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김’의 고백에 문단이 들썩였다. 폭로와 내부 고발과 파문이라는 단어가 그의 이름에 뒤따랐다. 강원도 철원에 사는 부모도 뉴스를 보고 전화를 해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 괜찮으냐?” 아들이 글을 썼다고 해도 따로 문예지를 찾아 읽지는 않는 부모였다. 동료들은 집 앞에서 보초라도 서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을 건넸다.

정작 당사자는 덤덤했다. 비난보다는 지지가 더 많았다. 특히 여성 문인들로부터 ‘속 시원하다’ ‘고맙다’는 인사가 답지했다. 김현 시인이 계간 〈21세기 문학〉 가을호에 발표한 글 ‘질문 있습니다’가 공개된 후 벌어진 일들이다.

폭로나 고발을 목적으로 쓴 글은 아니었다. ‘혐오’를 주제로 청탁이 들어왔을 때 고민이 많았다. 문예지를 비롯한 각종 매체가 여성혐오에 대해, 페미니즘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논리정연하게 사유하는 글이라면 이미 넘칠 정도로 많았다. 문단 내에도 성차별과 성폭력과 여성혐오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외부 사례만 거론되고 내부 이야기는 없었다. 때로는 단지 문인이라는 이유로 넘어가거나 이해받곤 하는 그 행동들이 잘못됐다고 누군가는 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유 중인 문제이고, 누가 먼저 쓰느냐만 남아 있었다.

“기고 글이 가십처럼 퍼져 나가고 스캔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유명해지려고 저런다’는 비아냥이 있는 것도 알고, ‘폭로만 하고 끝이냐’는 반응도 봤어요. 별로 신경 안 써요. 중요한 건 제안이거든요.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여기에서부터’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하자고, 일상 도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비일상으로 만드는 일들을 해보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시사IN 조남진김현 시인의 글 ‘질문 있습니다’는 생물학적 남성이지만 소수자로 살아왔던 그가 세상에 내놓은 페미니스트 선언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자기 상처를 먼저 드러내는 일이 윤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인은 ‘질문 있습니다’에서 관찰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말한다. “지금은 전혀 다른 의미의 일이 되었으나 그때 그 순간에는 참담했던”, 자신이 소수자로서 경험한 일들이 글의 주가 되는 까닭이다.

남자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남자답지’ 못했던 시인의 학창 시절 별명은 ‘미스 김’이었다. 선생님은 수업 중 공개적으로 “고추 떼”라는 말을 하곤 했다. 생물학적 남성이 ‘여자 같다’는 말을 들으며 군인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는 동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란 대체로 죽음에 가까웠다. 비밀로 가득 찬 일기장을 썼다가 태우기를 반복했다. 대학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군대에서는 ‘대리 여성’ 취급을 받았다. 여자답게와 남자답게만으로 구성된 세계에서 그가 설 자리는 좁았다. 수치는 언제나 당하는 사람의 몫이었다.

문단도 비슷했다. 술자리에서 ‘걸레 같은 ×’이니, ‘몸 팔아서 시 쓰는 ×’이니 따위 여성 문인들을 향한 남성 문인의 조롱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가해자들은 그러고도 ‘잘 살았다’. 방관자를 벗어날 수 있을까. 시인은 자신을 ‘미스 김’이라 부르며 지속적으로 괴롭혔던 뒷자리 아이에게 문구용 칼을 던진 날을 떠올렸다. ‘질문 있습니다’는 김현 시인이 문단에 던진 칼이었고, 변화를 바라며 깔아놓은 판이었다. “문단의 동료들이 ‘이 이후에 벌어질 작은 일들은 같이하자’는 이야기를 해줬을 때 엄청 든든했어요. 오히려 큰일은 같이 하기 쉬운데, 작은 일에 마음을 포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여성·신인·습작생의 목소리를 기다리다

‘질문 있습니다’는 생물학적 남성이지만 ‘이곳의 소수자’인 그가 세상에 내놓는 페미니스트 선언이기도 하다. 그는 가정폭력 상담 및 피해자 지원을 돕는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에서 10년째 자원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주최하는 여성인권영화제 1회 때부터 스태프로, 또 프로그래머로 손과 발 노릇을 해왔다.

그는 그곳의 ‘언니들’이 남자 중·고교와 군대를 거친, 가부장제와 군사주의의 산물인 자신의 삶을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그곳에는 여성학 이론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변화는 가능하다고,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한다고 함께 어깨 겯고 나가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20대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너무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워서 차별이나 폭력인지 모르는 먼지 같은 사례들을 찾아내고 이야기하는 동안, 스스로와 세상을 돌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번 글에서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을 수 있었던 용기도 그간의 활동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김현 시인이 강성은·박시하 시인과 함께 만드는 격월간 독립잡지 〈더 멀리〉 11호는 ‘질문 있습니다’의 연장선으로 꾸려진다. 그가 글 마지막에 쓴 “여성혐오 범죄 기록물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라는 제안에 스스로 내놓는 답이기도 하다. 문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혐오에 대한 목소리를 모으려 한다. 특히 여성·신인·습작생들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등단 과정에서 기성 문인들이 심사위원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하고도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용기를 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리’라는 도움을 줄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 멀리〉 11호에는 평론가들도 결합해 동시대 한국 문학이 드러내고 있는 여성혐오를 개괄하는 글도 준비하고 있다.

〈더 멀리〉는 11호 이후에도 ‘유구한 전통’으로 자리 잡은 여성혐오 관련 기획을 해볼 생각이다. 출판 편집자로 일하는 그는 어쩌면 이 이야기들을 책으로도 묶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흔적을 남기는 일이 ‘우리가 무언가를 했다’는 증명이기보다는 우리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기록이 되면 좋겠어요. 만드는 사람들끼리는 ‘우리 대에서 이런 일을 끊어버려야 한다’라는 다짐도 하거든요(웃음).”

문학은 필연적으로 시대의 거울이 된다. 시는 세계를 폭로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내년 봄에는 〈글로리홀〉(문학과지성사, 2014)에 이어 두 번째 시집도 나올 예정이다. 지난 시집이 이명박 정권 동안에 쓰였다면, 이번 시집은 박근혜 정권 아래서 쓰였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시와 전혀 연관이 없을 수 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 시집을 닫는 시는 세월호에 관한 시가 될 것 같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시민과 작가들이 여는 ‘304 낭독회’의 스태프로도 일하고 있는 그의 경험이 녹아든 시다.

그는 계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발표한 글 ‘견본세대 2’에 이렇게 적었다. “문학이 무슨 인권 보고서입니까? 문인이 무슨 인권 활동가입니까? 물을 수도 있겠지요. 그럼 문학이, 문인이 대체 그런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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