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해본 적 없는 충격이었다.” 8개월간 김종인 체제를 겪은 더불어민주당 당내 인사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김 대표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당의 외연과 문화가 달라졌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연쇄 탈당에 시달리던 제1야당은, 김 대표 체제에서 123석으로 잠시나마 제1당이 되었다. 총선 결과를 놓고 보면 김종인 체제를 실패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권위를 확보한 보스가 당의 기강을 세운 것이냐, 아니면 당이 생존을 위해 권위주의를 잠시 눈감아준 것이냐? 김종인 체제를 보는 속내는 다양하다. 김 대표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갈린다. 지난 총선에서 수도권에 출마했던 한 인사는 김 대표 체제를 이렇게 정리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뭣이 중헌디’였다. 계파 갈등을 하찮게 만들었다.” 그동안 야당의 고질병이었던, 무너진 기강을 확립했다는 평가다. 이슈를 집중시키고, 불필요한 잡음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기강 확립은 메시지의 속도감을 끌어올렸다. 총선 동안 공보를 담당했던 한 더민주 관계자는 김종인 체제의 가장 큰 특징으로 아침회의 장면을 꼽았다. “스피커를 줄인 게 효과를 봤다. 예전에는 아침회의 공개 발언이 30~40분 걸렸는데, 요즘은 5분 이내로 끝난다. 당 차원에서 전해야 할 메시지가 짧고 굵게 정리됐다.” 그는 메시지가 간명해지면서 이슈 선점에도 효과를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담뱃세나 전기요금 누진제 문제를 여당보다 먼저 치고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야당에서 누가 구조조정을 입 밖에 꺼낼 수 있었겠나. 지금 당 대표 선거에 나선 누구도 못 꺼내는 말이다.” 한 수도권 의원 보좌관의 말이다. 김종인 대표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즉각 대응하는 모습”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첫 기자회견에서 “단독 선대위원장을 제안받고 왔다”라고 선언한 장면이나, 정호준 의원을 비서실장에 앉히려다 정 의원의 아버지인 정대철 전 의원과 충돌하는 장면에서 카리스마를 느꼈다는 이들이 많았다.

ⓒ시사IN 조남진4월13일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이 되자 김종인 비대위 대표(앞줄 가운데)가 박수를 치고 있다.

당원으로부터 선출되지도 않은 김종인 체제가 총선 이후로도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김종인 개인의 독특한 캐릭터가 한몫을 했다. 한 관계자는 김 대표를 ‘눈치 보지 않는 캐릭터’라고 정의했다. 그는 김 대표의 그런 자신감이 그가 확보한 정보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보았다. 여기서 정보력은 단순한 첩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접근 가능한 네트워크가 여야를 통틀어 가장 넓은 인물이라는 얘기다. 한 당직자는 “정보가 풍성하니 판단도 비교적 정확하다. 인맥 네트워크에 경험이 더한 결과다. 실제로 김 대표의 예측이 맞아떨어질 때가 많아 놀랐다. 그러니 비대위든 선대위든 누가 함부로 반박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20대 총선에서 새 얼굴이 대거 등장하며, 예전과는 달리 ‘팔로십’이 확보되리라는 기대감도 많다. 수도권 한 중진 의원의 보좌관은 “김종인 체제가 끝난다고 당 문화가 다시 사분오열로 흐르진 않을 것이다. 20대 국회 당선자 가운데에는 ‘봉숭아 학당’으로 불리는 당 지도부 분열 때문에 지역에서 피해를 본 분들이 많다. 김종인 체제에서 당이 안정되며 겨우 당선되었기 때문에, 리더십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라고 평가했다. 김종인 리더십이 남긴 일종의 ‘문화적 자산’이다.

하지만 효율을 우선시하는 김 대표의 의사결정 방식이 더민주의 문화와 종종 충돌했다.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한 관계자는 “중요한 시기에 김 대표가 비대위를 잘 이끌어준 것은 사실이나, 이 리더십이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은 아니다. 우리 당이 추구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거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종인이라는 개인 캐릭터가 가진 권위보다는 권위주의적 의사 결정이 더 도드라졌다는 것이다. 김종인식 리더십은 제한적 효과를 거뒀을 뿐, 문화적으로 계승해야 할 대상은 아니라는 평가다. 비상 상황이었기에 가능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아래로부터의 의견을 뭉개고 ‘정무적 판단’을 이유로 설명 없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리더십이 차기 지도부에서도 가능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가장 결정적인 리더십 확보 국면이었던 당무 거부 사태를 두고 한 관계자는 “비례대표 공천파동 자체는 당에 확실한 악영향을 끼쳤다. 곧바로 새누리당 옥새파동이 일어나 이슈에서 묻혔을 뿐이다”라고 평했다. ‘차르(옛 러시아 절대군주)’라는 냉소가 김 대표에게 덧씌워진 것도 이즈음이었다.

안보는 ‘전략적 모호성’, 사회·경제는 ‘선제공격’

용인술 역시 리더십에 흠집을 냈다는 평이 많다.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비대위원과도 연락이 끊기거나, 기자회견장에서 컷오프 발표 대신 기자에게 만년필을 선물하는 등 기행으로 자주 입길에 올랐다. 유승민 의원 찍어내기로 공천파동을 일으킨 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아니었더라면, 충분히 논란이 더 커질 수 있었다. 김종인 리더십이 권위주의적이라는 평가는 총선 결과에 대한 해석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과적으로 승리했지만, “더민주가 잘해서 이긴 것이 절대 아니다”라는 단서를 붙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김 대표가 정말 긍정적 효과를 불러 총선을 승리로 이끈 것인지, 아니면 부정적 효과를 끼치고도 새누리당의 자멸 등 다른 원인 덕분에 선거 결과가 좋았을 뿐인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김종인 리더십이 추구했던 표심 확장이라는 방향만은 당내 대다수 인사들이 공감하고 있다. 중도층으로 당의 외연을 확장해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것이 내년 대선의 기본 공식으로 통한다. 친문·반문을 떠나 대부분의 인사들이 “이 방향성 자체는 문재인 전 대표도 목표로 삼았던 지점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김종인 대표는 안보 이슈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사회·경제 이슈에서 ‘선제공격’을 추구했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곧 총선 결과라고 주장한다. 더민주 내에서는 특히 안보 이슈에서 미온적 태도에 불만이 많지만 일단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많은 당내 인사들은 “승리에 대한 열망, 정권 교체에 대한 절박함이 존재하기에 아직 불만을 적극 표출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향후 스피커로서 김종인을 품지 못하면, 대선은 어려워진다.” 다음 당 대표가 ‘차르’로 대변되는 김종인식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는 없지만, 김종인이라는 인물이 8개월 동안 확보한 새 영역 없이는 대선 승리도 어렵다는 얘기다. 이것이 제1야당이 받아든 핵심 과제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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