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제가 노·정 갈등의 핵으로 떠올랐다. 10월14일 현재 철도노조는 성과연봉제 반대를 내걸고 18일째 전면 파업을 이어갔다. 같은 이유로 9월23일부터 연쇄 총파업에 나선 금융·공공부문 노조들은 2차 총파업을 준비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볼모로 제 몸만 챙기는 기득권 노조의 퇴행적 행태다”라며 ‘명분 없는 파업’으로 규정했다.

성과연봉제 불씨는 지난 1월 타올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28일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권고안’을 확정했다. 성과연봉제란 성과 평가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제도다. 2010년 6월 도입한 공공기관 간부직 2급 이상, 전 직원의 7%가 적용받았던 성과연봉제를 비간부직 4급 이상, 전 직원의 70%까지 적용을 확대하는 게 골자였다.

이후 진행 과정은 속전속결이었다. 5개월도 채 되지 않은 6월10일 정부는 공기업 30개, 준정부기관 90개 등 120곳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속도가 빠른 비결은 당근과 채찍이었다. 공기업은 6월까지, 준정부기관은 올해 말까지로 시한을 정해줬다. 정부는 이 기간 안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완료한 우수 기관에는 인센티브 지급이라는 당근을, 미이행 기관에는 총인건비 동결 같은 채찍을 썼다.

ⓒ시사IN 윤무영10월1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에서 열린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성과 퇴출제 폐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교육·금융·노동 등 4대 구조개혁을 추진해왔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확대는 이 가운데 공공부문 개혁이자 노동 개혁에 해당한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9월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성과와 직무 중심으로 노동시장을 개편해 나가기 위한 노동 개혁의 필수 과제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연차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 체계는 한국의 지배적인 임금체계다. 대표적 연공급 임금체계가 호봉제다. 지난해 100인 이상 사업장의 호봉제 비중은 65.1%다. 숙련도 등 직무능력 수준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직능급이 36.8%, 난이도 등 직무 가치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직무급이 35.1%이지만 역시 호봉제와 비슷하게 운영되는 게 현실이다. 호봉제 비중은 기업 규모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 2015년 6월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부가조사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장의 호봉제 비율은 65.1%, 100인 미만 사업장은 24.1%다. ‘300인 이상’  기준으로 가르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69.2% 대 24.4%). 호봉제는 기본적으로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연합뉴스박근혜 대통령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은 공공기관을 임금체계 개편 ‘솔선수범’의 주체로 삼았다.
이 호봉제의 지속 가능성이 흔들리고 있다. 저성장·고령화에 접어들면서다. 경제성장기 때는 기업이 장기근속을 유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성장 침체기다. 여기에 정년 60세가 법제화되었다. ‘사업주와 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수는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문구를 법에 넣기는 했지만, 정년 연장이 법으로 확보된 상황에서 노조가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합의에 나설 유인이 많지 않다.

