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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딸이 한뼘 자란 날, 아빠는 항정살을 구웠다

2016년 10월 07일(금) 제472호
김진영 (식품 MD)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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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윤희 배고파~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윤희의 톤 높은 목소리다. 중학생이 된 뒤로 한 달 넘게 윤희는 풀 죽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조마조마 숨죽이며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윤희가 다니는 중학교에는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 3명밖에 없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라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등교를 하고 일주일이 지날 즈음부터 조금씩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같은 학교 출신 남학생 한 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었다. 동호라는 남학생은 윤희랑 초등학교 2학년부터 쭉 같은 반이었다. 호남형에 키가 170㎝가 넘는 멋쟁이다. 중학교에 가서도 동호를 마음에 둔 여자애들이 생겼다. 그런데 윤희가 다른 애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으면서 동호하고만 허물없이 지내는 모습이 ‘재수 없게’ 보였던 거 같다. 반 친구들이 매일 한 번씩 “둘이 사귀지?” 하며 놀리는 것이 윤희가 받는 스트레스의 주범이었다.

그즈음부터 윤희는 학교에 다녀온 뒤 배가 아프다는 소리를 했다. 모른 척하고 윤희가 입을 열 때만 학교 이야기를 들어줬다. 따로 묻지는 않았다. 내 물음이 윤희한테는 질책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복통으로 병원에도 갔지만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입맛이 사라진 윤희는 배고프다는 말도 잘 안 했고 무엇을 해줘도 맛나게 먹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날 즈음 평소보다 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윤희가 귀가했다.

ⓒ김진영 제공
“무슨 일 있었어?” “아빠한테 이야기 안 할 거야.” “왜 안 하는데?” “아빠한테 이야기 안 할 거야.” “그럼 하고 싶을 때 해.” 이내 자기 방문을 닫고 들어가더니 20분 정도 있다 거실로 나왔다. “아빠” 하고 부르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오늘 애들이 동호 어쩌고저쩌고….” 그러더니 대성통곡한다. 가만히 윤희 등을 두드려줬다. 한참을 운 뒤에야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호랑 장난치며 노는데 여자애 몇몇이 심하게 놀렸다고 했다. 동호가 그 애들을 때리려 할 정도로 심한 다툼이 있었단다. 일단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윤희한테 이야기했다.

“고기에 상추 콜?” “콜!”

“윤희야, 일단 걔들이 잘못했네.” “하지만 윤희도 생각을 해봐. 내가 좋아하는 어떤 아이가 나랑은 이야기도 안 하는데 누군가랑은 장난치며 잘 놀아. 그럼 내 입장에서는 무시당한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일단 아이들이 윤희가 부러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또 자기들과도 함께 놀자는 신호일 수도 있으니 다른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려 애써봐. 다만 친해지기 위해 선물을 주지는 말고.”

내 말에 윤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학교는 가기 싫다고 했다. 이튿날 둘이 광화문, 인사동을 거쳐 명동까지 걸었다. 걸으면서 다시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내가 먼저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 걷고 나니 윤희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 뒤로 윤희에게도 차츰 새로운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 배고파~”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윤희다운 목소리 톤이다. 그동안 윤희는 잔뜩 풀죽은 목소리로 밥 달라는 소리를 했다. 윤희의 목소리가 밝아지니 대꾸하는 내 톤 또한 밝아진다. 행복이 뭐 특별한 게 있겠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고기에 상추 콜?” “콜!”

윤희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그중에서도 가장 맛있어하는 항정살을 사왔다. 소금과 후추를 뿌려 밑간을 하고 오븐에 구웠다. 상추쌈을 싸서 크게 한 입 먹는 모습을 보니 전과 달리 한 뼘 정도 큰 윤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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