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한 연구팀은 미국의 직업 702개를 조사한 결과 그중 47%가 조만간 자동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동화 가능성이 90% 이상인 직업은, 텔레마케터와 상점 점원 등으로 조사됐다. 인공지능이라는 테크놀로지가, 19세기 초의 산업혁명 이후 기술들과 어떻게 다른지 명백히 보여주는 예측이다.

텔레마케터와 점원은 고숙련 직업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고객을 직접 응대한다는 점에서 자동화되기 어려운 일자리로 간주되어왔다. 고객을 상대하려면 자신의 업종에 대한 상세한 지식은 물론 ‘고객 불만’이라는 돌발 변수에 실시간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노동’으로 불리는 이유다. 현재 구글 나우, 애플 시리, MS(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 따위 챗봇들은 주로 모바일에서 ‘개인 비서’ 같은 곰살맞은 별칭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이것들이 앞으로 인간의 감정노동을 대체할 유력한 후보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챗봇들은 천문학적 분량의 업무 지식은 물론이고 고객의 신용정보, 소비성향 등 공식적 기록과 SNS에 남긴 농담까지 분석한 다음 (사이버) 매장에 배치될 것이다. 역대 인간 직원들의 다양한 고객 응대 경험을 통계적으로 분석해서 ‘진상 고객’을 응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도 습득할 것이다. 음성인식 기술의 미흡한 부문만 해결된다면, 인간 고객들은 조만간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로봇들과 대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부정적 전망이 압도적으로 많다. 장기 전망에서 긍정적인 학자나 언론들도 단기(20~30년 정도로 보인다)에서는 파괴적이라고 인정하는 편이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저술가인 마틴 포드는 저서 〈로봇의 부상〉에서 “가속적으로 발달하는 기술이 숙련도의 고저를 막론하고 모든 산업 분야에서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자동화가 어려울 것으로 인식되어온 이른바 화이트칼라 직종까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 월가의 금융 인력은 21세기 초 15만명에서 2013년에는 10만명으로 30% 정도가 줄었다. 이는 금융거래의 50~70%가 로봇 트레이더들이 내는 매수·매도 주문으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 트레이더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실시간으로 금융시장 상황을 체크하면서 대응할 뿐 아니라 허수 주문으로 다른 거래자들을 속여 주가를 흔든 다음 ‘먹튀’하는 ‘속임수 거래’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로봇들이 천변만화하는 시장 흐름을 즉각적으로 판단해 매도·매수 여부를 결정하는 시장이라면, 가장 큰 경쟁력은 ‘전산망의 속도’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거래에 참여한 모든 로봇이 특정 회사의 주가가 오를 것이라 예상하고 동시에 매수 주문을 낸다면, 그 주문이 경쟁자들보다 수억 분의 1초라도 빨리 시장에 도달해야 한다. 미국의 한 금융사는 2억 달러를 들여 뉴욕과 시카고를 잇는 광케이블 공사를 추진했는데 그 목표는 전송 속도를 1000분의 3~4초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금융시장에서 로봇의 지위가 높아지자 〈블룸버그〉 〈다우 뉴스〉 등 금융 전문 언론사들은 기계가 읽을 수 있는 뉴스 상품까지 출시했다.

ⓒGoogle Lisbon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구글 사무실. 구글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

산업혁명 이후 최근까지 특정 산업이 자동화되면 다른 산업에서 일자리가 창출되는 패턴이 이어져왔다. 이는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수차례의 공황에도 살아남은 이유다. 그러나 이번 자동화는 그런 긍정적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된다. 인터넷과 컴퓨터가 모든 산업에서 채택된 범용 기술이기 때문이다. 산업 전반적으로 자동화가 진행된다면, 일단 특정 산업에서 퇴출된 노동자는 갈 곳이 없다. 또한 정보통신 산업 자체의 고용력이 별로 크지 않다. 자동차 산업이 한창 호황이던 1979년 110억 달러의 수익을 낸 GM은 84만여 명을 고용했다. 그러나 2012년 구글은 종업원 3만8000여 명으로 140억 달러 수익을 올렸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부상은 사회 전체로 보면 생산력의 발전이자 거대한 진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로 인한 대량해고 사태는 자칫 시장경제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마틴 포드 등이 기본소득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유다.

산업혁명 당시,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나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은 자동화로 노동자 계급의 빈곤화가 심화되면서 사회를 몰락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1920년대에는 ‘기계의 전진이 실업자를 양산한다’라는 기사가 〈뉴욕 타임스〉 등의 유력지 헤드라인으로 나왔으며, 1960년대의 케네디 미국 대통령 역시 ‘자동화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의 완전고용 유지’를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고 한다.

로봇 트레이더가 ‘속임수 거래’도 한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끊임없이 창출되어왔다. 〈이코노미스트〉는 “기술이 일자리를 소멸시키기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 역사적 사례를 거론하기도 한다. 예컨대, 19세기 산업혁명 당시에는 직접 천을 짜는 노동자가 줄어들었지만 방직기계를 작동시키거나 보수, 유지하는 일자리가 생겼다.

19세기 미국의 경우, 방직 부문의 자동화로 ‘굵은 천(coarse cloth)’ 1야드(약 91㎝)당 필요한 노동자의 수가 98%나 줄었다. 그러나 생산량이 50배나 늘어나면서 가격 폭락으로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 덕분에 해당 부문 노동자의 수가 1830년에서 1900년 사이에 4배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1990년대 미국 은행들의 현금자동지급기(ATM) 도입도 처음에는 창구 직원의 일자리를 줄어들게 했지만, 은행들의 운영비가 절감되면서 지점 수를 43%(1998~2004)나 늘려 은행 노동자들의 전체 일자리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고 한다.

ⓒAP Photo애플 아이폰의 시리 기능은 ‘개인 비서’ 역할을 해준다.

더욱이 〈이코노미스트〉는, ‘비관론자들은 새로운 기술로 인해 나타나는 새로운 일자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며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의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어 교수의 재미있는 발언을 소개했다.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자리가 창출될지 예언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어느 시기에나 마찬가지였다.” 예컨대, 19세기에 살던 사람을 만나, 당신의 증증손자가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나 사이버 보안 전문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거라는 이야기다. 인공지능 역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챗봇이 고객 응대를 전담하게 되는 경우에도, 로봇을 ‘훈련’시키고, 업데이트하며, 심지어 아름답고 멋있는 말투의 대사를 대신 써줄 직원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인공지능 기업들이 앞다퉈 시인을 채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주도하는 MIT의 데이비드 오토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하면서 “세상엔 정해진 일자리밖에 없고, 그러므로 자동화에 따라 사람의 일이 적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근본적으로 틀렸다”라고 주장한다.

진실은 비관론자와 낙관론자들의 주장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가 격변기에 처해 있으며 이에 서둘러 대응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MGI)의 한 보고서(2015년 5월4일)는, 글로벌 경제가 기술발전 등의 변수로 인해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 변화의 강도를 산업혁명과 비교하면 “속도로는 10배, 범위로는 300배니까 3000배 정도의 충격이 예상된다”라고 한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