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집을 읽는 것은 색다른 독서 경험이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한 권으로 묶인 칼럼은 쪽글로 소비되던 때와는 또 다른 맥락과 역사를 만들어낸다. 모아놓은 글에는 시간의 흔적과 시대의 얼굴이 고스란하다. 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 대학 교수가 펴낸 <정의를 위하여>(동녘)도 그런 책이다. 주로 2015년 3월부터 1년간 썼던 <한국일보> 칼럼을 모았다. 기존의 글을 모아놓기만 한 건 아니다. 꼭지당 2800자 분량이었던 글을 두 배 가까이 늘려 새로 쓰다시피 해 내용을 보완했다.

강교수는 한국, 독일, 미국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초청을 받아 3년간 다녀왔다. ‘부부 전임교수 임용 불가’ 통보를 받았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감신대의 성차별적 결정이 부당하다는 판정과 함께 복직을 권고했지만, 학교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현재는 미국 텍사스크리스천 대학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종신교수로 코스모폴리태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등을 가르치고 있다.

강 교수는 일년에 한 두번씩 한국을 방문한다. 특히 이번에 연구학기를 맞아서 한국을 방문했고, 이 기간을 이용해 한국에서 각종 강연을 여는데 올해는 성 소수자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강연장 대관이 취소될 뻔한 일도 있었다. 8월4일 강 교수를 만났다.

ⓒ시사IN 신선영 강남순 교수(사진)는 남편과 함께 감신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부부 전임교수 임용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인권위로부터 복직 권고를 받았지만 학교 측이 거부했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누군가를 규정하는 것의 한계와 위험성에 대해 지적해왔다. 교수님은 ‘여성’ ‘페미니스트’ ‘신학자’ 등으로 불린다.

그 세 가지는 사람들이 나에게 주는 정체성이다. 나는 그냥 ‘인간’이 나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지만 그게 나의 결정적인 정체성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초학제적(Transdisciplinary)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철학과 신학의 경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은 경계 속에 있지 않다. 내 몸부터 세상의 정치·경제·문화 등과 모두 결부되어 있지 않나. 페미니즘 관련 과목을 가르치고 있지만, 내가 페미니즘만 공부한 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토크니즘(tokenism·버스 토큰의 아주 작은 구멍처럼 만들어놓은 출구. 예를 들어 한 조직에서 여성을 한 명 정도 임명해서 성 평등이라는 명분을 세우는 것)으로 쓰인다는 생각도 한다.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사람이 소위 보편적인 학문적 구조 안에서 다른 과목을 공부하고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을 잘 안 하는 것 같다.

페미니즘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일까.

페미니즘은 ‘하나’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성 차별주의적 구조들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결국 다른 차별과 배제에도 반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을 나타내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생물학적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썼다. 페미니즘의 출발은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지만 이게 가진 독특성이 있다. 다른 종류의 차별은 주로 공적 영역에서 경험된다. 근데 성차별의 범주는 사적 영역부터 공적 영역까지 망라해서 경험된다. 예전에는 차별 구조가 노골적이었다. 이를테면 여성참정권 같은 눈에 보이는 차별과 싸우는 식이다. 지금은 굉장히 은밀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강력한 성차별이 작동된다. 그 때문에 더 치밀하고 복합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페미니즘 그리고 여성 인권에 대해 ‘이미 충분하지 않으냐’ 같은 말들을 보면 여전히 우리의 사유 방식이 얼마나 남성중심적 구조에 갇혀 있는지 알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중요성의 위계를 설정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른바 ‘메갈리아’ 논란이 한창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다 보면 화나는 일이 참 많다. 그런 분노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면화하는 건 별로 효과가 없다. 분노할 때 가장 좋은 전략 중 하나는 치밀하고 복합적인 이론을 갖고 대응하는 거다. 이것이 ‘왜’ 문제이며,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다뤄야 하며, 이 문제를 주변화하는 건 누구인가에 대해 담담한 얼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론은 실천이라고 늘 강조한다. 이론과 실천(운동)은 이분법적인 게 아니다. 페미니즘이든 여성혐오든 미러링이든 이게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우려하는 것 중 하나는 서로를 끊임없이 타자화·악마화하는 분위기다. 미러링은 특정 정황에서는 효과적인 변혁의 방식일 수 있지만 항구적이지 않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인식론적 사각지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어떤 것을 절대화하는 건 폭력일 수 있다.

ⓒ강남순 교수 제공 강 교수(가운데)는 미국 텍사스크리스천 대학 브라이트 신학대학원에서 11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의 ‘현안’을 외부에서 글로 개입하는 것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있다.

