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 논란이 한창이던 8월2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박경신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중요한 지적을 한다. “혐오 표현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일으킬 위험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혐오 표현은 차별적 계층구조가 있어야 성립한다. 차별적 계층구조의 피해자에 대한 욕설은 혐오지만, 가해자에 대한 욕설은 혐오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차별 구조의 상위에 위치한 남성에 대한 혐오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메갈리아에 반발하는 남성 중 적지 않은 이들이 한국 사회는 여성이 우위에 있고 남성에게 더 차별적이라고 주장한다. 적어도 젊은 층에서는 남녀 격차가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혐오도 성립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한국의 여성 차별 증거로 자주 제시되는 통계가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매년 산출하는 ‘젠더격차지수’다. 이 통계에서 한국은 2015년 현재 145개국 중 115위다. 그런데 이 통계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얘기가 자주 들린다. 명예살인이 일어나는 인도가 108위고, 중동의 쿠웨이트가 117위인데, 한국 여성의 위치가 실제로 이들 나라와 같으냐는 것이다. 이 의구심은 근거가 있다.

ⓒ연합뉴스 6월30일 ‘여성업(up)엑스포’ 취업박람회에서 한 여성이 취업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젠더격차지수는 4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 참여와 기회, 교육, 건강, 그리고 정치권력이다. 이 중 교육의 성별 격차는 고연령층에서 여성이 고등교육을 별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층으로 한정하면 성별 고등교육 격차는 역전되었다. 2014년 고등학교 졸업자 중 여학생의 75%가 대학에 진학하는 데 비해 남학생은 68%만이 대학에 진학한다.

성별 건강 격차는 기대수명과 성비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대수명은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여성 우호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초적 문화’로 남성들의 음주율과 흡연율이 높아 중년 남성의 기대수명이 여성보다 크게 낮다. 또 남녀 건강 격차에서 한국의 격차가 큰 유일한 이유는 출생 성비 격차 때문이다. 태아 성별감별을 금지한 이후 성비는 급격히 개선되었다. 최근 출생 코호트(통계상의 인자를 공유하는 집단)의 성비는 105로 자연 성비와 일치한다. 한국의 교육과 건강의 성별 격차는 급격한 사회변동에 따른 통계적 착시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오류가 한국의 높은 젠더격차지수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한국의 성별 격차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경제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젠더격차지수는 전체 145개국 중 한국이 125위다. 시리아·레바논·이집트 등 상당수 이슬람 국가보다도 낮다. 특히 성별 소득 격차가 크다. 노동시장 참여 여성의 평균소득은 남성의 55%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성별 소득 격차는 노동 공급의 문제, 즉 여성이 일을 적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발적 선택이든 아니든 실제로 여성의 파트타임 노동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높다. 여성의 평균 노동시간도 남성보다 짧다. 하지만 풀타임(전일제) 노동자로 통계 분석을 한정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세계경제포럼과 달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성별 임금 격차 통계는 전일제 노동자의 성별 중위소득(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정확히 가운데)을 비교해 격차를 계산한다. 아래 〈표〉에서 보듯 한국의 격차는 36.7%로 OECD 국가 중에서 독보적으로 높다. 이는 여성 노동자의 중위소득이 남성 노동자의 중위소득보다 36.7% 낮다는 의미다. 대부분 OECD 국가에서는 성별 소득 격차가 20% 미만이다. 미국은 17.9%이고 독일은 13.9%이다. 우리 다음으로 성별 격차가 큰 일본이 26.6%다. 한국과 무려 10%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성별 소득 격차가 가장 낮은 수준인 뉴질랜드와 벨기에는 각각 5.6%, 5.9%에 불과하다.

남성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데 여성은 집에서 편하게 보낸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하루 중 가사노동까지 포함한 전체 노동시간은 여성이 더 길다. 여성이 남성보다 하루 평균 33분 더 일한다. OECD 국가 중 전체 노동시간의 성별 격차도 큰 편에 속한다. 여성의 전체 노동시간이 남성보다 길기로는 전체 26개 국가 중 일곱 번째다. 한국 남성이 전체 OECD 국가 중에서 가사노동에 가장 적게 참여하기 때문이다. OECD 국가들의 남성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2시간18분이지만, 한국 남성의 가사노동은 45분에 불과하다. 한국 남성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임금노동 시간이 길어서 가사노동에 참여를 못한다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맞다. 전체 노동시간이 긴 순서로 순위를 내면 한국 남성들은 26개 OECD 국가 중 14위다. 다른 국가의 남성보다 전체 노동시간이 길지 않다.

ⓒ시사IN 신선영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시민들이 강남역 10번 출구 주변에 붙여놓았다.

아내 학대가 남편 학대보다 37배 더 많아

지난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한국에서 여성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2003~2007년 경찰청에 접수된 가정폭력 피해 신고 건수 중 83%가 아내가 학대받은 경우이고, 2.2%만이 남편이 학대받은 경우였다. 아내가 학대받는 비율이 남편이 학대받는 비율보다 37배 높다. 비슷한 통계를 미국에서 찾아보면 친밀한 이성 간에 가해진 폭력 중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남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보다 단지 4배 높다. 단순 비교를 하면, 한국 여성은 미국 여성보다 남편이나 친밀한 이성으로부터 폭행을 당할 상대적 확률이 9배 이상 높다. 다행히도 최근 국내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가정폭력은 절반으로 줄었다. 가정폭력 범죄에 대한 특례법 제정 이후 많이 줄어든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나라보다 가정폭력 발생 비율이 높다.

