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리더십 포럼

괜찮아, 우리도 다 실패했었어

인공지능에 ‘쫄지 마’

‘선물’ 같은 강연에서 나를 발견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무릎을 꿇었다. 중학생 때의 일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부모는 학교를 잠시 관두기를 권했다. 애써 밝은 척 “네” 하고 대답했다. 빚쟁이의 협박에 떠밀리듯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막 이사한 때였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다른 친구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의기소침해졌다. 그럴수록 더 참고서와 문제집을 독학으로 파고들었다. 사정을 알게 된 한 선생님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그녀를 위해 학비를 지원해줄 학교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덕분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막막하기만 하던 앞날이 조금은 밝아진 것 같았다. 10대답지 않게 우울했던 표정을 떨치고 ‘억지로 웃자’ 결심했다.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니 웃을 일이 더 많아졌다.

지난 6월8일 서울 연세대에서 열린 ‘미국 대학 한인학생회와 함께하는 리더십 포럼- 2016 청소년을 위한 〈시사IN〉 공감콘서트’에 강사로 나선 조동연씨(34·하버드 대학 미드커리어 공공행정학 석사·육군 소령)는 순탄치 않았던 자신의 지난 시절을 들려주었다. 자신의 경험을 나눔으로써 지금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그녀의 말은 여운이 오래갔다. 청중석이 숙연해졌다.

ⓒ시사IN 조남진

리더십 포럼은 2010년부터 〈시사IN〉이 청소년을 위한 사회 환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해온 진로교육 강좌다. 올해로 7회를 맞은 이 행사가 전북 전주(6월3일), 충북 청주(6월7일), 서울(6월8일)에서 각각 200명 안팎의 고교생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전북은 전북도교육청(교육감 김승환), 충북은 충북인재양성재단(이사장 이시종)과 함께 진행했다.

리더십 포럼은 게스트 특강, 공감 토크, 멘토·멘티 만남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콘서트 강사로는 MIT·스탠퍼드·컬럼비아·프린스턴·하버드 등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인 한인 유학생 6명이 나섰다. 이 가운데 첫 주자로 나선 조동연씨는 육사를 졸업하고 임관한 이후 국제무대에서 한반도 안보 문제를 다뤄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면서 뒤늦게 유학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군 생활 11년 만에 휴직을 신청하고 하버드 대학 공공정책전문대학원(케네디 스쿨)에 지원했다. 지난 5월 석사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리더십 포럼 강단에 섰다는 그녀는 “10대 시절만 해도 유학은 꿈도 못 꾸던 일이었다. 여건 또는 실력이 허락하지 않아도 괜찮다. 포기하지 않는 한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강사로 나선 조원준씨(30·MIT 화학공학과 박사과정)는 청소년 시절 ‘적자생존’, 곧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라는 말을 접한 이래, 자기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무작정 적어보았다고 말했다. 기록하면 행동 패턴이 무의식적으로 바뀐다고 믿고, 이를 실천해보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당시 적었던 목표 중 60~70%를 이뤘다고 했다.

단, 이 과정에서 꿈이 늘 이뤄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현실도 깨달았다. 군 입대를 2주 앞두고 자동차 사고가 일어나 다리가 부러진 경험이 대표적이었다. 그 바람에 입대는 물론이고 대학 졸업마저 늦춰야 했지만, 그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지만 그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멋진 일이 일어난다.” 10개월 가까운 입원 생활 동안 그는 계획에 없던 통역병 시험을 준비해 어렵게 합격했고,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레바논 일대에서 복무하는 등 새로운 인생 경험을 쌓았다. 그 덕분에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부드럽게 빠른 시간 내에 딛고 일어서는 힘을 키웠다. 조씨는 “공부를 많이 하면 공부가 늘고, 운동을 많이 하면 운동이 느는 것처럼 걱정을 많이 하면 걱정이 는다”라면서 평소 꿈을 향한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실천하는 좋은 습관을 가질 것을 권유했다.

“즐기는 자를 이길 사람은 없다”

이제은씨(26·컬럼비아 대학 치과의학 박사과정)의 꿈은 원래 작가였다. 그러나 부모님은 딸이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갈등하던 이씨는 우연히 〈연을 쫓는 아이〉라는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작가가 의사였기 때문이다. 의사이면서 좋은 책을 쓰는 작가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은 이씨는 치의대에 진학한 뒤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제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치과의사’를 꿈꾼다. 모든 사람의 치아가 제각각 다르게 생겼듯이 서로 다른 환자 개개인에게 최고의 맞춤 치료를 해주면서 마음까지 읽어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작은 목표부터 큰 목표까지 구체적으로, 넓고, 길게 상상하면서 꿈을 발견했다는 그녀는 “너의 큰 그림을 찾으라”는 말로 핵심 메시지를 전했다.

