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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가 미국 대선 결과를 주목하는 이유

2016년 11월 07일(월) 제477호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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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스트리트 규제가 미국 대선의 뜨거운 쟁점이다. 대체로 트럼프가 월스트리트와 가깝게 지냈던 클린턴을 공격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트럼프의 금융정책이 그리 개혁적이지도 않다.

한국의 각종 선거에서 금융 문제는 주요한 정치 쟁점이 아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2016 미국 대선’에서는 월스트리트(미국 금융산업)와 중앙은행(Fed:연방준비제도)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전개되었다. 2011년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전역에서 터져나온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 시민 가운데 상당수는 월스트리트를 세계 금융위기와 이후의 경기침체 장기화, 빈부 격차 등의 원흉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초대형 금융복합체들은 위기 이후에도 오히려 덩치를 더욱 키우며 승승장구해왔다.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정책을 주도하면서 미국 경제를 이럭저럭 유지해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초저금리로 인해 경제 전반의 리스크가 증폭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금융 관련 쟁점을 살펴본다.

ⓒAFP
트럼프(왼쪽)와 클린턴 두 후보 모두 월스트리트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연방준비제도 개혁


공화당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초저금리 정책(양적완화)을 줄곧 비난해왔다. 극단적 인플레이션의 위험성이 큰 데다 미국의 경제성장까지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 트럼프 후보는 사업가 출신이라 그런지 저금리에 별로 불만이 없다. 물론 지난 9월, 연준이 예상과 달리 기준금리를 유지하자 “(금리 인상으로 경기가 가라앉으면 집권 여당에 불리하니까) 클린턴을 위해 금리를 올리지 않았다”라고 정치 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나는 연준의 적이 아니고 재닛 옐런 의장이 나쁜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아. 인플레이션이 그 추악한 고개를 들지 않는 한, 저금리 쪽의 사람이야”라고 말할 정도다. 당선되면 연준 의장을 교체하겠다고 했지만, 그 이유는 통화정책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단지 “공화당 사람을 의장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중앙은행 제도와 통화정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역시 연준의 금리(통화)정책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다만 연준의 지배구조에 대해 상당히 급진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버니 샌더스와 민주당 내 좌파들로부터 적잖은 압박을 받은 듯하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12개 주(州) 연방은행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주 연방은행을 지배하는 이사회는 주로 ‘백인 남성 은행가’들로 구성된다.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이 가난한 사람과 소수 인종, 금융 이외 산업(제조업) 등의 이익을 소외시킨다는 비판이 강하다. 클린턴은 “주 연방은행의 이사회에서 은행가들을 제한하는, ‘상식적 개혁’이 너무 오래 지체되어왔다”라고 주장한다. 금융산업이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하겠다는 이야기다.

헤지·사모펀드 및 초국적 기업의 탈세 방지

클린턴과 트럼프는 둘 다 초국적 기업들과 헤지·사모펀드들의 교묘한 탈·절세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먼저 헤지·사모펀드의 ‘성과 보수(carried interest)’에 대한 세금을 제대로 받아낼 계획이다. 미국의 펀드매니저들은 일반적으로 투자금의 1~2%를 ‘운용 수수료(management fee)로 받는다. 그런데 해당 투자가 약속한 수준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경우에는, 업체마다 다르지만 초과분의 20~40%를 ‘성과 보수’라는 명목으로 따로 받는다. 월스트리트에 억만장자들이 즐비한 이유다.

ⓒReuters
10월14일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경제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완화적 통화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현행 세금제도에 따르면, 펀드매니저들이 받는 운용 수수료는 ‘일반 소득’으로 분류된다. 세율은 39.6%. 그런데 성과 보수는 ‘자본소득(capital gains)’으로 간주되어 세율 23.8%가 적용될 뿐이다. 자본소득이란,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했다가 그 가치가 오르면 되팔아 거두는 차익이다. 일해서 버는 돈(일반 소득)보다 매매차익(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이 더 낮은 것은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래서 두 후보는 헤지·사모펀드들의 성과 보수를 자본소득이 아니라 일반 소득으로 분류해서 세율을 높이기로 했다. 다만 트럼프가 당선되는 경우, 공약을 이행한다고 해도 헤지·사모펀드 운영자들이 지금보다 많은 세금을 내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소득세율 자체가 대폭 인하될 것이기 때문이다(50~53쪽 기사 참조).

