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다. 투표한 결과를 재검표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다. 각 개인이 투표한 번호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모두에게 공개하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지자체나 정부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공개한다면, 사용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말 많은 아파트 단지의 동대표를 뽑는 일도, 대학교의 학생회장이나 초등학교의 반장을 뽑는 선거도, 친목회나 동호회의 임원을 뽑는 선거도 훨씬 안전하고 편리하게 진행될 수 있다. 투표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비약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국가의 주요 정책을 수시로 국민투표로 결정할 수도 있다. 직접민주주의가 일상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적어도 투표와 관련해서라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한 기술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과연 우리는 다음 선거에서 더 나은 투표 시스템을 볼 수 있을까?

기자명 전명산 (정보사회 분석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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