고등학교에서 처음 본 국어 시험 성적이 전교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던 고영건씨(25·프린스턴 대학 컴퓨터공학 박사과정)는 고교 때와 달리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공부벌레’가 되었다. 단순 비교하자면, 공부 시간은 고등학생 때가 더 길었다. 그러나 그때는 공부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외울 뿐이었다. 이와 달리 성취감이나 행복을 느낀 건 대학 때였다. 듣고 싶은 수업을 골라 하루 3시간 수강을 마치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전부 과제물을 해결하는 데 할애했다. 가치 있는 곳에 시간을 쓰고 나니 대학 시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잊을 정도였다. 시카고 대학 학부를 조기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원에 진학한 고씨는 “가치 있는 곳에 시간을 써라.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김그림씨(24·스탠퍼드 대학 음악실기학 석사과정·의학 박사과정 입학 예정)는 중학생 때 미국 알래스카로 유학한 이후 전교 1등을 도맡다시피 했다. 스탠퍼드 대학 지원자 중 5%가량 뽑히는 합격자 명단에 들었을 때만 해도 화려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기대에 그녀의 가슴은 벅찼다. 그러나 생물학과로 입학한 그녀는 첫 학기를 마치자마자 우울증을 앓았다. 너도나도 수재 소리를 듣는 동년배 사이에서 그녀는 물 위로는 평온한 척하면서 물 아래로는 기를 쓰고 물갈퀴질을 해야 하는 오리의 운명을 떠올렸다.

힘들었던 시간들을 보낸 끝에 그녀가 깨달은 것은 행복은 기대보다 성취감이 커야 찾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만을 앞세우다 보면 불행하고 우울해지기 십상이었다. ‘내 존재감을 찾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그녀가 찾은 해답은 어렸을 때부터 연주해온 바이올린을 다시 켜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일상이 주는 소중함을 발견해나갈 수 있었다.

미국 대학 14곳에서 날아온 ‘입학 거부’ 메일

임성원씨(33·스탠퍼드 대학 생명공학 박사과정)는 본래 게임 제작자를 꿈꾸며 카이스트 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첫 번째 전공 수업부터 소화가 안 되는 거북함을 느꼈다. 초등학교 때부터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 일부러 진학한 대학이었건만 애초 품었던 환상과 현실은 달랐다.

혼돈에 빠진 그는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 결과 찾은 해답이 ‘지속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의사, 간호사, 청소부…. 뭐든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중 그가 찾은 것은 생명공학자의 길이었다. 신약을 개발하면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꿈으로 향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2012년 박사과정 유학을 준비하며 지원한 미국 대학 14곳에서 모두 떨어진 뒤 그는 UC 버클리에서 석사과정을 밟기로 결심했다. 이미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터라 또 석사를 한다는 게 어쩌면 자존심 상할 일이지만 ‘딱 한 번만 해보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2시간 자고 나머지 시간엔 연구만 하는 시간을 8개월가량 보낸 결과 그는 1년 만에 석사를 조기 졸업할 수 있었다. 이듬해에는 가고 싶었던 대학 5군데 중 3군데에서 박사과정 입학 허가도 받았다. 어찌 보면 ‘실패와 재기의 아이콘’이라 할 만한 임씨는 “지금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그 전에는 포기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리더십 포럼의 백미는 강사들의 강의가 끝난 뒤 각자 소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멘토·멘티 만남’이다. 학생들은 공부 방법과 진로, 연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전주 행사에서 인사말을 한 김승환 교육감은 ‘멘토’의 유래를 상기시켰다. 오디세이 왕이 전쟁터로 떠나기 전 가장 믿었던 친구 멘토에게 자기 아들의 교육을 부탁한 데서 멘토라는 말이 유래한 만큼 멘토·멘티 관계의 핵심은 ‘신뢰’라는 것이다. 이날 멘토·멘티였던 강사와 학생들은 서로 이메일·페이스북 연락처 등을 주고받으며 앞으로도 신뢰의 관계를 맺어갈 것을 약속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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