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즉 종이돈과 동전이 사라지는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거래가 네트워크를 통해 디지털 화폐로 거래된다면?

이렇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낯설어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현금보다 디지털 화폐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카드다. 2015년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의 카드 사용 비중(40%)이 현금 사용 비중(36%)을 넘어섰다. 체크카드까지 포함한다면 카드 사용 비중이 54%에 달한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이미 2014년에 지폐와 동전을 발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3년 스웨덴에서는 은행 강도가 은행에 현금이 없어서 빈손으로 나오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들 나라는 의도적으로 현금 사용을 억제해 ‘현금 없는 국가’로 나아가려 노력 중이다. 전문가들은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가 세계에서 제일 먼저 ‘현금 없는 국가’가 될 것이라 예측한다.

한국 역시 이 대열에 동참하기로 했다. 한국은행은 4월25일 ‘2015년도 지급결제보고서’에서 향후 추진 과제의 하나로 ‘동전 없는 사회’를 제시했다. 한국은행은 동전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거스름돈을 카드에 충전하거나 계좌로 이체해주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연합뉴스한국은행의 최근 보고서는 향후 추진 과제의 하나로 ‘동전 없는 사회’를 제시했다.

이것은 충격을 줄이기 위한 과도기적 방안일 뿐이다. 결국은 동전만이 아니라 종이돈도 사라질 것이다.

국가가 관리할 수 없는 디지털 화폐가 있다고?

여러 국가들은 왜 ‘현금 없는 사회’를 추구할까? 투명성과 정확성 때문이다. 누군가 별도로 기록하지 않는 한, 현금으로는 누가 누구와 거래했는지 알 수 없다.

반면 디지털 화폐는 거래내역 그 자체이기에, 거래내역만 추적하면 그 돈이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흘러갔는지 알 수 있다. 디지털 화폐를 쓰면 탈세와 뇌물 공여 등 뒷거래가 불가능하다.

즉 디지털 화폐는 너무도 투명하다. 현금 다발을 마늘밭에 묻어두는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고, 세수가 정확하게 파악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것은 사실상 화폐개혁과 같은 효과를 낳아, 5만원권을 쌓아둔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할 것이다.

투명성이 강화되면 좋은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가 모든 개인의 거래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어서 국가 권력이 미치는 영향력과 범위가 급격히 증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래서 현금 없는 사회를 두고 ‘빅브러더’가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상황은 더 복잡하고 더 재미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 화폐는 디지털 거래 기록을 남기면서도 익명성을 보장한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중앙의 서버 없이 인터넷이 연결된 모든 곳에서 사용 가능하기에 국경도 없다. 국가가 관리할 수 없는 디지털 화폐인 셈이다.

현금 이후 시대인 디지털 화폐 세상을 예고하는 두 개의 화폐 체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 단위 화폐 관리 시스템으로부터 발전된 국가 기반의 디지털 화폐가 있고, 국가와 무관하게 익명의 개인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글로벌 수준의 디지털 화폐가 생긴 것이다.

이 둘은 서로 타협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눌러버릴까? 싸움이 이제 시작되었다.

기자명 전명산 (정보사회 분석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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