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이번 선거자금 규모가 역대 최고를 경신했다”라는 기사가 나온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연방 상원과 하원 선거에 후보자·정당 그리고 이익집단이 쓴 돈은 총 40억 달러(약 4조5600억원), 대통령 선거에 쓴 돈은 2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대선 경선 기간에 6억 달러 이상을 모금했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도 4억 달러 이상을 거둬들였다.

이렇게 선거 한 번 치르는 데 돈을 어마어마하게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거에 쓰는 돈은 전체 미국 정치자금의 일부에 불과하다. 미국 이익집단들은 선거자금을 기부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또 미국에서는 합법인 로비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정책에 반영하려 한다. 연방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 자금 규모가 한 해에 30억 달러가 넘고 등록된 로비스트만 1만2000명에 이른다. 미국 50개 주정부 차원에서도 로비 활동이 이루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로비 산업의 규모는 훨씬 크다.
 

ⓒAFP10월20일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자들이 미셸 오바마의 연설을 들으며 환호하고 있다.

49쪽 표를 보면 “돈이 표와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표와 정책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여러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연방 선거든 지방 선거든 한 번이라도 정치자금을 기부한 적이 있는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10% 미만이다. 대부분이 200달러 이하의 소액 기부자들이다. 2016년 선거 기준으로 미국 인구 3억2000만명 중에서 200달러 이상을 기부한 사람은 140만명, 전체 인구의 0.44%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0.44%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기부한 돈은 모든 개인 기부자들이 낸 돈의 70%가 넘는다. 2014년 선거 때 미국 인구의 0.1%에 해당하는 기부자 3만1976명이 낸 후원금 총합이 12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2014년 선거 기간에 모인 총 모금액의 29%에 해당한다. 미식축구 경기장 관람석의 3분의 1밖에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체 선거에 든 돈의 3분의 1 가까이를 기부한 셈이다.

이 0.1% 기부자들의 76%가 남성이다. 주로 금융·보험 그리고 부동산업에 종사한다. 0.1% 기부자들이 일하는 회사를 보면 골드먼삭스가 가장 많았고, 뱅크오브아메리카·AT&T·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구글과 같은 회사들이 뒤를 이었다. 거주 지역은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시카고, 그리고 워싱턴 D.C. 같은 대도시였다. 대부분 자신이 지지하는 한 정당에만 돈을 기부했다. 2016년 선거 기준으로 현재까지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한 개인은 헤지펀드 매니저이자 환경운동가인 토머스 스타이어다. 그는 총 5700만 달러를 모두 민주당이나 민주당 소속 후보에게 기부했다. 2위는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재벌인 셸던 애덜슨. 총 4700만 달러를 모두 공화당 후보에게 냈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이나 이익단체도 정치행동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 :PAC)를 만들어 후보자나 정당에 돈을 기부할 수 있다. 10월28일 현재 미국부동산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Realtors:NAR)의 정치행동위원회가 총 430만 달러를 기부해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뒤를 미국맥주도매협회(National Beer Wholesalers Associ-ation), 통신회사인 AT&T가 잇고 있다.
 

ⓒAP Photo10월25일 플로리다 주 샌퍼드 유세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자들이 응원 피켓을 들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언론은 정치자금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 스티븐 앤솔라비히어 교수는 2003년 공저자들과 함께 이런 만연한 믿음에 도전장을 내미는 논문을 발표했다. 제목은 ‘왜 미국 정치에 돈이 이렇게 없을까(Why Is There So Little Money in U.S. Politics?)’였다. 저자들은 선거자금 후원을, 대가를 바라는 정치적인 투자로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비판한다. 비판의 근거는 이렇다. 2000년 기준으로 후보자·정당 그리고 모든 조직이 선거에서 모으고 쓴 돈이 30억 달러인데 미국 연방정부의 지출은 2조 달러에 달했다. 만약 선거자금이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이 맞는다면, 미국 정부가 집행하는 거대한 예산에 비해 선거에 쓴 돈이 턱없이 적다는 것이 이들이 주장이다. 예를 들어 국방 관련 회사나 개인이 2000년 선거에서 후보자에게 기부한 총액은 1320만 달러이다. 2000년에 미국 정부가 방위 관련 조달품 계약에 쓴 돈은 1340억 달러로 기부금의 1만 배가 넘는다. 이권의 규모를 생각하면 훨씬 더 많은 돈이 정치에 투입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많은 기업이나 개인이 법에 정해진 최고 한도까지 기부금을 내지 않는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이들은 선거자금 기부를 자선단체에 돈을 내는 후원금과 비슷한 성격의 ‘소비’로 규정한다. 개인 기부자 대부분은 200달러 이하의 소액을 후원한다. 저자들은 소액 기부자들이 정치인이나 정부로부터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본다. 소액 기부자들이 기부 행위 그 자체에서 효용을 얻는다는 것이다.

소비로서의 기부 이론이 소액 기부자에게는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0.1%의 고액 기부자들이 전체 기부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내는 금액이 후보자들이 걷는 전체 모금액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선거자금이 실제로 정치인들이 당선된 뒤 법안 투표 행태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이 지속됐다.
 

ⓒAP Photo올해 미국 선거자금 기부자 순위 1·2위인 억만장자 환경운동가 토머스 스타이어(왼쪽)와 카지노 재벌 셸던 애덜슨(오른
쪽).

