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에 ‘외계인’이 나타났다. 야당 분열로 총선 참패의 위기감이 높아지던 시절 문재인 당시 더민주 대표는, 2012년 박근혜 캠프에서 활약했지만 이후 박근혜 정권과 결별한 김종인을 영입해 비상대권을 주었다.

8개월이 지났다. 김종인 체제는 등장 때보다 더 큰 수수께끼를 남기며 8월27일 전당대회 이후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참패가 예상되던 총선을 이겼고, 총선 이후로도 야당에서는 본 적이 없던 ‘괴초식’을 연달아 휘둘렀다. 정체성 논란을 숱하게 일으키면서 당의 핵심 지지층과 척을 졌다. 전국 선거에서 이 정도 성과를 내고도 지지층에서 이만큼 거부감을 쌓아올린 리더가 또 있었을까.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 대표와 8월10일 국회 당 대표실에서 마주 앉았다. 세 가지가 궁금했다. 김종인 노선과 기존 야당 노선의 차이가 뭔가. 선출된 적도 없는 이 비상 통치권자는 왜 핵심 지지층을 깔아뭉개다시피 하면서 당을 이끌었나. 마지막으로, 그렇게 하면 대선을 이기나. 인터뷰는 짧고 간결하고 빠르게 주고받는 김종인 특유의 화법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야당에 없던 리더 유형이다.

나는 이래야 이길 수 있다고 본다.

기존 야당과 자신의 가장 큰 차이가 뭔가?

‘집토끼’(고정 지지층)를 잡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집토끼만 가지고는 절대 집권 못한다. 외연 확장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집토끼가 기껏해야 15~20%인데 그것만 가지고 집권이 되겠나?

ⓒ시사IN 신선영

기존 야당은 집토끼에만 호소했다?

우리나라 야당의 습성이 권위주의 시대에 형성되었다. 집권이라는 게 불가능할 때, 무조건 반대만 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거치다 보니 반대가 습성이 됐다. 그런데 이제는 5년마다 한 번씩 집권이 가능한 시대다. 과거 관습에서 벗어나야지.

수권 정당을 만들려고 왔다고 했다. 그게 뭔가?

다수 국민을 흡수할 역량을 가진 정당이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뭐가 모호해? 50%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수권이 가능한 거지. 그러려면 국민이 바라는 바가 뭐냐를 알아채고 수용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수 국민이 바라는 바가 뭔가?

살기가 어렵다. 국민들이 분노에 차 있다고 본다. 생활이 어렵고 전혀 개선되지 않고, 청년실업률이 두 자릿수인 상황에서 미래 희망은 보이지 않고. 그런 걸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정당이어야 수권이 가능하다.

그런 이야기는 김종인 대표 등장 전에도 야당 사람들이 많이 했다.

말만 하지 말고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해야지. 그러면 국민은 판단을 한다. 이 정도면 기대할 수 있겠다, 아니다 이건 허황되다 이렇게. 그래서 우리 당이 정책 정당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전 야당은 말만 했지 국민이 기대할 프로그램을 낼 역량이 없었다?

그렇다. 총선 때 우리가 적시하지 않았나. “문제는 경제다.” 집권을 하면 한국 경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얘기한 것을 국민이 받아들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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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는 “정당 역량보다 리더 역량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양극화·저성장·일자리 감소’를 한국 경제의 핵심 도전으로 제시했다.

헨리 포드가 한 얘기가 있다. 자동차가 자동차를 살 수는 없으니, 소득이 있어야 사람들이 자동차를 살 거고, 그러니 임금도 올려줘야 한다고. 우리가 경제성장을 꽤 했다는데, 1%가 혜택을 보고 99%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양극화가 벌어졌다. 새누리당은 총선 때 양적완화 얘기를 했다. 대기업에다가 부으면 낙수효과가 일어날 거란 얘기 아니냐. 그거 허구라는 게 입증되어 있잖나. 우리 대안은 경제민주화를 통해 포용적 성장으로 가자는 거다.

경제민주화와 경제성장이 대립하는 노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경제민주화를 해야 경제활성화가 된다. 포용적 성장을 하려면 전제가 경제민주화다.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는 시장이 승자독식으로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보완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의회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시장이라는 제도와 의회라는 제도가 같이 맞물려 작동해서 오늘날 자본주의를 굴려온 거다. 그런데 최근에 세계적으로 그게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걸 고쳐야 한다.