네 일 내 일 따지며 개인 성과에 매달릴라

정부가 나섰다. 이른바 ‘노동 개혁 4대 법안’ 추진이 어려워지고, 노사정 대타협도 한국노총이 파기한 상황에서 정부는 공공기관을 임금체계 개편 ‘솔선수범’의 주체로 삼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성과연봉제가 공공에서 시작해서 민간까지 잘 퍼져나간다면 아마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이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민간 기업으로 이어지는 정부발 노동 개혁 로드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임금피크제 도입 때도 공공기관을 ‘솔선수범’으로 삼았다. 하지만 연공급 임금체계를 개편해가는 것은 훨씬 장기적이고 기업별·직종별 특수성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연공성을 완화하는 대안이 꼭 성과연봉제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성과 측정을 정교하고 공정하게 만드는 데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노동사회학)는 “연공임금 체계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진단에는 동의한다. 연공임금 적용을 받는 사람들이 점점 소수가 되어가고, 다른 노동자들에게 다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도 성과주의가 유행했다가 단기 평가에 치우치면서 실패로 결론이 난 바 있다. 연공임금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바꿔나가는 정도가 현 단계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금전적 보상을 높이면 성과가 올라갈 것이라는 성과연봉제의 근본적 가정에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곽주원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부)는 “성과가 뭔지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택시 기사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노동이 미터기로 정확하게 측정되고 혼자 일한다. 하지만 여러 명이 같이 뭔가를 만들어낼 때는 누가 뭘 했는지 측정하기 어렵다. 더구나 공공기관은 정부 정책을 시행하고 집행하는 곳이다. 개개인의 성과를 관찰하기 어렵다. 그러면 결국 단기 성과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이번 공공기관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옥수역에 붙은 한 시민의 대자보.
실제로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성과 측정 방법에 대한 우려를 가장 많이 한다. 양승헌 보훈병원지부 서울지회장은 “진료 행위는 환자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협업이다. 축구 경기처럼 포지션에 맞게 각자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육상이나 스키처럼 평가를 하라는 것이다. 결국 불필요한 검사나 투약으로 환자를 쥐어짜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메르스 사태 이후 병원 수익이 급감했을 때 고혈압 당뇨 환자의 검사 주기를 단축하라는 지시가 공문으로 내려온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성과 평가는 또한 저성과자 퇴출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취업규칙 변경 지침과 함께 ‘공정인사 지침’을 내려 일반해고의 절차와 방법을 공표했다. 공공기관 버전의 ‘공정인사 지침’도 성과연봉제 권고안 발표 후 내놓았다. 정부는 둘이 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노동계가 성과연봉제를 ‘성과 퇴출제’로 부르는 이유다. 윤동석 국민연금지부 서울남부지회장은 “저성과자 퇴출 프로그램으로 논란이 되었던 KT처럼 될 거라고 생각한다. 노조의 반대로 기금 분리 시도를 막아냈는데, 이런 노조의 공적 감시활동도 해고 위협 때문에 어려워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성과연봉제의 일방적인 도입으로 공적 서비스 제공이라는 공공기관의 특수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나온다. 국민연금지부 윤동석 서울남부지회장은 “지금도 실적 평가를 한다. 국민연금에 가입할 자영업자가 땅을 판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닌데, 가입 실적 목표를 100%, 120%, 140%로 계속 늘린다. 징수율, 가입 실적으로 평가할 텐데, 생계형 체납자도 가혹하게 압류하게 될 것이다. 몇 년 전 그런 실적 압박으로 자살한 조합원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공적 서비스 분야에서 금전적 보상이 자칫 시민들의 안전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성묵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성북승무지부장은 “철도 노동에서 안전하게 운행하는 게 최고의 성과가 아닌가. 하루 120개 역을 정차하고 신호기만 몇천 개를 지난다. 차량 고장, 승객 상태, 선로반 직원 등 늘 변수가 있어서 긴장할 수밖에 없는데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아무래도 다른 요인을 신경 쓰게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10월14일까지 성과연봉제 반대 파업을 벌인 서울대병원 노조의 최원영 간호사는 “성과연봉제를 하게 되면 응급 상황에서 네 일 내 일 가리지 않고 환자를 위해 협력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우려는 파업 참가 노동자뿐 아니라 시민들도 공감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와 지난 5월 발생한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등으로 안전이 화두가 된 상황에서 공공부문에 성과연봉제가 도입될 경우 또다시 안전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이번 파업에는 이례적으로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대자보를 붙이며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급하게 도입하느라 근로기준법도 위반

대통령이 진두지휘한 속도전 과정에서 근로기준법 위반 논란도 불거졌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국민연금공단·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절반에 가까운 기관이 노사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한 것이다. 취업규칙이란 노동자가 직장에서 적용받는 근로조건이나 복무규율을 말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노조(노조가 없는 경우 과반수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불법 논란’에 대해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임금체계를 성과·직무급으로 바꿔야 된다는 시대 흐름, 고령자 고용촉진법에서 정년 60세를 의무화할 때 임금체계를 고치도록 노사에게 의무를 부여한 점 등을 감안했을 때 사회 통념상 합리성 이론이 적용될 수 있다.”

‘사회 통념상의 합리성’이 있을 경우 노동자 동의 없이도 불이익 변경이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례(2001년 두 재단법인이 합병하면서 근로조건 통일을 위해 취업규칙을 변경한 사건)가 근거였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바탕으로 한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을 발표해 노조 동의 없이 회사가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하지만 국회 입법조사처는 노동자 간 유불리 충돌이 존재하면 일반적으로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 즉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해 노조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석한다.

공공부문 노조들은 ‘불법 도입’에 소송으로 맞설 전망이다. 노·정 갈등이 격화되지만 정치권도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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