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의 행사가 부존재하다.” 개성공단 중단으로 큰 손실을 본 기업들의 헌법소원에 대한 박근혜 정부 측 소송 대리인의 답변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없다’는 의미의 ‘부존재(不存在)’라는 생경한 법률 용어가 나오지만, 그 의미는 명확하다. ‘박근혜 정권의 공권력 행사(개성공단 전면 중단)로 개성공단 기업주들이 손해(재산권 침해)를 당한 일이 없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헌법재판소(헌재)는, 박근혜 정부를 겨냥한 개성공단 기업주들의 헌법소원에 대해 ‘누가 옳고 그르고’ 따위의 판단 자체를 내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시사IN〉이 입수한 이 문건은 정부법무공단이 지난 7월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다. 정부법무공단은 각종 소송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대리하는 ‘국가 로펌’이다. 162개 개성공단 기업들은 지난 5월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을 집행하기 위하여 한 일련의 공권력 행사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며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냈다. 개성공단 기업들을 대리하는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의 김광길·노주희 변호사는 정부 측 〈답변서〉를 반박하는 〈의견서〉를 헌재에 다시 제출했다.

ⓒ시사IN 조남진지난 2월10일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한 다음 날 북한은 개성공단 폐쇄 조치를 내렸다.
정부 〈답변서〉의 기본 전략은, 이 사안이 헌재에서 논의되는 사태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으로 인해 개성공단이 폐쇄되었거나 기업주들의 재산권이 훼손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한 일도 아닌데 왜 우리더러 시비야?’라는 의미다. 또한 설사 정부의 공권력 행사가 그런 결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통치행위이므로 헌재가 나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 측 〈답변서〉와 개성공단 기업 측 〈의견서〉의 핵심 쟁점들을 따져보면, 정부의 옹색하고 모순된 논리가 드러난다.

대한민국 공권력이 개성공단을 중단시켰나?  

〈답변서〉에 나타난 박근혜 정부의 견해는 “개성공단 기업주들이 방북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북한 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 직접적 공권력은 북한의 개성공단 내 남한 주민 전원 추방 및 자산 전면 동결 조치라는 점이 명백하다”라는 것이다. 〈답변서〉만 보면 개성공단 폐쇄는 어디까지나 북한이 한 짓이다. 그러므로 박근혜 정부는 헌법소원을 당할 이유가 없다. 피해 기업인들에게 어떤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연합뉴스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정부의 조치가 위헌이라며 지난 5월9일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실제 경과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월10일 오후 5시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전격 발표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에겐 ‘다음 날(11일)부터 공단 내의 모든 기업 활동을 중단하고, 13일까지 한국으로 복귀하라’고 명령했다. ‘남한 주민 전원 추방 및 자산 전면 동결’이라는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는 2월11일 오후 3시쯤 발표되었다.

개성공단 기업 측은, 박근혜 정부 스스로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먼저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실제로 전면 중단 시행을 위한 일련의 조치를 집행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폐쇄 조치를 내린 북한만을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시킨 직접적 원인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주들의 재산권을 침해한 바 없나?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모든 시민이 자기 소유의 자산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수익을 올리거나 판매할 수 있으며, 이런 재산권을 부당하게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조사에 따르면, 개성공단 관련 기업들이 입은 최초 손해의 규모만 모두 8152억원에 이른다. 개성공단에 있는 설비, 원·부자재, 완제품, 건물 등을 합산한 금액이다. 영업 중단에 따라 원청기업과의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어 발생할 손해배상금 등은 제외한 액수가 그렇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상황이 계속되면서 재산 피해 규모가 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연합뉴스2013년 8월14일 남북한은 개성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하는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정부 쪽을 대리한 정부법무공단은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재산권에 대한 직접 침해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주장하는 재산권은 남북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개성공단이 남북 간의 신뢰 관계가 유지됨에 따라 원만하게 운영되어 개성공단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볼 수 있고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라고 보기 때문이다.

‘반사적 이익’이라는 용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정부가 도로 개발 사업을 하는 경우, 주변 토지의 가격이 올라 그 소유주들이 엄청난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경우에 해당한다. 만약 정부가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한다면 부동산 소유주들은 크게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재산권을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내봤자 각하될 수밖에 없다. 반사적 이익은 ‘헌법이 보호할 재산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주들을, 자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다고 투정부리는 부동산 소유주들에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공단에 둔 설비와 원·부자재, 건물, 심지어 토지 이용권(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필요 부지에 대해 북한 당국으로부터 일정 기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아왔다) 등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활용해서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다른 기업인들에게 판매할 수도 있었다. 문자 그대로 재산이다. 개성공단 기업 측은 “개성공단에 설립되어 있는 공장 등 건물, 생산설비, 원·부자재, 완제품 등은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재산”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제기할 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사법권이 미치지 못하는 국민의 해외 재산에 대해서도 보호하도록 되어 있다.