어떤 시장주의자들은 의회가 시장을 방해하기만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미국이나 유럽에는 많다. 그래서 그 나라들이 더 걱정하는 거다. 이래서는 자본주의의 미래가 불확실하다. 이대로 두면 시스템이 무너질 거다. 시장이 깨지지 않으려면 개입이 필요하다.

 

김종인 대표가 주장하는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 노선이 기존 야당 노선과 근본적인 결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문재인 전 대표는 당 대표 시절 ‘소득 주도 성장론’을 기조로 내세웠다(김 대표 측과 문 전 대표 측은 서로 두 정책이 차이가 크다고 주장한다). ‘포용적 성장’은 2010년에 당시 정세균 대표 체제의 민주당이 발표한 ‘뉴 민주당 플랜’에도 나온다. 그렇다면 더 중요한 차이는 대북 노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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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에 대해 “정직하고 선량하다. 다만 인품과 리더십은 별개”라고 말했다.

어느 전선에서 싸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정당의 중요한 역량이다.

그게 전략이지.

사회·경제 이슈에서 정부와 각을 세우는 반면 외교·안보 문제는 뭉개는 경향이 있다. 일부러 그런 건가?

뭉개는 게 아니다. 안보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지도자의 1차 덕목이 국가 안위를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느냐다.

대북정책을 ‘관여’와 ‘봉쇄’로 구분할 때, ‘관여’ 노선은 야당의 정체성이었다. 북한 궤멸론을 던지면서 이 뿌리를 흔들었다고 평가받았다.

아니다. 나는 인게이지먼트(관여)를 해야 한다고 본다. 대중·대미·대일 외교를 할 때, 1차적으로 해야 할 게 뭐냐.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실마리를 풀지 못하면 행동반경이 좁아진다. 중국더러 북한 문제에 대해 협력하자고 하면 그 사람들이 “피를 나눈 너희가 해야지 왜 우리에게 그러냐” 그런다.

그 접근법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같은데?

그 (관여) 방식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다. 시대가 변하고 국제환경이 변하는데, 전략적 목표와 전술적 선택은 구분해야지. 우리의 전략적 목표는 평화통일이다. 상황에 따라 전술적 선택은 바꿀 수 있다. 햇볕정책을 전략적 목표라고 착각하는데, 그건 전술적인 선택이었고 지금은 그걸 쓸 수 없는 시대다.

“궤멸” 발언 이후 김 대표를 북한 붕괴론자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궤멸’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봐라. 뭐라 되어 있나(사전의 뜻은 ‘무너지거나 흩어져 없어짐’이다). 소련이 왜 무너졌나. 백성을 먹여 살릴 능력이 없으니까. 지금 북한도 못 버티는 순간이 오면 결국 그 체제가 존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독일도 서방과 관계를 확고히 하고 나서 소련하고 외교관계를 맺고 일찍 협력했다. 내부적으로도 동서독 간 교류를 열심히 해서 통일을 이룬 것이다. 우리도 결국 독일 통일 모델로 갈 수밖에 없다.

사드는?

사드만 해도 그래. 선거공약으로 “집권하면 사드 폐지하겠다.” 이러면 수권세력으로 말이 되겠나? 집권한다고 치면 폐기할 수 있을 것 같나? 사드는 한·미 안보방위조약의 틀 속에서 이뤄진 거지. 그게 없으면 이거 할 필요도 없다. 주둔군의 생명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유엔사와 국방부의 군사적 판단에 찬성하고 반대하고 할 일이 아니다.

몇몇 의원들은 반대론을 제기한다.

당이 중심을 잡고 있으니 의원들이야 얼마든지 자기 생각에 따라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다. 당이라는 게 그렇게 굴러가는 거지.

차기 지도부가 반대를 내걸 수도 있는데?

내가 볼 땐 되돌릴 수도 없는 문제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문재인씨가 사드 반대론 제기하니까, 그러면 대표 후보들은 물론 자기 소신도 있겠지만 그쪽이 세가 강하다고 하니까 따라 하는 거지 뭐.

 

경제 문제와 대북 문제는 한국 사회의 핵심 갈등 축이다. 두 축에서 김종인 노선은, 세부 사항이야 어쨌든 기본적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포용성장론’과 ‘관여(인게이지먼트)’다. 둘 다 기존 더민주 노선과의 급진적 결별과는 거리가 있다. 이쯤 되면 더 헷갈린다. 임기 8개월 내내 따라다녔던 숱한 정체성 논란은 대체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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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이런 말도 한 적이 있다. “하도 당의 정체성과 다르다고 해서, 그 정체성이 그러면 뭐냐고 물어보니 아무도 대답을 못하더라.”

