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4일 저녁 7시, 서울 마포구 하나투어 브이홀에서 ‘〈시사IN〉 인터뷰 쇼’가 열렸다. 주요 정치인을 초청해, 온·오프라인을 통해 취합한 독자들의 질문을 던지는 자리였다. 첫 번째 인터뷰이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섰다. 주진우·차형석 기자가 독자들의 질문을 ‘배달’했다. 11월2일 두 번째 인터뷰이로 안희정 충청남도 도지사가 나설 예정이다.

박 시장의 유머 있는 답변에 두 시간 동안 행사장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인터뷰 쇼를 재구성해 지면에 중계한다.
 

ⓒ시사IN 윤무영박원순 서울시장(가운데)은 영국 〈가디언〉이 선정한 ‘세계 5대 혁신 시장’으로, 일본 NHK가 선정한 ‘개성파 시장 4인’으로 꼽혔다.

‘내 인생의 사진’으로 세 장을 꼽았는데.

첫 번째는 조영래 변호사의 사진이다. 나와 10년가량 차이 나는 선배다. 이분을 만나면서 인생 망쳤다(웃음). 조 변호사와 인권 변론을 같이했다.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망원동 수재 사건 등 이분이 손을 대면 세상이 한 차원씩 바뀌었다. 두 번째는 1998년 참여연대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액주주 운동을 할 때 사진이다. 지금 경제민주화를 말하는데, 제가 경제민주화의 원조다(웃음). 소액주주 운동을 할 때 가장 긴 시간 주주총회를 열게 한 걸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세 번째는 시장 선거 포스터다. 이때 무소속 10번이었다. 꼭 영화 포스터 같죠? 저 포스터 속 할아버지는 전북 임실에 살던 분이다. 나중에 그 가족들을 만났는데 저분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분 유족들이 저 선거 포스터를 좋아했다. 다음 포스터도 여러분을 행복하게 할 그런 포스터를 만들겠다.

오늘(10월24일)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주장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참 나쁜 대통령이죠. 국민이 불행한 거죠. 여기까진 제 말이 아닌 거 아시죠?  그야말로 이번 개헌 주장은 ‘최순실발 개헌’이다. 정권의 위기, 부도덕한 권력 비리를 덮으려는 음모라고 생각한다.

 

 


어제(10월23일) 백남기 농민 빈소에 다녀온 걸로 안다.

부검이 아니라 특검이 필요하다. 검사로 재직할 때 수많은 부검을 했다. 확실한 건 사인이 불분명한 변사체의 경우에만 부검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남기 농민 사건은 사인이 분명하지 않나. 그런데 왜 부검을 하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화제였다. 박원순 시장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미운털이 박힌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좀 미안해하려고 했는데… 거기에 해당되지 않은 예술가들이 ‘나도 블랙리스트에 넣어주세요’ 하는 운동을 하더라. 그러니 그 리스트에 들어가는 건 영광이잖나?(웃음) 저도 마찬가지다. 제가 ‘대통령 탄핵’을 주장했더니 새누리당 쪽에서 진짜 탄핵돼야 할 대상은 나라고 한다. 그래서 영광이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불의한 권력한테 탄핵당하는 것은 영광이지 않나요?(웃음)

 

ⓒ서울시 제공참여연대 소액주주 운동

 

시장이 되어서 ‘이것만은 내가 다른 시장들보다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다른 시장과 어떻게 비교를 하십니까?(웃음) 아까 듣도 보도 못한 정치라고 말했는데 저는 마찬가지로 ‘듣도 보도 못한 행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저한테 왜 폼 나는 큰 거 한 방 안 하느냐고 압력을 준다. 누구처럼, 청계천 하듯이. 저는 처음부터 ‘서울시장이라는 자리는 시민의 꿈을 이뤄드리는 자리이지 자신의 꿈을 이루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은 사람이 중심인 도시다. 지난 5년 동안 토건으로부터 사람 중심 도시로 명백한 전환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채무를 7조6000억원 줄였고 복지 예산으로 4조를 더 늘려 지금 8조3000억원이다. 내년에는 복지 예산이 더 늘어난다. 큰 변화 아닌가요?(관객 박수) 영국 〈가디언〉에서 세계 5대 혁신 시장으로 저를 선정했다. 그중 현직 시장은 저밖에 없어요(관객 박수). 일본 NHK도 개성파 시장 4인 중 한 명으로 나를 뽑았다.

기본소득 지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청년수당을 말하는 거라면, 대법원에 제소 중인데 서울시가 이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기면 곧바로 지급할 거다. 기본소득은 조금 다른 문제다. 복지는 강화하고 보편적 복지가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간다. 여러 고민이 필요하다.

