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누진제와 관련해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지난 10월6일 서울중앙지법(민사98단독 정우석 판사)은 전기 소비자 17명이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부당하다’며 한전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14년 8월에 소송이 시작된 후 2년2개월 만이다.

전기요금은 한전의 전기 공급 약관에 따라 결정된다. 한전은 주무장관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약관 인가 신청을 한다. 산자부 장관은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법에 따라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임명 또는 위촉한 전기위원회에서 심의를 한다. 이렇게 인가된 약관에 따라 주택용 전기요금이 결정된다. 전기 사용량을 6단계로 구분하고 누진제가 적용된다. 구간별로 누진율이 다른데 6단계 누진율은 최고 11.7배에 이른다.

ⓒ연합뉴스올해 유난히 더운 날이 많아 전기 사용량이 폭증하면서 전기요금 누진제가 논란이 되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누진제 완화를 추진 중이다.
소송을 낸 전기 소비자들은 ‘한전이 독점적인 전기 공급자이고 법령에 따라 전기요금이 통제되고 있는데, 전기 사용자인 고객은 약관의 구체적 내용을 검토할 기회 자체가 없다. 또 누진 단계와 누진율이 과도해 전기 사용자의 이익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성을 잃은 전기 공급 약관은 약관규제법에 따라 무효이니 전기 사용자들이 낸 전기요금의 일부(실제 낸 전기료에서 1단계 기준으로 산정한 요금을 뺀 금액)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지난여름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던 누진제 논란 때문에 재판 결과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동안 선고가 4차례 연기되어 판결 결과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법원은 한전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원고(전기 소비자 17명)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전기 공급 약관이 공정성을 잃을 정도로 무효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또 전기 공급 약관이 법령에 따라 만들어졌고, 정부 고시에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체계의 근거가 마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전기 공급 약관이 무효’라는 원고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 판결은 전기요금 누진제와 관련한 다른 소송 9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소송을 제기한 측에서는 항소할 계획이다.

저소득층 에너지 복지 확충이 먼저다

1심 판결이 나왔지만 누진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전기요금 누진제는 뜨거운 이슈였다. 최근 국감에서 올해 7∼8월 주택용 전기 사용량 현황이 공개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8월 전기 소비가 많은 5·6단계 가구 수 비중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아래 〈표〉 참조). 지난해 8월 전기 사용량별 가구 수 점유비가 5단계 12.3%, 6단계 4.0%였는데, 올해 8월은 5단계 17.8%, 6단계 8.8%로 증가했다. ‘요금 폭탄’ 고지서를 받았을 가구들이다.

정부와 정치권, 한전은 누진제 개편에 나선 상태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전기요금 당·정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11월에 개편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주요 야당도 누진제 개편안을 제출했다. 민주당은 누진 단계를 6단계에서 3단계로 줄이고 최고 누진율을 2.6배로 낮추는 안을 내놓았다. 국민의당은 4단계 누진제 안을 마련했다. 현행 6단계에서 1·2단계를 통합해 1단계 요금을, 3·4단계를 합쳐 3단계 요금을 적용하는 안이다.

이처럼 누진제 개편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부·여당의 개편안이 나오면 진통이 이어지리라 보인다. 그동안 누진제를 개편하자는 시도가 있었지만 무산되었던 것은 전기 수요관리의 어려움과 전기요금 상승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더민주의 누진제 개편안을 만드는 데 관여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설계 기준을 달리해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는데, 한전이 지금의 주택용 전기요금 총액을 그대로 받는 것을 전제로 하면 전기 저소비 가정의 전기요금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2013년 6월 국회예산정책처의 〈전력가격체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누진제를 완화하면 전기를 적게 쓰는 가구는 전기요금이 증가하고 많이 쓰는 가구는 요금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 점을 고려해 저소득층을 위한 에너지 복지 확충이 먼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