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30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심우정)는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을 소환조사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하 어버이연합)에 대한 자금을 지원했는지 여부와 관제 시위에 관여했는지 등을 조사했다. 허 행정관은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소환조사는 지난 4월 경실련 등 시민단체가 고발한 지 5개월 만에 이뤄졌다. 대검찰청의 한 고위 간부는 “청와대·국정원·전경련이 복잡하게 걸려 있는 문제여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라고 귀띔했다.

〈시사IN〉은 제456호 ‘보수 정권 9년 국정원 흑역사’, 제464호 ‘전 국정원 직원들의 자백, 박원순 공작’, 제466호 ‘박원순 문건이 국정원 문건인 15가지 이유’ 등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을 연속 보도했다. 이번에는 국정원과 어버이연합 커넥션을 취재했다. 국정원을 퇴직한 간부급 직원뿐 아니라, 대기업에 취업한 국정원 직원과 사정기관 관계자들로부터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있었던 국정원과 어버이연합 커넥션에 대한 증언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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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국정원의 전 고위 간부는 “검찰 수사가 더딘 건 어버이연합 뒤에 국정원이 있기 때문이다. 수사를 하면 국정원이 어버이연합의 몸통이라는 게 밝혀질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전직 사회팀 간부는 “활동력 없던 단체를 키우고 살린 곳이 국정원이다. 어버이연합의 어버이는 국정원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정원 전 간부는 “어버이연합을 움직일 돈을 만들 수 있는 곳은 국정원뿐이다. 정보와 돈 그리고 실행할 수 있는 인력이 있다는 점이 국정원 힘의 원천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어떻게 어버이연합을 키웠을까. 2006년 5월8일 어버이날, 어버이연합은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국민들에게 전파한다’며 출범했다. 이때만 해도 활동력이 거의 없는 보수 단체였다. 기껏해야 10명 정도가 모였다. 초기에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수준의 활동을 했다. 존재감도 없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어버이연합은 급성장했다. 어버이연합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때부터 대규모 맞불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군복을 입은 보수 단체와 함께 촛불시위대를 규탄하는 ‘관제 시위’였다. 그들의 급성장 배경에 국정원이 있었다고 국정원 전 직원들은 증언했다. 처음 국정원이 어버이연합과 연결된 것은 국정원 전 직원 ㅅ씨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ㅅ씨는 전직 국정원 간부들의 모임인 ‘국사모’(국정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활동했다. 그런 ㅅ씨가 여러 방송에 나와 국정원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원세훈 같은 사람의 원장 인사는 아주 망국적이면서 매국적인 아주 나쁜 인사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하루빨리 이런 사람을 갈아치워야 이러한(국정원의 주민 공작이라는) 불행한 오해의 소지가 나오는 상황도 재발되지 않을 것이다.” 국정원 처지에서는 국정원 출신이 공개적으로 원장을 비판하자 골치가 아팠다. ㅅ씨의 입을 막으려 했던 국정원 쪽에서는 ㅅ씨와 친분이 있던 국내 정보수집국장 ㅇ씨가 나섰다. 국정원 고위 간부 출신 인사는 “그(ㅅ씨)를 무마하기 위해 그와 친분이 있던 어버이연합 쪽에 2000만원씩 두 번 지원했다. 처음에 ㅅ씨에 대한 입막음용으로 지급하면서 국정원과 어버이연합은 연을 맺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정원 전 고위 관계자는 “그렇게 인연을 맺은 뒤 어버이연합 시위에 몇 차례 국정원이 지원한 것으로 안다. 국정원 수뇌부에서 효과가 크다고 판단했다.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 ‘어버이연합을 반종북 세력으로 육성해 종북 단체를 제압하겠다’는 보고서가 만들어졌다. 뒤이어 어버이연합 지원 방안 보고서도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어버이연합은 이명박 정부 내내 이슈마다 관제 시위에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 구속 촉구’ ‘용산 참사 장례식 반대’ ‘대법원장 퇴진’ ‘무상급식 반대’ 등 어버이연합은 이명박 정권의 소방수로 투입됐다. 2012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비상대책위원을 맡았던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도 “어버이연합의 뿌리는 MB 정권이다. 이명박 정권 내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을 비판하는 시위도 거의 거기서 주도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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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1월6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나타나 한·일 위안부 합의를 환영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퍼포먼스를 벌였다.

어버이연합의 활동무대는 ‘전국구’였다. 2011년 구조조정에 나선 한진중공업 사용자 측에 맞서 노동자들이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 시위를 벌이고, 노조를 응원하는 시민사회 단체가 부산까지 ‘희망버스’를 운행했다. 그러자 어버이연합 회원 300여 명이 ‘희망버스는 절망버스’라고 쓴 피켓을 들고 부산까지 내려왔다. 그들은 한진중공업 앞 영도대교 4차선을 가로막고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욕을 하면서 몸싸움을 걸었다. 버스에 탄 시민들을 끌어내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어버이연합 회원들의 주차구역을 확보해주는 등 편의를 봐주었다는 비판을 샀다.