반대한다는 걸로 정체성을 지킨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반대는 반대로 끝나버리지. 표를 많이 받아서 집권할 수 있도록 바꿔야지.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이 123석 차지한다고 상상한 사람 있나?

침묵하는 유권자라도 정당이 정확한 대안을 제시하면 반응한다?

당연하다. 내가 107석에 미달하면 책임지고 물러난다는 소리를 괜히 한 게 아니다.

선거 직전까지도 데이터는 나빴다.

나는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 정치라는 게 직감으로 보는 거지. 박근혜 정부한테 선거 결과를 냉철하게 분석하라고 말하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선거라는 게, 어떤 정보기관도 제공하지 못하는 정보를 일반 국민이 한꺼번에 표출하는 장이다. 평소에 목소리를 내지 않는 국민도 그때는 신호를 준다. 그 정보가 진짜다.

새누리당이 ‘진성 친박’ 이정현 의원을 대표로 뽑았다. 그건 ‘마이웨이’ 선언 아닌가?

그렇다면 총선 결과를 이해 못한다는 뜻이지.

선거로만 의사를 표현하는, ‘말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평소에 어떻게 들어야 하나?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 말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게 바로 리더의 재능이고 지혜다. 혼자 사색하고, 세상의 움직임을 보면 알지. 그걸 모르는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지혜라고 하는데, 밖에서 보면 판단의 과정을 검증할 방법이 없다. 독단으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나는, 뭔가 사건이 일어나면 앞으로 대략 어떤 사태가 전개될 거라는 게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돌아가면 앞으로 어떻게 되겠다 싶은 게 과거의 경험을 통해 축적되어 있거든. 독단은 나쁜 표현이고, 결단을 할 줄 알아야지. 지도자는 미래를 내다보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자기 선택은 독단이 아니라 결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건 모르겠다. 결국 국민의 뜻은 선거로 확인되는 거니까.

결단인지 독단인지 결과로 평가받는다?

그런 거지. 미안한 얘기지만, 내가 예측한 대로 뭐가 좀 안 됐으면 좋겠어(웃음). 우리나라 경제를 보면서 구조를 바꾸지 않고 이대로 가면 어떤 어떤 결과가 나올 거다 싶은 게 보이는데, 그리 가면 큰일 난단 말이야.

목소리 큰 지지자에게 휘둘리면 진다고 했다. 선출직은 지지자에게 구속받아야 하는 자리 아닌가?

그러면 당을 합리적으로 끌고 가지 못하겠지. 선출직이고 아니고 문제가 아니다.

정치인의 그릇 차이다?

아휴 그렇지 뭐.

양쪽에서 선거를 치러보니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제일 다른 게 뭔가?

기본적으로 똑같다. 선거는 매니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선 때 나는 새누리당에서도 당신들 고정표라는 35%를 가지고는 절대 집권 못한다고, 외연 확장 계속 강조해서 정강·정책까지 다 바꿔버렸다.

정당 역량보다는 리더 역량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더 중요하지.

선진국은 정당 역량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선진국은 정당 자체가 그런 기량을 축적하도록 꾸준히 노력해왔잖나. 한국 정당은 아직 그런 수준에 모자라서 결국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종인 노선이 기존 야당 주류 노선과 근본적으로 결별하는 대목은 경제나 대북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여기, 리더에 부여하는 초월적인 지위다. 이 단호한 엘리트주의자의 세계에서 리더는 지지자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를 예측한다. 리더가 쓰는 도구는 직감과 관찰과 사색과 지혜와 결단이다. 모조리 리더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그게 정확한 예측인지 외고집인지, 탁월한 결단인지 지지자를 외면하는 독단인지, 미리 알 방법은 없다. 리더의 고독한 판단에 민주적으로 개입할 경로도 막혀 있다.