댓글이나 메시지로 ‘미국에서 배불리 먹고’ ‘부자 나라에서 교수까지 하는’ ‘한국에서 살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별다른 대응은 하지 않았다. 독일과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다시 외국으로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텍사스크리스천 대학에 온 지 11년이 됐는데, 이 학교에 오게 된 게 감신대가 ‘부부 전임교수 임용 불가’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이미 전임교수로 일하고 있기에, 배우자인 나까지 전임교수로 임용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2년 반을 싸우고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복직 권고를 받았지만 학교 측이 거부했다. 결과가 어떠하든 익숙한 곳을 떠나서 산다는 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어떤 의미인가?

한국의 대학은 그 인프라가 외국과 비교할 수 없다. 미국만 해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이슈를 커리큘럼에 바로바로 반영한다. 무엇보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지내는 경험은 다양한 의미에서 자기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외국에 나간다고 하는 건 나의 중심부로부터 멀어진다는 거다. 외국에서는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세컨드 시티즌(second citizen)’이다. 나만 해도 어쩌다 보니 4개국에서 살면서 소수자로서의 경험이 쌓였는데 이를 어떻게 학문에 반영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수업할 때도 책상을 위계적이지 않게 배치한다. 누가 말을 계속하고, 누가 말을 하지 않는지 주의 깊게 본다. 어떤 관계든 권력이 작동한다. 권력 자체가 좋고 나쁜 건 아니다. 다만 그 권력을 어떻게 기능하게 할 것인가. 이를테면 주변과 중심의 거리를 좁히는 데 쓸 것인가 아닌가는 중요한 문제이자 책임성이다.

소수자 경험이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든 건가?

그 경험의 ‘광의의 함의’가 무엇인지 고민을 계속해왔다. 그 경험이 사회·정치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해서. 이를테면 모임 같은 곳에 가면 가는 데마다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질문자는 의식하지 않았겠지만 굉장히 정치적인 질문이다. ‘나는 여기에 속해 있는데 당신은 여기에 속해 있지 않다’라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공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이렇게 답한다. ‘아이 엠 프롬 히어(I’m from HERE).’ 그들은 중국이나 한국 같은 대답을 원했겠지만(웃음). 그러면 다시 묻는다. ‘진짜’ 어디서 왔느냐고. 진짜 ‘여기’서 왔다고 답한다.

방한 때마다 강연 일정이 많다.

이번에 ‘데리다와의 데이트’라는 제목으로 환대와 종교에 관해 강연했다. 휴가 기간이고 날씨도 너무 덥고 해서 한 10명이나 올까 했는데 80명 넘는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3시간 가까이 서서 강연을 듣는 걸 보고 놀랐다. 전공자도 아닌 분들이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고 있구나 싶었다. 자크 데리다 하면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이론은 인간이 살아가는 얘기다. 이론이라는 건 소위 평범한 사람들도 ‘아하!’ 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인문학은 나와 세계에 대한 물음들인데 그걸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면 공부하는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본다. 학문적 공동체 너머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개입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는 게 나의 과제다.

감신대 강연은 대관이 취소될 뻔했다.

어떻게 성 소수자를 옹호하는 사람을 교단에 세우느냐는 내용의 항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위험한 교수’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좌파 지식인’이라고도 평하던데, 어디서부터 좌이고 어디서부터 우일까. 나는 그냥 강남순인데(웃음). 그런 라벨(label)은 한 사람에 대해 충분히 드러내지 못할뿐더러 문제가 많다. 다양성을 뭉뚱그려서 하나의 표지로 던지는 건 어떤 존재를 식민화하는 거나 다름없다.

ⓒ이화여대 학생 제공 최근 이화여대 시위에 등장한 졸업생의 피켓. 강 교수는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계기가 있나.

