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 문제가 미국 대선의 막판 판세를 뒤흔드는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을까? 대선(11월8일)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또다시 터진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납세 문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뉴욕 타임스〉가 익명의 제보를 바탕으로 작성한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1995년 9억1600만 달러(약 1조197억원)의 손실을 냈다고 신고한 뒤 이후 18년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기업이 손실을 냈을 때 이후 수년간에 걸쳐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세법 규정을 이용한 것이다. 불법인지 합법적 절세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합법적 절세라 해도 트럼프에겐 대형 악재다.

역사적으로 대선 직전인 10월에 미국 안팎에서 예기치 않은 중대 사건이 터져 판세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잦았다. ‘10월의 이변(October Surprise)’이라고 불릴 정도다. 2004년 10월,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창시자 오사마 빈라덴이 9·11 테러의 주범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영상 자료를 전격 공개했다. 테러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공화당 조지 W. 부시에게 다시없는 호재였다. 2008년 10월에는 주식시장의 폭락과 더불어 실업률이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W. 부시 당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했다. 결국 관록의 정치인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추락한 반면 민주당 초선 상원의원 출신인 버락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AFP트럼프(위)가 스스로 납세 내역을 공개하면, 오히려 클린턴의 허를 찌르는 공격이 될 수도 있다.
올해도 지난여름 이후 워싱턴 정가에서 이런저런 종류의 10월의 이변설이 나돌았다.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설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건강 문제, 두 후보의 자선재단 관련 의혹에 이르기까지…. 그중 하나가 ‘트럼프의 납세 내역이 폭로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는데, 이번에 적중했다. 민주당 선거 전략가 리스 스미스는 의회 전문지 〈더 힐〉에 “모든 10월의 이변 가운데서도 진짜 이변은 폭로든 해킹이든 트럼프의 납세 내역이 공개되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측면에서 〈뉴욕 타임스〉의 이번 보도는 오랜 세월 베일에 가려졌던 트럼프의 납세 의혹을 최초로 폭로한 10월의 이변에 속한다. 그렇다고 이번 폭로가 올 대선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 예단하기는 힘들다. 대선까지는 아직 한 달 정도 남았고, 트럼프 측도 반격 카드를 준비하며 위기관리 모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The NewYork Times〈뉴욕 타임스〉가 공개한 트럼프 후보의 납세 내역 일부.
트럼프는 지난 9월26일, 민주당 클린턴 후보와 1차 TV 토론에서 완패한 뒤에도 여성 비하 발언을 삼가지 못해 지지율 관리에 애를 먹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납세 폭로 건까지 겹쳐 반전을 도모하기가 더욱 어려운 상태다. 다행히 10월4일 트럼프의 러닝메이트 마이크 펜스가 클린턴의 부통령 후보 팀 케인과 첫 TV 토론에서 크게 선전했지만, 판세를 뒤엎기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평가다.

페어리디킨슨 대학이 10월5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은 트럼프를 지지율 10%포인트 정도 차이로 따돌렸다. 〈폴리티코〉가 10월3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도 클린턴은 42%의 지지율로 36%에 그친 트럼프를 6%포인트나 앞섰다. 같은 날 로이터 통신 조사에서도 클린턴의 지지율(44%)이 트럼프(37%)보다 7%포인트 높다.

게다가 주요 격전지에서 투표율이 높으리라 관측되는데, 이 또한 트럼프에게 불리한 현상이다. 올해 대선의 경우 37개 주에서 조기 투표를 허용한 가운데 위스콘신·아이오와 주를 포함한 일부 경합 주에서 이미 조기 투표가 시작됐다. 클린턴 측은 주요 격전지 투표율이 40%를 넘으리라 낙관하고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가 많은 주에서는 투표율이 높을수록 민주당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10월5일 현재 트럼프가 오하이오·아이오와 주에서 다소 우위를 보이지만, 클린턴은 플로리다를 비롯해 노스캐롤라이나·펜실베이니아·콜로라도 주 등 대선 승리에 필수적인 경합 주에서 강세다.

트럼프는 ‘세금 회피꾼’으로 각인될까

지난 9월까지도 백중세이던 경합 주 지지율이 최근 클린턴 쪽으로 기운 것은 〈뉴욕 타임스〉의 폭로 덕분이다. 이번 기사가 트럼프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인 ‘성공한 기업인’ 이미지를 바닥으로 떨어뜨려버렸다. 설사 트럼프가 한 일이 합법적 절세라 해도, 박봉에 세금을 꼬박꼬박 내온 대다수 유권자들 처지에서 볼 때 트럼프는 ‘세금 회피꾼’으로 각인될 것이 뻔하다.

10월4일 격전지 오하이오를 찾은 클린턴이 “저와 여러분을 포함해 수백만 가정이 열심히 일하면서 제 몫의 정당한 세금을 내왔지만 트럼프는 이 나라를 위해 어떤 세금도 내지 않은 듯하다”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클린턴 캠프는 트럼프를 ‘세금 회피꾼’으로 낙인찍기 위한 공세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불리한 판세를 누구보다 잘 아는 트럼프가 반전 카드를 내밀 수 있을까? 〈월스트리트 저널〉은 10월5일, 트럼프 스스로 10월의 이변을 준비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자신의 납세 내역 공개를 완강히 거부해왔다. 그러나 지금 같은 국면에서는 오히려 납세 내역 공개가 클린턴의 허를 찌르는 공격이 될 수 있다. 보통 4월까지 전년도의 소득 신고를 완료해야 한다. 다만 트럼프처럼 소득 항목이 복잡한 경우, 신고 마감을 6개월 연장해준다. 올해의 소득 신고 마감일은, 대선을 20여 일 앞둔 10월17일이다.  

트럼프가 납세 내역을 공개한다면, 둘 가운데 하나를 노릴 것이다. ‘사실은 세금을 많이 냈다’ 혹은 ‘세금을 내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식으로 자신에 대한 의혹을 최소화하려 할 것이다. 물론 수천 장에 달할 이 납세 내역서에는 트럼프 측의 ‘뜻하지 않은 오류’가 포함될 수도 있다. 내역서를 조작해서 트럼프를 충실한 납세자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물론 그의 납세 내역이 공개되면 언론은 물론 클린턴 캠프까지 일제히 검증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오류가 발견돼도 트럼프가 법적인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소득 신고 이후 오류가 발견되면 향후 3년 내에 수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진영으로서는 대선 투표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장난’을 칠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10월의 이변과 관련해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의 움직임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어산지는 2010년 미국 국무부의 외교 전문 25만 건을 공개한 뒤 기소되자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에 망명 중이다. 그는 지난 8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턴의 대선 가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문건을 공개하겠다”라고 말했다. 다만 폭로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동안 어산지발(發) 10월의 이변을 잔뜩 기대해왔다. 실제로 어산지는 10월3일에도 폭탄선언을 예고했지만, 어쩐 일인지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 투표일까지 한 달 남은 상황에서 클린턴 캠프가 안도하기는 이르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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