선거 결과가 리더의 지혜와 결단의 ‘품질’을 사후에 확인해준다고 믿는 이 모델에서 리더란 무엇보다도 ‘선지자’다. 김종인 대표는 자신이 그런 선지자형 리더라고 믿는 것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이 세계관은 야권 주류와 결정적으로 충돌한다. “정치 과정에 시민 참여를 확장한다”라는 방향성은 야권 주류가 공유하는 가치다. 문재인 전 대표는 온라인 입당제로 10만 당원 가입을 이끌어내며 시민 참여 노선을 또 한 걸음 밀어붙였다. 하지만 선지자 모델로 보면, 시민 참여의 확장이란 리더의 지혜와 결단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대체로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리더가 지혜를 동원해 들어야 할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와 결이 다르다. 이를 따라가면, 선거는 진다. 그래서 김종인 대표는 ‘지지자의 목소리에 구속받는 정치인’을 그릇이 작은 정치인으로 평가절하한다. 야당 지지층과의 갈등은 필연이다.

 

기존 지지층의 거부감이 크다.

당이 기존 방식대로 하니 와해 직전이었던 것 아니냐. 집토끼가 가기는 어디로 가나. 지지층이 달아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고로는 선거에서 절대 못 이긴다. 집토끼의 반발은 기본적으로 애정에서 나오는 거다.

그렇게 보면 지독한 악역을 맡은 셈인데?

악역을 안 하고 수권 정당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나? 지도자가 될 사람은 국민 일부가 반대하는 걸 관철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새누리당에서 선거할 때도 그 사람들에게 얼마나 욕을 먹었는데. 거기도 선거가 어려울 때는 아무 소리 못하고 가만히 있더니 이기니까 경제민주화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튀어나오더라. 지금 더민주 꼴도 비슷해.

초기에는 문재인 대표가 기존 지지층을 달래 가면서 김종인 체제를 안착시킨 것 아닌가?

애초에 (문 대표가) 기존 지지층 통제를 못했으니 그만두고 나갔다고 봐야지. 솔직히 말해서 리더가 당의 분열을 조정 못하고 그렇게 했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처음 당에 올 때는 문재인 대표를 존경한다고 말했는데.

나는 존경한다고 하지 않았어. 정직하고 선량하다고 했지.

그러면 인품에 대한 평가도 바뀌었나?

인품과 리더십은 별개 이슈야. 여전히 선량하고 정직해.

기존 지지층에서는 김 대표를 두고 이렇게 해야 대선을 이긴다고 기대하다가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독단적 리더십이라고 느끼는 복잡한 심경이 보인다.

나도 안다. 나랑 친한 사람도 그렇게 조언하더라고. 이분들이 기본적으로 지적 만족을 원한다. 자기가 생각하는 걸 그대로 따라주는 정당, 거기서 정신적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데 그 요구에 맞추다 보면 집권으로부터 멀어진다.

끝까지 악역이다.

그러니 그분들도 집권을 위해서 조금 참고 도와주시라 그 얘기야(웃음).


더민주의 고정 지지층은 새누리당 고정 지지층보다 작다. 게다가 더민주는 고정 지지층의 입맛이 까다로워 표 확장 시도가 간단치 않은 정당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종인식 선지자 모델은 그 문제에 대한 해법 중에서도 하나의 극단이다. 다수 국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리더가 지혜와 결단력으로 잡아낸다.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기존 지지층은 그냥 무시한다. 총선 막바지, 기존 지지층이 문재인 전 대표의 호남 순례에 환호할 때, 핵심 전선을 교란한다며 김종인 대표가 시큰둥했던 장면은 누가 옳았든 간에 아주 상징적이었다.

선지자형 리더십은 특출한 리더에게 거의 초법적인 권한 위임을 요구하는 모델이다. “그래야 이긴다”라는 것이 김종인 체제 8개월이 내놓는 핵심 주장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맞는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은 제쳐두고라도, 이 모델은 리더가 오판할 때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중요한 약점이 있다. 2012년부터 양쪽 진영을 넘나들며 치른 전국선거 세 번에서 모두 이긴 김종인 대표는 자신이 충분히 검증받았다고 여긴다. 반면에 절차적 민주주의, 정치 과정의 투명성, 더 많은 시민 참여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더민주 지지층은 선지자 리더십을 받아들이기가 더 어렵다.

더민주는 김종인 모델이 해결했다고 주장하는 과제에 대해 ‘선지자 모델을 뺀 해법’을 준비해야 그를 넘어설 수 있다. 아니면 대선이 다가오면 결국 선지자 모델을 대안으로 수용할 수도 있다. 김종인 체제를 겪은 더민주는 그가 한 번도 다녀가지 않았던 것처럼 굴 수는 없다. 이 독특한 리더가 남긴 숙제가 만만치 않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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