통치권은 사법 심사를 받을 필요가 없나?

특정 축구팀이 스스로 만든 규칙(입법)에 따라 경기하고(행정) 심판(사법)까지 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팀은 승승장구하겠지만,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는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근대국가들이 ‘삼권(입법·사법·행정) 분립’을 국가 운영의 가장 기본적인 틀로 삼고 있는 이유다. 행정부는 입법부가 정한 법률에 따라 움직이며 그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삼권분립에 예외를 둘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외환, 내란 등 국가 위기 국면이 발생하는 경우다. 정부법무공단은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통치행위’라면서, 헌법재판소가 심사를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헌법소원 자체를 각하하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사법부가 적극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국가 작용의 원활한 수행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다.” 정부법무공단에 따르면 선례도 있다. 2003년 10월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이라크 파병 결정이) 그 성격상 외교 및 국방에 관련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통치행위에 속하므로 그것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자문을 거친 만큼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진 것이 명백하다”라고 주장한다.

개성공단 기업 측에 따르면, 정부는 해당 사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본다. 당시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을 심리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이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자문을 거친(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와 마찬가지로) 뒤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국회의 동의를 얻음으로써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절차적 정당성(삼권분립)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이후 국무회의의 심의 및 의결을 거치지도 않았고, 더 나아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로부터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그 어떠한 사전적·사후적 통제도 받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대통령에 대한 권고 내지 의견 제시에 불과할 뿐 법적 구속력이 있거나 대외적 효력이 있는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는 어떤 법적 근거도 없는 셈이다. 정부법무공단 측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통치행위이므로 사법 심사를 자제하라’고만 요구한다. 그래서 개성공단 기업 측은 ‘행정부 측이 국회와 법원으로부터 견제받지 않는 초법적 국가 긴급권의 발동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실제로 대한민국 헌정사상, 국가긴급권(통치행위)을 사법 심사의 대상에서 명시적으로 배제한 것은 박정희 당시의 유신헌법(긴급조치)밖에 없다.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를 믿은 죄?

북한은 2013년 4월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시킨다. 2012년 12월 이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이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안 채택 등 정세 변화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이었다. 이후 남북한은 여러 차례의 접촉을 통해 2013년 8월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 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라는 내용의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를 채택한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이 합의서의 주역인 박근혜 정부를 ‘신뢰’했기 때문에 개성공단에 투자했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부 쪽은 “남북관계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닌 특수한 관계여서 남북한 사이의 합의로 체결된 개성공단 정당화 합의서는 (국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조약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단지 ‘개성공단의 원만한 운영을 위한 수단적’ 조치에 불과한 합의서를 구속력 있는 법률처럼 여겼던 기업인들이 잘못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남북관계의 정세 변화에 따라 개성공단이 부분적 또는 전면적으로 중단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청구인들이 개성공단 합의서를 신뢰하여 개성공단에 투자를 하고 입주하여 사업 활동을 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청구인들이 스스로 개성공단의 위험성, 남북관계의 가변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사업의 기회를 추구하였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개성공단 기업 측은 박근혜 정부마저 합의서를 법률로 간주해왔다고 주장한다. 2014년 11월, 북한이 개성공단의 노동규정을 일방적으로 개정하자, 박근혜 정부는 “(북한 측의) 일방적 개정은 법률적 효력이 있는 남북 간 합의를 뒤집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박근혜 정부가 발간한 〈개성공업지구 법규집〉에도 합의서가 “남과 북의 법률 또는 법에 해당하는 효력을 갖는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또 2013년 통일부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개성공단을 중단시키자 “개성공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 임의대로 개성공단 운영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국제규범에 따른 제도적 장치가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발표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다. ‘북한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폐쇄를 막기 위한 제도적 보장으로서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서가 마련되었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주체는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였다. 기업인들 처지에서는 정부를 믿고 개성공단으로 복귀해서 투자해왔는데, 바로 그 정부가 공단을 전면 중단시키더니, 이에 항의하자 ‘나를 믿은 당신들이 잘못이야’라고 큰소리치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개성공단 기업 측은 〈의견서〉에서 “신뢰보호 원칙상 피청구인(정부)은 청구인(개성공단 기업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한 데 대하여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5월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낸 헌법소원 청구에 대해 심판 회부 결정을 내린 헌재는, 현재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