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베냐민은 ‘사진’을 기술복제 시대의 대표적 산물로 호명했지만, 실제로 기술복제 시대 최초의 발명품은 ‘책’이었다. 인쇄된 ‘책’은 근대의 산물이자 동시에 근대를 만든 발명품이었으며 표준화된 최초의 상품이었다. 15세기 중엽 유럽에서 일어난 인쇄 혁명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등장하게 되었다. 〈근대 유럽의 인쇄 미디어 혁명〉을 저술한 엘리자베스 L. 아이젠슈타인은 이들을 일러 ‘표준의 인간, 합리의 인간, 과학의 인간’이라고 불렀다. 지식과 정보를 분류하고 조직하는 데 능한 새로운 인간들과 더불어 근대 국민국가의 맹아가 싹트게 되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가능했던 것은 인쇄 혁명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대중과 나눌 수 있게 되고, 민족주의를 자극함으로써 독일 제후들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자 드니 디드로가 편집 책임을 맡은 〈백과전서〉는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백과사전이 어떻게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될 수 있었는지는 잘 묻지 않는다. 어째서 유럽 최고의 지식인 150여 명이 대거 참여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작업이었던 〈백과전서〉에 대해 당시 가톨릭교회와 귀족 등 반대파 진영의 공격과 탄압이 쏟아졌을까? 그 이유는 이 책이 당대의 지식과 학문, 기술 등을 종합하여 구사상(종교·편견·구습)과 체제를 비판하며 이성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지식의 바벨탑’이었기 때문이다. 〈백과전서〉 출판을 통해 인류의 진보는 하늘의 뜻이 아니라 인간 이성의 작용에 따른 것이며, 미래의 진보 역시 이성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는 선언이 바로 〈백과전서〉였다. 이성의 시대, 사전의 유용함, 사전의 권위는 〈성경〉에 버금가는 것이 되었고, 국가권력은 사전을 통해 표준어를 정의하고, 이를 통해 표준적 사고의 틀을 과점하게 되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위키백과〈/font〉〈/div〉유럽 최고의 지식인 150여 명이 참여한 〈백과전서〉는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드니 디드로는 〈백과전서〉에 들어갈 ‘백과사전’ 항목을 본인이 직접 집필했는데, 이 항목은 〈백과전서〉를 통틀어 가장 길고 상세하다. 그는 백과사전의 주제어를 ‘지식의 연쇄’로 정의한 뒤, 이 단어의 그리스어 어원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해서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백과사전의 목적은 지구상에 흩어져 있는 지식을 모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지식의 일반 체계를 제시하고, 이를 우리 다음에 올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철의 〈검색, 사전을 삼키다〉는 이 책의 제1장 ‘한 사전 편찬자의 자기소개서’만 읽어봐도 저자가 디드로 못지않게 ‘사전’에 미친 사람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순히 사전에 대한 예찬이나 사전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드니 디드로의 ‘백과사전’ 항목을 계승하는 한편 IT 시대 새로운 사전의 출현을 분석하고 예비하는, 사전에 대한 일종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44년 만에 제작 중단

1768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초판 일부가 출판되었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2012년 3월15일 더 이상 종이책 출판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출판된 지 244년 만의 일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몇 년 동안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국어사전을 신규로 펴낸 이후 사전 제작이 중단되다시피 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일반화되고 고작 10여 년 만에 인터넷 검색이 사전을 삼키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과연 사전은 이대로 사라질 것인가?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전은 지금처럼 홀대받을 만한 책이 아니다. 당신이 매일같이 쓰고 있는 검색 엔진이 사실은 사전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될 것이다. 검색이 좋아지기 위해서라도 좋은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기자명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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