어버이연합은 2011년 11월24일 국정원이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는 ‘박원순 제압 문건’에도 등장한다. 문건에는 “자유청년·어버이연합 등 범보수 진영 대상 박 시장의 좌경사 시정을 규탄하는 집회·항의 방문 및 성명전 등에 적극 나서도록 독려”하라는 문구가 나온다. 문건 내용대로 어버이연합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한 집회를 10여 차례 열었다. 국정원 사회단체 담당 전 간부는 “어버이연합은 집회를 기획하고 개최할 능력이 부족했다. 이런 어버이연합을 조직화하고 보수 단체로 키운 건 국정원의 기획이라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력을 갖춘 어버이연합은 박근혜 정부 들어 전성기를 구가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박근혜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나섰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종북’으로 내몰았다.

박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새누리당 의원들도 공격 대상이었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자라 비난하고, 김무성 대표에게 사퇴하라며 쫓아갔다. 새누리당 비박계 한 중진 의원은 “어버이연합은 박 대통령과 조금만 틈이 있는 사람은 아무나 물어뜯는다. 권력의 패륜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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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윤무영‘박원순 제압 문건’ 내용대로 어버이연합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한 집회를 10여 차례 열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어버이연합이 신고한 집회는 3000회가 넘었다. 실제 개최한 집회만도 300회가 넘는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버이연합이 집회를 신고하기만 하면 100% 허가를 내주고 당일 신청도 받아준 점을 고려하면 어버이연합의 권력층 유착 관계는 명확하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전 간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어버이연합 사용 매뉴얼이 완성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 단체들은 활동비가 지급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특성이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집회를 열면 돈을 만들어주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됐다”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 들어 신고한 집회만 3000회

국정원 전 간부는 어버이연합 사용 매뉴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국정원 출신들은 보통 국정원을 ‘회사’라 표현한다. “경찰에 어버이연합 집회 신고가 들어오면 바로 국정원 상황실에 보고가 올라온다. 집회 신고는 경찰이 집계하는데, 경찰 상황 보고는 국정원 수집 지역단 서울경찰청 담당자 팩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다. 금주·매일의 집회시위 예정 사항도 경찰에서 국정원장 앞으로 대봉투에 담겨서 온다. 그것이 복사되어 국정원 내 관련 부서에 아침마다 쫙 뿌려진다. 서울경찰청 상황실에도 계기시(명절 등)마다 격려금이 내려간다. 크고 중요한 집회에 대해서는 바로 회의가 열린다. 국정원 국내정보수집국장이 단장단 회의를 하고, 단장들이 팀장들 소집해서 지시 사항을 전달한다. 다시 팀장들은 정보관(IO)들에게 지시한다. 어버이연합을 동원해야 한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행사에 필요한 금액을 산출한다. 회사(국정원) 돈은 대형 집회 때마다 사업대책비 명목으로 나가는데 금액이 크지 않다. 많아야 2000만~3000만원이다. 목돈은 경제 단체에서 지원한다. 전경련이나 대기업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이뤄진다. 전경련은 출연금 말고도 많은 수익사업을 한다. 전경련이나 삼성·현대차·SK·CJ·LG 등 대기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돈은 최소 억 단위다. 억이 넘어가는 돈은 대기업들이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경제단장이 전경련 혹은 기업 담당 IO에게 얘기해서 만들라고 지시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이 같은 국정원 전 직원의 증언에 대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는 “국정원이 사업비를 요구하는 것은 하루 이틀 된 관행이 아니다. 기업마다 국정원 출신 임원들이 있는데 주로 이런 업무를 처리한다”라고 말했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국정원 고위직 퇴직자들은 지난 3년간 20명이 재취업 심사를 신청해 20명 전원이 취업에 성공했다. 김해영 의원은 “국정원 퇴직자들은 주로 대기업과 정부 유관단체에 취업했다. ‘고문’이라는 직함이 10명으로 가장 많았다”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의 고문을 지낸 국정원 전 간부는 “국정원 출신 퇴직 간부는 대기업에서 평소엔 기업의 대관 업무를 하다가 회사(국정원)의 협조 사항을 수행한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계속돼온 일이어서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국정원 전 간부는 “대기업·은행 그리고 경제 단체에 고문, 임원, 사외이사 등 국정원 퇴직자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통상 2~3년 동안 기업에서 월급을 받으며 국정원 일을 처리하다가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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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는 지난 4월27일 2013년 8월6일 어버이연합 차명 계좌로 지목된 벧엘선교재단 계좌에 ‘씨제이주식회사’ 명의로 1000만원이 입금됐으며 2014년 4월22일에는 ‘SK하이닉스’ 명의로 5000만원이 입금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어버이연합에 돈을 입금한 한 대기업 임원은 “국정원이 직접 요청한 일이다. 회장이 구속된 상태인데 어떤 기업이 거부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국정원 사회팀 전 간부는 “어버이연합 집회는 언론 광고 혹은 칼럼 게재 등과 세트로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정보수집국에서 언론팀에 얘기해서 어느 신문에 실으라고 지시한다. 이 비용은 회사에서 나간다. 정보관(IO)을 통해 대기업 광고를 주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정원 간부급 전 직원은 “어버이연합에는 사업대책비 명목으로 목돈이 건너가는 것 외에도 추가로 첩보망비와 협조망비가 지급된다. 첩보망비는 고정급이고 협조망비는 주로 명절이나 휴가 때 용돈처럼 전달된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국내정보수집국 사회3팀(19쪽 표 참조)이 주로 보수 단체를 관리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른바 국정원 민간인 조력자(첩보망원) 운영에 대한 국정원 전 간부의 증언이다. “어버이연합에도 첩보망원이 있다. 국정원 시민사회 단체 담당이 고정적으로 ‘첩보망비’를 주는 것으로 안다. 첩보망원들은 급수에 따라 신상카드가 작성되고 관리된다. 매달 지급되는 첩보망비는 S급 200만원 이상, A등급 100만원, B등급 80만원, C등급 50만원씩이다. 어버이연합 첩보망원은 A급이다.” 국정원의 전 고위 간부는 “첩보망비와 협조망비 등은 원래 해외 공작원에게 쓰는 용도로 만들어졌지만 어버이연합에도 사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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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2011년 7월 ‘희망버스’ 행사를 반대하는 보수 단체 회원들이 부산 영도로 향하는 차량을 막고 있다.

