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6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시작부터 악재의 연속이었다. 태풍 차바로 인해 해운대에 설치한 시설물이 개막 전 복구가 힘들 정도로 망가진 건 마치 ‘상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부산시장이 개막식에 불참하기도 했다. 부산시는 수해 복구 때문에 시장이 불참한다고 해명했지만 영화인들은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과의 갈등으로 보았다. 2014년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 강행 이후 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은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는 개최조차 불투명한 상황까지 몰렸다.

지난 20년간 부산국제영화제의 얼굴이었던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직함 앞에는 이제 ‘전(前)’자가 붙었다. 부산시는 지난해 12월 이 전 집행위원장과 부산국제영화제 전·현직 사무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이 허위로 협찬 중개 계약을 맺고, 중개 활동을 하지 않은 업체와 개인에게 중개 수수료 명목으로 2011~ 2014년에 걸쳐 약 6000만원을 지급했다는 이유였다. 지난 9월28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이 전 집행위원장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10월26일 선고 공판이 열린다.

ⓒBIFF 제공10월12일 부산 동서대에서 ‘BIFF 사태를 통해 본 한국 문화사회의 위기’ 토론회가 열렸다.
부산시의 이 같은 대응은 영화인들에게 〈다이빙벨〉 상영 강행에 대한 ‘정치적 보복’으로 해석된다. 일부 영화인과 단체가 영화제 보이콧을 선언한 까닭이다. 개막작 〈춘몽〉의 배우 중 한 사람인 윤종빈 감독 역시 감독조합의 보이콧 지침에 따른 듯 개막식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또 다른 출연자 중 한 명인 박정범 감독은 기자회견에 불참했고, 양익준 감독은 “고향에 나쁜 놈이 들어앉았다고, 술수를 쓰고 있다고 먼발치서 고향을 보며 발만 동동 구를 순 없다”라는 전제를 달고 참석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다른 영화인들 역시 양 감독과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일부 단체의 ‘보이콧’도 이해하지만, 당사자들이 떠나면 오히려 관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망가진다는 것이다.

민관 협력의 ‘모범’이었던 부산국제영화제는 21회를 기점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먼저 민간 주도의 행사로 정관을 개정하고, 김동호 이사장 체제로 개편되었다. 초대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김 이사장이 영화제의 키를 잡으며 반발하던 영화인과 유관 단체들을 안심시켰지만, 여진은 가라앉지 않았다.

영화인들은 일련의 과정이 부산국제영화제 ‘자체’를 없애려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우지 못한다. 10월12일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BIFF(부산국제영화제) 사태를 통해 본 한국 문화사회의 위기’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문제 제기가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손희정 문화평론가의 사회로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BIFF 사태를 독해하는 몇 가지 쟁점들’에 대해 발제했다. 권명아 동아대 교수, 이승욱 플랜비문화예술협동조합 상임이사, 주유신 영산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연합뉴스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기 일주일 전 부산시는 ‘원아시아 페스티벌’이라는 한류 축제를 개최했다. 위는 부산 벡스코 전시관에서 열린 부대 행사 개막식.
마음대로 안 되니 ‘한류 축제’로 어깃장

이동연 교수는 토론회 전날인 10월11일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며 “문화 융성이라는 말 자체가 낯 뜨거울 정도로 검열 융성이 벌어지는 시대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가 박근혜 정부 기간에 정리한, 예술계 전반에서 벌어진 검열 사례를 보면 대략 한 달에 두 번꼴이다.

“사회적 재난을 재현하거나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거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것, 이 세 가지가 검열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했고, 특히 박 대통령의 ‘심기’가 가장 강력하게 작동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안 그래도 영화제를 손보고 싶었는데 〈다이빙벨〉이 뺨을 때려준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지금의 사태는 아예 영화제 자체를 손보겠다는 징후로 읽을 수밖에 없다.”

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이번 사태의 쟁점을 국가의 통제나 검열 프레임을 넘어 일관성 없는 ‘국가 주도의 구조조정’이라는 관점으로 확대했다. 2013년 일종의 대학 구조조정인 지방대 특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부산 동남권 대학에 영화·해운·항만을 육성하도록 지원해놓고 정부와 지자체가 정작 영화제를 망가뜨리고 있는 모순을 지적했다. 관의 일관성 없는 태도가 지역 기반을 와해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권 교수는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과 겹치는 시기인 10월1일부터 23일까지 개최한 ‘원아시아 페스티벌’을 그 예로 들었다.

올해 처음 개최된 원아시아 페스티벌은 K팝, K푸드, K뷰티를 중심으로 부산을 한류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부산시 주도의 한류 축제다. 부산 지역의 한 언론사 기자는 “원아시아 페스티벌과 관련해 지역 언론사들이 행사를 함께 기획하는 형식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이 행사 자체를 비판할 수 있는 창구 자체가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이승욱 플랜비문화예술협동조합 상임이사 역시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원아시아 페스티벌을 바라본다.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장 불만을 가지는 게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다. 이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예술계 원칙인데, 관료들은 관의 재원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정부와 코드를 맞춰야 한다는 사고가 팽배하다. 영화제가 자기들 마음대로 안 되니까 원아시아 페스티벌을 관 주도로 기획한 것 아닌가.”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룩한 유무형의 가치와 공공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영화 단체의 보이콧에도 영화제를 일단 개최한 것에 대해 이 상임이사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영화인들이 보이콧하고 뛰쳐나왔다면 지금 위원장·이사장 자리에 어떤 분들이 앉아 있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예상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렇게 BIFF 사태를 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다.” 이 상임이사에 따르면 서병수 시장 이후 영화제를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국장만 네 번째 바뀌었다. 일종의 경질성으로 풀이된다.

긴 성장통 끝에 개최될 내년 부산국제영화제는 또 어떤 모습일까.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들과 영화인들이 입은 생채기는 건강하게 극복될 수 있을까. 영화제는 끝났지만 돌아가는 자리마다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 남아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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