정말로 선거자금이 법안이나 의안 투표에 영향을 미칠까? 실제 데이터를 보면 국회의원들의 후원금과 투표 성향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었다. 후원을 받는 기업과 관련한 법안이 올라왔을 때 친기업적인 투표 행태를 보였다. 하지만 이 상관관계가 “받은 돈 때문에 기부자의 편의를 봐주는 쪽으로 표를 행사했다”라는 인과관계를 증명하기에도 충분할까? 예를 들어 석유 관련 기업들로부터 많은 돈을 받은 의원이 석유 산업에 대한 규제를 줄이자는 법안에 찬성했다고 가정하자. 이 의원이 관련 기업으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았기 때문에 석유 산업에 유리한 법안에 찬성한 것일까? 석유 기업들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지 않았더라도 찬성표를 던졌을 가능성은 없을까?

선거에 쓰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이 로비에

만약 표를 돈으로 사려면 사안이나 법안에 대해 찬성 혹은 반대할 확률이 50%인 ‘부동층 의원’을 후원해 표를 끌어와야 한다. 하지만 정치학과 경제학의 많은 연구에 따르면 이익집단은 원래 자신들과 의견이 같은 의원들을 후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원이 법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 기부금이나 선거자금 때문인지, 아니면 의원의 소신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다. 즉, 선거자금과 의원의 투표 행태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혀내기란 어렵다. 선거자금과 투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들은 일관된 결과가 아니라 어떨 때는 선거자금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다른 때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물론 선거자금이 투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의 투표는 시민에게 공개되고 기록에 남는 매우 공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오히려 돈의 영향력이 가장 적은 영역일 수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돈이 표를 사는 것이 아니라 의원들의 ‘시간’을 산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Richard Hall and Frank Wayman, 1990, 〈Buying Time:Moneyed Interests and the Mobilization of Bias in Congressional Committee〉). 의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년간의 회기 동안 1만 개 넘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된다. 이 가운데 법으로 제정되는 법안은 고작 2%이고 80% 이상의 법안은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어보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법안이 주목을 받고 본회의까지 올라가는지 의원들이 결정한다. 선거자금을 기부하는 것은 의정 활동으로 바쁜 의원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의 시간을 확보해 정책적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선거가 끝난다고 해서 이익집단의 역할이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 뒤에도 로비를 통해 기업이나 병원, 대학과 같은 다양한 단체들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기업의 경우 로비 활동에 쓰는 비용이 선거자금으로 기부하는 금액의 10배가 넘을 정도다. 미국 의회는 1995년 로비활동 공개 법안(Lobbying Disclosure Act)을 통과시켜 로비 활동을 규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로비스트들은 분기별로 얼마를 썼고 어떤 법안에 대해 로비했는지를 상세하게 기술한 리포트를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 로비 리포트를 바탕으로 살펴보면 1998~2016년 로비 활동에 가장 많은 돈을 쓴 조직은 미국 상공회의소(US Chamber of Commerce)로 총 12억 달러를 썼다. 올 한 해에만 미국 상공회의소는 5200만 달러를 로비 활동에 썼다. 산업 분야별로 살펴보면 제약·보험·전자 분야의 기업들이 가장 활발하게 로비 활동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IT 기업들도 로비스트를 고용하거나 워싱턴 D.C.에 사무실을 열어 정부의 IT 정책이나 이민자 관련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병원, 그리고 지역 정부와 같은 기관들도 로비스트를 고용해 많은 돈을 쓴다.

이렇게 큰돈이 쓰이는 로비 활동이 실제로도 정책에 영향을 미칠까? 최근 정치학과 경제학에서는 로비 활동의 영향력을 측정하려는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선거자금 기부가 의원들의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지 엄밀하게 보여주는 것이 어렵듯, 로비 활동의 효과를 수치로 증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로비 활동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기업을 보면 각 산업 분야에서 기업 규모가 크고 가장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이다. 예를 들어 제약회사 화이자(Pfizer Inc)는 2015년 한 해에만 9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로비에 썼고, 동시에 미국 정부로부터 많은 제약 관련 특허를 받았다. 화이자가 다른 제약회사보다 더 많은 특허를 받은 이유가 로비 활동에 돈을 더 많이 쓴 덕분일까? 화이자는 기업의 규모가 크고 연구 개발에 투자하는 비중도 원래 높은 기업이기에 로비 활동 없이도 특허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기업의 성과를 두고 그 원인을 로비 여부에서만 찾기 힘든 이유다. 물론 최근 계량경제학에서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로비 활동에 쓰인 돈이 실제로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Karam Kang, 2016, 〈Policy Influence and Private Returns from Lobbying in the Energy Sector〉).
 

정치자금과 의정 활동, 정부 정책의 인과관계를 엄밀하게 밝히는 것은 어렵다고 해도, 소수 백만장자가 낸 돈이 개인 선거자금 기부 총액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몇몇 대기업이나 단체가 압도적으로 많은 돈을 로비 활동에 쓰는 상황은 그 자체로 우려스럽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1인 1표다. 사람들의 의견과 목소리가 정책 결정자에게 공정하게 전달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미국과 같이 후보자가 직접 선거자금을 모아야 하고, 사실상 기업이나 개인이 선거에 쓸 수 있는 돈에 제한을 없앤 2010년 대법원의 ‘시티즌스 유나이티드(Citizens United) 판결’ 이후 정치에 참여하고 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도는 개인의 경제력에 좌우되었다. 이번 대선에서도 후보자들이 거둬들인 선거자금이 12억 달러이고 주로 억만장자들이 기부자인 슈퍼팩(Super PAC:후보자에게 직접 기부를 할 수는 없지만, 금액 제한 없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정치행동위원회. 2010년 대법원이 “돈을 쓰는 것도 자유로운 의사 개진 활동으로 봐야 한다- Money is speech”라는 시티즌스 유나이티드 판결을 내린 뒤 생겨났다)이 거둬들인 금액만 후보자 모금액의 절반인 6억 달러에 해당한다.

이번 대선 후보자들이 돈의 압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집권 뒤 이들이 펴는 정책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더 정확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유혜영 (밴더빌트 대학 교수·정치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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