요즘 헬조선이라는 용어를 흔히 쓰는데, 이 단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힘들어하는 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우리 사회는 99대1의 사회다. 불평등이 심각하다. 소득·보건 의료·교육의 불평등이 심하고 신분 이동의 불평등까지 심해졌다. 사회적 신분이 세습되는 상황이다. 이게 헬조선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렇다고 여기에 절망하고 이민 가고 하면 되겠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리츠 교수를 만났다. 그분을 만나기 전에 그의 저서 〈불평등의 대가〉를 빨간 줄을 그어가면서 읽었다. 늘 줄을 긋기 위해 자를 갖고 다닌다(양복 주머니에서 자를 꺼내며, 위 사진). 이 책에 시장의 실패, 자본주의의 실패가 결국 정치의 실패라고 나온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바보야, 진짜 문제는 정치야’라고. 여러분, 손가락 운동 잘 하십시오. 엉뚱한 데 찍지 마시라는 겁니다.

 

 

 

조영래 변호사

 

 

‘저(한 독자)는 싱글 라이프를 즐기지만 언제 결혼하느냐’는 이야기를 듣는다.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지금 사회가,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주지 못하고 있다. 결혼하고 싶어지도록,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정부가 공공의 영역에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만 해도 홀로 사는 사람이 24%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문제다. 보조금 얼마 준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희망이 있는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제가 청년수당 제공하고 복지를 늘리니까 중앙정부가 이를 막을 뿐만 아니라 그걸 뭐라고 했나? ‘악마의 유혹’이라고 매도했다. 그러고 나서는 나중에 따라 한다. 서울시가 뭐만 하면 중앙정부가 반대하고 욕하다가 나중에 따라 합니다. 이런 정부 없어요, 세상에(웃음).

개인적 질문이다. 어렸을 때 꿈은?

어린 시절 루팡, 홈스 등 추리소설에 몰두했다. 탐정이 되는 게 제일 큰 꿈이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하고 싶은 꿈이 많아졌다. 시인이 꿈이기도 했다. 그때 적어둔 걸 보니 정치가도 있더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결국 됐네요.

왜 검사의 길을 그만두었는지?

사람 잡아넣는 게 뭐 그리 좋은 일인가. 대구지검 검사였는데 유치장 감찰을 가보니까, 경찰서장이 지역에 골치 아픈 사람들이 있어서 서울에 못 가게 막고 있다는 거다. 김영삼 야당 총재가 서울에서 단식할 때였다. 그런데 나는 그때서야 단식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둑 잡느라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몰랐던 거다. 안 되겠다 싶어서 그만두었다.

대선에 관한 질문이 가장 많았다. 대선 출마 공식 선언은 언제 하나?

선언을 해야 아나요?(관객 박수). 박수 치는 거 보세요. 맡겨줘 보세요(웃음). 농담인 거 아시죠. 일단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야죠. ‘대통령은 원칙을 말하고 시장은 쓰레기를 줍는다’는 도시학자의 말이 있다. 시장이라는 직책은 시민들의 삶을 잘 챙기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동안 시대가 요구하는 일을 해왔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면 인권변호사로, 새로운 사회개혁이 필요할 때는 재벌개혁 운동을 했고, 통합과 나눔의 문화가 필요할 때는 아름다운재단을 만들었고, 새로운 경제적 대안이 필요할 때 아름다운가게를 만들었다.
 

ⓒ서울시 제공서울시장 선거 포스터

지금은 뭘 원하는 사회 같은가?

지금 대한민국은 절망적인 상태다. 우리 시대의 국가가 백척간두에 서 있는 위기의 시대다. 국민들이 다 절망하고 계신다. 국민을 위해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게 중요하고, 동시에 정말 실천을 하고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헬조선의 대통령이 되어 있다면 가장 절실하게 하고 싶은 것 세 가지만 말씀해주십시오.

집을 새로 짓는 기분으로 사회의 기틀을 바꿔내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난해가 해방·광복 70주년이었다. 까딱하다가는 100년을 지나게 생겼다. 우리가 분단의 한 세기를 지날 순 없지 않나? 독일의 주요 인사를 인터뷰하면서 독일어로 한 문장을 외웠다.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은 가능하다’는 문장이다. 동시대인으로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세상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저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장으로 재선을 했다. 만약 더 큰 꿈을 꾼다면 자신은 있나?

다 알면서 물어요?(웃음) 국무회의도 참여하는데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 제가 참을 인(忍)자를 많이 새겼다. 서울시장을 하면서 다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시 5년을 시작하면 이렇게 할걸 싶은 것도 많다. 민주정부를 두 번 거쳤다.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을 한발 앞당겼고,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 원칙을 지키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우리의 가장 큰 화두인 99대1의 사회는 강화되었다. 어떤 꿈·이념·원칙의 발현과 그 원칙과 이념하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국정을 빈틈없이 처리해낼 수 있는 그런 솜씨를 향후 정부가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정권을 교체하고, 이뿐 아니라 바른 정치세력, 정의의 세력이 정권을 계속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시사IN 윤무영박원순 서울시장(맨 오른쪽)과 함께한 ‘〈시사IN〉 인터뷰 쇼’가 진행되는 동안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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