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고 공습한 수백 년의 역사를 ‘우리의 문제’로 납득시킬 수는 없을까. 종교와 정치가 복잡하게 얽힌 아랍 사회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큰 한국에서는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팔레스타인 평화연대에서 일하는 신주희 활동가(34)의 고민도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

어느 날 떠오른 게 보드게임이었다. 그때만 해도 ‘팔레스타인 상황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사소한 바람이었다. 지인을 통해 ‘인재’를 소개받으면서 보드게임의 가치에 눈떴다. 여지우씨(27)는 10대 때부터 직접 보드게임을 만들었고, 세계 보드게임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다. 게임을 유해물로 보는 이들은 ‘게임은 철부지나 하는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하지만 여씨는 게임 역시 책이나 영화처럼 예술 장르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신씨와 여씨는 2015년 보드게임 제작사 ‘파코루도(pacoludo.com)’를 공동 창업했다. 파코루도는 에스페란토어로 ‘평화 게임’이라는 뜻이다. 두 사람이 올해 초 내놓은 첫 작품은 〈인티파다: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하 〈인티파다〉)이다. 인티파다는 ‘봉기’ ‘저항’을 뜻하는 아랍어다. 게임은 팔레스타인 지도를 배경으로 구호대·활동가·종군기자 등 5개 캐릭터가 팔레스타인 6개 지역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시사IN 이명익신주희·여지우씨(왼쪽부터)는 보드게임 제작사 ‘파코루도’(에스페란토어로 ‘평화 게임’)를 창업했다.

〈인티파다〉에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실제와 가깝게 담겨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모여 사는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는 그 외 지역과의 왕래가 제한되어 있다. 게임에서도 다른 지역에 비해 두 지역을 오갈 때는 ‘포인트’ 사용 비중을 높이 설정했다. 대신 가자와 서안의 문제를 해결하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승점을 얻는다.

플레이어가 해결해야 할 카드 44장에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 테면 물 부족이 심각한 서안 지구에는 ‘물 부족’ 카드, 예루살렘에는 ‘강제 철거’ 카드가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 사람들이 겪는 실제 고통을 게임을 통해 접할 수 있도록 했다.

독립운동·민주화운동을 게임으로 만나면?

사실을 그대로 게임에 접목했기에 고민은 더 컸다. 특히 게릴라의 자원으로 표현되는 ‘무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수십 번 망설였다.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도 무력 투쟁은 존재하지만, 부정적 행위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현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비판적 시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거듭 생각했다.

게임을 하면 할수록 팔레스타인의 상황, 지역명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그렇다고 메시지에 치중한 건 아니다. 그저 교육 도구의 하나로 치부되지 않아야 했다. 재미있으면 두 번, 세 번 손이 가기 마련이다. 게임의 묘미를 유지하면서 팔레스타인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반응이 좋다. 6월 초에는 한 초등학교의 초청으로 한국에 거주 중인 팔레스타인 사람과 함께 팔레스타인 상황에 대해 강의를 했다. 강의 후에는 다 함께 〈인티파다〉 게임을 했다. 게임이 끝나자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여씨에게 다가와 “팔레스타인 상황이 참 슬퍼요”라고 말했다.

신씨와 여씨는 올해 〈인티파다〉를 영어로 번역해 해외에 수출하는 일에 주력할 예정이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해외 보드게이머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번역 작업이 끝나면 새로운 테마의 게임을 진행하고 싶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나, 1987년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게임 제작을 염두에 두고 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