나는 아시안이고, 여자이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교수다. 첫 학기에 내가 학생들에게 물어보는 게 있다. ‘내가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당신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봤는가.’ 아무도 선뜻 답을 못한다. 그러면 역으로 질문하라고 시킨다. ‘선생은 강의실에 들어와서 무엇을 봤느냐’라고. 그리고 답한다. ‘인간’이라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태어날 때부터 성 소수자 문제에 열려 있었던 사람은 아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처음으로 자신을 게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옆에 앉기도 싫고 이상한 거 같기도 하고…. 나도 그랬다(웃음). 근데 지금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만 해도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을 ‘인간’이라고 한다면 성 소수자라는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학생들에게도 늘 강조한다. “너는 게이지만 게이인 것만은 아니다(more than gay)”라고. 섹슈얼리티를 절대적인 정체성으로 삼지 말라는 의미다. 처음에는 섹슈얼리티 문제에만 매달렸던 학생들이 관심사를 확장해 나갈 때 보람을 느낀다. 학교에 LGBT (성 소수자) 학생 모임이 있는데, 내가 상담교수(faculty advisor) 세 명 중 한 명이다. 나 외에 두 교수는 성 소수자다. 나는 헤테로(이성애자)인데 왜 나를 상담 교수로 초대했느냐고 물었더니 학생이 그러더라. “당신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다”라고. 내가 그들을 ‘지지하기 때문에’라고 답했으면 수락하지 않았을 거다. 지지한다는 건 어떤 면에서는 위험한 표현이다. ‘이성애를 지지하십니까’라고는 아무도 묻지 않잖나.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가 특히 종교인들의 주요 질문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자크 데리다는 종교란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종교를 ‘구원’ 안에 가두고 자본주의적 상품으로 만든다. 종교 공동체에는 굉장한 잠재성이 있다. 자발적으로 돈과 시간을 내는 공동체이지 않나. 이 가능성의 집단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런 점에서 종교 지도자의 사명이 굉장히 크다. 구원의 의미 역시 다르게 봐야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예수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도 예수를 구원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한다. 부서진 교리, 정형화된 말들로부터 예수를 끄집어내자고 한다. 성서 안에 모든 단서가 있다. 예수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같이 잘 먹고 잘살고 있는가’ ‘약자를 돌보고 있는가’ 이런 얘기들만 한다. ‘소수자 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한 사람이 예수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재미있었던 표현이 ‘여남노소’나 ‘3세 인간’ 같은 말들이었다.

보통 ‘남녀노소’라고 쓰니까. 인습적 사유를 흔들고 싶었다. 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이에 따른 위계를 형성하는 거다. 어떤 이들은 ‘뭐 그런 것까지 그러느냐’고 하는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고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나는 ‘언니 왔다’라고 쓰인 이대 졸업생 시위의 피켓도 좀 비판적으로 보는데, 한국은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타자를 보는 시선이 선후배나 언니·오빠 등, 끊임없이 ‘동질성의 연대’만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문에서 ‘내 글이 불편할 수도 있다’라고 경고한 건가?

내가 언론사와 인터뷰할 때마다 물어보는 게 있다. 이름 뒤에 괄호 치고 성별과 나이를 꼭 적어야 하느냐고. 나는 쓰지 말자고 얘기한다. 남성은 이름 뒤에 ‘남’이라고 표현하지 않으면서 여성은 꼭 성별 표기를 하더라. 여기자, 여교수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관행을 없애고 새로운 전통을 자꾸 만들어나가야 한다. 특히 미디어는 현실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가는 역할도 해야 한다. 언론의 책임이 아주 막중하다.

책에서 여러 이슈들을 다뤘지만 사회는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유를 행동과 연대로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소수자의 경우에는 이 과정에서 ‘지는 경험’을 훨씬 더 많이 한다.

아마 ‘나쁜 일’의 바닥은 없을 거다. 표면적으로는 평등과 정의가 이뤄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지식인들의 책임이 크고 중요하다. 타자에 대한 혐오의 시선이 어떻게 교묘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이들이 드러내지 않으면 비극적인 일은 더 많이 일어날 거다. 그리고 어떤 문제에 대한 저항, 그러니까 변혁운동은 일종의 ‘씨 뿌리기’다. 실패와 성공이라는 기준 자체를 바꿔야 한다. 미국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얻는 데 걸린 시간이 72년이다. 초기에 참정권 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이 실패했나? 씨를 뿌리지 않으면 열매도 없다. 나 역시 여성 문제와 관련해 몇십 년째 글을 쓰는데도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다. 어느 순간 동어반복을 하는 거 같고 그만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근데 어떤 사람은 내 글을 읽고 변했다고 말한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뿌린 씨앗의 혜택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것들을 끊임없이 내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게 필요하다.

‘쓴다’라는 것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이른바 ‘고향성’이라는 게 있다면, 내가 나임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나의 존재가 편안함을 느끼는 거라고 본다. 여러 나라에서 살다 보니 물리적 의미의 특정한 자리가 고향이라는 생각은 좀체 들지 않는다. 나는 ‘쓰기의 공간’에서 고향을 느낀다. 쓴다는 건 혼자 쓰는 게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치열하게 이 세계와 사람에 대해 개입하는 거다. 일기를 쓸 때 나에 대해서도 생각하지만, 내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나. 어떤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 쓸 때 어떻게 쓰겠다는 계획은 하지만, 사실 쓰기는 사건(events)이다. 나도 예상하지 않았던 내가 분출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런 표현을 했더라. ‘글쓰기 안에서 집을 찾았다(I find home in my writing)’라는. 연말에는 칼럼집보다 먼저 썼던 <용서에 관하여>가 나오고, 내년부터 차례로 <페미니즘과 종교> 등 기존 저서 3권의 개정판도 낼 예정이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