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6일 서울시 종로구 인의동에 위치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실은 어수선했다. 식당 겸 사무실로 사용하는 2층 문에는 한자로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쓰인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1층 출입구 앞에서는 기자 서너 명이 추선희(57)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

추 사무총장은 어버이연합 의혹의 핵심 인물이다. 관제 데모 논란이 일자, 그는 반박 기자회견을 여는 등 전면에 나서 대응했다. 하지만 4월24일부터는 잠적했다. 그가 사용하는 휴대전화 3대는 모두 연락이 되지 않는다.

심인섭 회장과 이종문 부회장이 있지만 어버이연합의 실세는 추 사무총장이다. 전경련 돈이 입금된 벧엘선교복지재단 계좌도 추 사무총장이 직접 관리했다. 4월26일 오후 1시 서울시 종로구 종묘공원에서 열린 안보 강연에서 무대에 오른 한 어버이연합 회원은 “여기 있는 기자들에게 절대 답변하지 마라. 우리는 아는 것도 없고 돈 받은 것도 모르니까 인터뷰에 응하지 마라”고 주장했다.

안보 강연에 나온 이종문 부회장은 “집행부라고 해도 재정은 모른다. 보도가 나온 이후 (추 사무총장에게) 전경련에서 받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물어본 적도 없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없다”라고 말했다. 심 회장은 “10년 동안 젊은 친구(추 사무총장)가 300여 명 넘는 조직을 끌고 왔다. 고맙기만 하지, 의심 같은 건 안 한다”라고 덧붙였다. 기자가 JTBC 앞 집회가 취소된 이유를 묻자, 심 회장은 “추 사무총장이 없으면 집회를 열 수 없다”라고 답했다. 어버이연합 안에서 추 사무총장의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시사IN 신선영4월22일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추 사무총장은 이틀 뒤 돌연 잠적했다.

추 사무총장은 “2014년 하반기 전경련에서 받은 1억2000만원은 무료급식에 사용했다”라고 밝혔다. 그가 잠적한 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어버이연합이 전경련에게서 추가로 4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추 사무총장과 연락이 닿지 않아 이 돈의 사용처에 관한 그의 해명을 들을 수가 없다. 어버이연합에 돈이 입금된 전후로 ‘한·미 FTA 찬성’ ‘기초노령연금 축소 찬성’ ‘통합진보당 해체 촉구’ 등 친정부 성향 집회나 기자회견이 열려, 자금 지원 배경과 배후에 대한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가장 먼저 의혹의 눈길이 쏠린 곳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다.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 허현준 선임행정관이 당사자로 지목됐다. 추선희 사무총장마저 허 행정관과 ‘협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논란은 증폭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26일 국내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청와대가) 지시를 해갖고 그게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그렇게 보고를 분명히 받았다”라고 해명했다.

국정원과 어버이연합의 커넥션 의혹도 불거져

청와대에 이어 국정원도 어버이연합의 또 다른 배후로 지목당했다. ‘전력’ 때문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과 보수 단체 사이 ‘커넥션’ 일부가 드러났다. 지난 4월25일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시철) 심리로 열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검찰은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박 아무개씨가 보수 단체를 지원하고 지도하는 활동을 벌였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검찰 신문 내용이다.

ⓒ연합뉴스국정원은 원세훈 원장(가운데) 시절 심리전단 소속 일부가 보수 단체를 지원·관리했다고 알려졌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두고 있던 2011년 7월31일 (국정원) 박 아무개 직원은 한 보수 학부모 단체에 ‘보내주신 전단지 문항과 티켓 문구를 진작 봤어야 되는데, 아직 인쇄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다. (중략) 박 직원은 모 진보연합이라는 보수 단체에게 ‘회사 문안’, 그러니까 국정원 문안을 전달한다면서 ‘8월24일은 전면 무상급식 심판의 날, 망국적 포퓰리즘 서울시민의 힘으로 막아내야 합니다’라는 내용을 보냈다. 또 2011년 7월21일 이 단체 명의로 ‘희망버스는 절망버스, 폭력버스일 뿐입니다. 야당 의원도 지역 주민도 반대하고 있습니다’라는 광고를 게재했다. 같은 해 8월1일에는 이 단체에 ‘(전단지) 만드느라 고생했다. 전단지 17만 부를 다른 보수 단체와 협의해서 보내주고’라는 등 각 단체에 어느 정도의 전단지를 보내주라는 구체적인 지시 내용을 보냈다.”

문제가 된 국정원 심리전단의 활동을 잘 아는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원세훈 원장 시절, 심리전단에 예산과 인력이 집중되었고, 안보 1~5팀에 속한 이들 가운데 일부가 보수 단체를 지원하고 관리한 것은 맞다. 지금도 그 지원 활동이 계속 이어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댓글 사건을 계기로 2014년 8월 ‘공식적으로는’ 심리전단 업무 중 국내심리 부문을 폐지하고, 대북심리 부문을 대북전략국으로 옮겼다.

심리전단 외에 국정원 내 대공 파트와 어버이연합의 커넥션 의혹도 불거졌다.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해 유우성씨가 지난해 7월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탈북자 김용화씨가 법정에서 “중국에서 수집한 증거를 어버이연합을 통해 국정원에 전달했다”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인 김씨는 2014년 3월 유우성씨가 간첩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으며, 이때 어버이연합이 경비 500만원을 지원했다. 국정원 지원 여부와 관련해 김씨는 “어버이연합과 내가 반반씩 부담했다”라고 말했다. 어버이연합과 국정원의 관계에 대해 묻자 “당신 아버지를 안다고 아버지 친구를 다 아나. 나는 어버이연합이 그냥 집회하는 단체로만 알고 있었다”라면서 언성을 높였다.

김용화씨와 추선희 사무총장은 본래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2014년 12월 당시 탈북난민인권연합 총무였던 김미화 탈북어버이연합 대표가 어버이연합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김씨와 추 사무총장 사이 관계가 악화됐다. 김미화 대표는 4월22일 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언론이 범법자인 김용화와 이경옥(전 탈북어머니회 부회장)의 세 치 혀에 놀아나는 모습에 착잡한 심정을 누를 길이 없다”라고 말했다. 폭로전의 핵심 인물로 김씨를 지목한 것이다.

어버이연합 배후 논란과 관련해 이병호 국정원장은 4월2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어버이연합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금품을 지원한 사실이 없다. 진보 단체든 보수 단체든 대공·방첩·대테러 업무 범위와 관련해 제보를 받는 건 법률적으로 허용된 업무 영역이다”라고 해명했다. 야당 의원들이 반발하자, 이 국정원장은 “다시 조사하겠다”라고 한 발짝 물러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어버이연합 진상조사 태스크포스를 꾸려 5월2일 활동에 들어간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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