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뻗치기’는 기다림이다. 초년 기자 시절 취재 대부분은 뻗치기다. 비법? 없다.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지난주 〈시사IN〉 기자들도 뻗치기를 숱하게 했다. 이른 아침 출근길 집 앞에서, 퇴근길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모은 팩트 조각들이 이번 커버스토리에 담겼다. 뻗치기를 하며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취재원을 만났을 때가 아니다. 다른 언론사 기자가 나타나면 신경이 곤두선다. 이번에는 달랐다. 〈시사IN〉 기자들은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고 한다. 보수 신문 기자들을 만났기 때문이다.최순실씨가 큰일을 해냈다. 역대 대통령도 못한, 진보와 보수 성향 언론을 통합시켰다. 보수 신문까지 최순실·차은택 게이트 취재에 돌입했다. 이들 신문의 사설에도 날이 서 있다. 이 정도면 이번 게이트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시사IN〉 취재 결과 박 대통령이 2006년 면도칼 테러를 당했을 때도 최씨가 병실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은 한복을 전달한 이도 최순실씨라고 한다. 그 한복을 제작한 이는 김영석씨인데, 미르재단 이사가 되었다. 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들고 다닌 회색 가죽 가방, 2014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 때 들고 다닌 작은 손가방은 중소기업 빌로밀로 제품으로 보도되었다. 이 회사 사장은 최순실씨 측근 고영태씨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이 “아는 사이지만 절친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조사 수백 군데 가운데 콕 집어 최순실씨와 가까운 이가 만든 핸드백을 들고 다니고, 한복을 만든 이는 미르재단 이사가 되고, 최순실씨가 다니는 헬스클럽 강사가 청와대에 입성한 것이 모두 우연이란 말인가? 박 대통령이 수첩을 꺼내 최씨 모녀에게 불리한 조사를 한 문체부 공무원 2명을 꼭 집어 “나쁜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 역시 그저 우연이란 말인가?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언급했다. 검찰을 좌지우지하는 호위무사, 우병우 민정수석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우병우 수석은 물러나고 싶어도 물러나지 못한다. 그가 물러나는 순간 ‘검찰 리모트컨트롤’이 작동하지 않는다. 김수남 검찰총장 임기는 내년 12월1일까지다. 박 대통령 임기 안에 끝난다. 검찰 안에서도 김 총장이 역린을 건드릴 것이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역린을 건드렸다고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망신줘 쫓아낸 정부다. 검찰은 최순실·차은택 게이트를 어물쩍 덮고 수사하는 시늉만 할 것이다. 한 사람의 입학을 위해 대학이 쑥대밭이 되었듯, 검찰 조직이 망가지는 일도 감당할 것이다.

1997년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이 한보 비리 수사로 구속되며 말했다. “나는 바람이 불면 날아가는 깃털에 불과하다.” 검찰을 향해 몸통이 따로 있다는 항변이었다. 최순실씨와 차은택 감독은 깃털일까 몸통일까? 이제는 모두가 몸통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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