성차별을 보여주는 일련의 통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을 예상할 수 있다.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통계는 세대 간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젊은 남성이 있을 수 있다. 장년층 이상 구세대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지만, 여성의 높은 대학진학률에서도 드러나듯 청년층에서는 성별 지위가 역전되었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반론도 있다. 통계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풀타임 노동자 중 여성의 소득이 낮은 이유는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쌓은 인적 자본이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반론할 것이다.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으로 노동시장에서 탈락할 확률이 높다. 오랜 기간 경력 단절 없이 노동시장에서 경험을 쌓은 남성과 아무런 경험이 없는 ‘아줌마’를 같이 취급할 수 없다. 성역할 이론에 따르면 혼인한 여성의 노동시장 탈락은 가족경제의 효용 극대화를 위해 부부가 선택한 결과다. 가족 내부 분업을 통한 노동의 특화이므로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여성 차별 사회구조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반론을 예상할 수 있다.

이 반론의 타당성을 알아보기 위해 필자는 노동부의 2010년과 2011년도 ‘대졸자 직업경로 조사’ 원자료를 분석해보았다. 대졸자 직업경로 조사는 대졸 직후 노동시장 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젊은 세대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다면, 적어도 대학 졸업 직후의 고용이나 소득에 남녀 격차는 없어야 한다. 일부의 주장대로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높다면, 대졸 직후 여성의 직업 위계나 소득이 남성보다 높을 것이다.

하지만 자료 분석 결과 여성의 소득은 남성의 79%에 그쳤다. 여성의 소득이 여전히 21% 낮다. 대졸 직후 노동시장 참여율에는 남녀 격차가 거의 없으므로 이 격차가 통계에서 말하는 선택 편향의 결과도 아니다. 혼인과 경력 단절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분석은 미혼자로 한정했으므로 결혼과 출산 효과도 아니다. 필자가 미국 대졸 남녀의 소득을 비슷한 인구를 대상으로 분석했을 때는 성별 격차가 전혀 없었다. 노동시장 경력 차이가 없고, 혼인과 출산 영향이 없는 극히 협소한 대상으로 한정해도 남녀 격차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결과는 노동시장의 여성 차별 구조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일부에서는 남녀 간의 전공 차이가 이러한 소득 격차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할 것이다. 남성은 소득이 높은 공학을 주로 전공하지만, 여성은 인문학이나 교육학을 전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공을 통제해보면 이런 반론은 기각된다. 남녀의 전공 차이가 소득 격차를 설명하는 정도는 1%포인트에 불과하다. 대학에서 똑같은 전공을 공부했어도 여성의 소득은 평균 20% 낮다.

대졸 남녀 소득 격차의 상당 부분은 한국 사회가 군 복무를 마친 남성을 적극 우대하기 때문이다. 군 가산점은 사라졌지만 군 복무를 마친 남성들이 안정되고 소득이 높은 산업의 대기업 정규직 직장을 얻을 확률이 여성보다 확실히 높다. 군 의무복무는 남성의 희생이라 할 수 있지만, 이 희생 이후 남성은 오랜 기간 노동시장에서 유무형의 혜택을 누린다.

노동시장에서 여성 차별이 구조적으로 존재한다는 증거는 교육대학 졸업자들의 노동시장 성취를 보면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교사의 임용과 소득은 정부의 규제를 크게 받으므로 차별에 의해 성별 소득 격차가 발생하기 어렵다. 만약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가 구조적 차별이 아니라 측정되지 않은 남녀의 선택 차이 때문이라면, 교육대학 졸업자라고 일반대학 졸업자와 다를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필자의 분석 결과 20% 이상 소득 차이가 나는 다른 분야와 달리, 교육대학 졸업 여성의 소득은 남성보다 단지 8% 정도 작다. 그나마 8% 격차의 대부분도 군 복무 남성의 호봉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 규제가 큰 분야에서는 남녀 격차가 거의 사라져버린다. 이는 다른 분야에서 나타나는 남녀 격차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에서 나온다는 방증이다.

이상의 결과가 알려주는 바는 분명하다. 결혼·출산의 효과를 논외로 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심각한 노동시장 차별이 존재한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어떤 선진국도 한국처럼 심각한 여성 차별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한국은 양성평등에 관한 한 계몽의 대상이 되는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은 성차별적 구조의 하위에 위치한 피해자이고, 남성은 이 구조의 수혜자다. 여성혐오는 차별 선동의 대상이 있는 구조적 문제다. 사회적으로 경계하고 적극적으로 고쳐나가야 할 폐해다. 반면 남성에 대한 혐오적 표현은 구조적 약자의 저항 수단으로 사용되는, 그것도 소수의 수단으로만 사용되는 개인적 성향의 문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차별적 구조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연간 15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고등교육에서 남녀의 격차가 역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지속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자원 낭비가 더 심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기자명 김창환 (캔자스 대학 사회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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