국정원의 보수 단체에 대한 지원과 민간인 조력자에게 활동비를 지급한 것은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에서도 일부가 드러난 바 있다. 지난 4월25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 8차 공판 때 검찰은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직원 박 아무개씨가 보수 우파 단체와 청년 우파 단체를 지원하고 지도하는 활동을 벌였다”라고 밝혔다. 박씨는 2011년 6월부터 2년간 보수 단체 7곳을 접촉해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비판, 무상급식·무상의료 반대, 민주노동당 해산 등 현안에서 정부에 유리한 집회를 열고 신문 광고를 내는데 관여했다.

검찰에 따르면 국정원은 보수 단체가 벌이는 1인 시위까지 관여했다. 피켓 문구까지 지시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우호적인 언론을 통해 보수 단체의 활동을 보도하도록 했고, 이를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등을 통해 인터넷에서 퍼 나르도록 했다. 국정원 전직 직원들의 증언과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앞서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 검찰 특별수사팀은 심리전단 안보5팀(트위터팀) 3파트장 장 이메일을 압수했는데, 장이 일반인 송에게 특정 인터넷 기사를 인터넷에서 확산시켜달라고 부탁하는 등 민간인 조력자로 쓰기도 했다. 장 파트장은 2009년 4월22일 특정 인터넷 언론사의 국장에게 특정 내용의 칼럼을 실어달라는 취지로 ‘또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이메일을 보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국정원은 댓글을 단 민간인 조력자 이정수(가명·김하영 직원과 함께 작업한 민간인)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매월 평균 300만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민간인 조력자에 대한 활동비 지급과 관련해 당시 최 심리전단 안보3팀장(커뮤니티 담당)은 “내가 월 300만원 정도 결제해주었다. 외부 조력자를 활용하고 팀장 전결로 처리하는 게 관행이다”라고 검찰에서 진술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어버이연합과 국정원 커넥션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된 유우성씨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재판 때도 공개된 바 있다. 당시 중국으로 건너가 유우성씨 관련 자료를 수집했던 탈북자 김 아무개씨가 2015년 7월14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씨는 “수집한 자료를 어버이연합을 통해 국정원에 전했다. 증거 수집에 들어간 경비 200만~300만원도 어버이연합으로부터 받았다”라고 증언했다. 유우성씨의 변호를 맡았던 김용민 변호사는 “국정원이 어버이연합을 시켜서 정보를 모으고 조작하도록 했다. 이 엄청난 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는 한 걸음도 진행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어버이연합 ‘첩보망원’에게 매달 고정급 지급

국정원은 어버이연합에 직간접으로 돈을 지원했느냐는 〈시사IN〉 질문에 “국정원은 어버이연합과 금전 거래가 없다”라고 밝혔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의에 출석한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국정원에서 자체 조사했지만 어버이연합과 국정원은 관련이 없다”라고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을 통해 밝혔다. 어버이연합 이종문 부회장은 “돈에 관해서는 추선희 사무총장이 다 알아서 했다”라고 말했다. 여러 차례 추선희 사무총장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추 총장은 〈시사IN〉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동안 국정원 자금 지원설에 대해 추선희 사무총장은 “회원 200여 명이 내는 회비 350만원과 폐지·빈병 등을 모아 번 돈 100만원 등이 월수입의 전부다”라고 말해왔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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