또한 클린턴과 트럼프는 기업들이 절세 목적으로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인버전(inver sion)’을 차단하겠다고 공약했다. 미국의 법정 법인세율은 35%로 OECD 국가 중에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이 저세율 국가인 아일랜드(12.6%) 같은 나라의 작은 회사와 합병한 뒤 이 합병 회사를 본사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왔다. 이 경우, 당초 본사였던 미국의 기업은 아일랜드 본사의 자회사로 역전(인버전)된다.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의 국적까지 바꾸는 방법이다. 인버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업가치 평가, 합병, 분사(分社) 등은 금융공학적 기술이 필요한 절차들이다. 그동안 인버전은 월스트리트 금융업체들에게 각광받는 수입원이었다.

분기별 자본주의


2016 미국 대선에서 가장 놀라운 광경 중 하나는 아마, ‘월스트리트의 대변인’ 클린턴이 미국 경제의 금융자본주의(금융 부문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적 구조를 격렬하게 공격한 모습일 터이다. 미국은 투자자(금융)의 힘이 기업 경영자보다 훨씬 강한 나라다. 투자자(주로 금융기관)들은 경영자에게 빠른 시일 안에 큰 수익을 배당금으로 돌려주거나 주가를 올리라고 압박한다. 고(故) 스티브 잡스 같은 괴팍한 인물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경영자들은 이런 압박에 굴복하고 만다. 재벌 일가가 경영자인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금융자본주의적 현상이지만, 여기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경영자들이 사내에 축적된 돈을 연구개발(R&D), 고용, 노동자 기술 교육 등 오랜 시간 뒤에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부문에 투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차라리 자사주를 매입해서 소각해버리는 방식으로 주가를 올리거나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듬뿍 나눠주는 것이 낫다.

이처럼 힘센 주주(금융기관)들로 인해, 기업들이 ‘단기 성과’에 매몰되면서 기술·고용 등에 대한 ‘장기 투자’를 삼가고, 이에 따라 실물경제 전반이 침체되는 현상을, 클린턴은 ‘분기별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발전한 분기별 자본주의는 경제적으로 건전하지 않다. 이 시스템은 기업 측은 물론 임금과 경제 전반에 해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따라 클린턴은, 투자자들이 ‘빨리 수익을 토해내라’고 경영자를 압박하는 대신, 장기 투자를 하면 큰 폭의 세제 혜택을 주는 방법으로 미국 기업들의 ‘장기 경영’을 촉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특별히 발언한 적이 없다.

금융 개혁:도드-프랭크법 폐지 논란

트럼프는 월스트리트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발언을 해왔다. “나는 월스트리트와 그쪽 사람들을 잘 안다. 월스트리트가 끼친 해악은 무시무시할 정도다. 당선되면 월스트리트가 제멋대로 설치도록 놔두지 않겠다.” 그러나 이런 발언마저 ‘월스트리트의 대변인’ 이미지가 강한 클린턴에 대한 정치 공세적인 측면이 크다. “클린턴은 절대 월스트리트를 개혁할 수 없다. 그녀는 월스트리트의 소유물이니까….”

이런 트럼프가 비교적 강력한 금융산업 규제 장치인 도드-프랭크법(2010년 제정)에 대해서는 일관되고 단호하게 ‘폐지’를 공약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금융감독 당국의 과도한 권한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시민들에게 돈을 빌려줄 수 없어서”라고 한다. 다만 규제를 완화하면서 ‘어떻게 월스트리트가 제멋대로 설칠 수 없게 할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트럼프의 종잡을 수 없는 견해는, 특유의 반국가·반규제적 성향 때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트럼프는 초국적 거대 금융기관인 JP모건의 제임스 다이먼 회장을 ‘미국 최악의 은행가’로 지칭한 바 있다. 그 이유는 JP모건이 세계 금융위기의 원흉 중 하나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에 대한 JP모건의 책임을 물어 130억 달러 규모의 ‘징벌적 합의금’을 부과했는데, 다이먼 회장이 순순히 내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금융 규제 ‘글래스-스티걸법’ 부활할까?

지난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당 강령에는, 도드-프랭크법보다 훨씬 강력한 규제 장치인 ‘글래스-스티걸법(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부활’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트럼프는 전당대회 이후 글래스-스티걸법에 대해 언급한 바 없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트럼프 운동본부 측 간부는 “클린턴과 트럼프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기 위해 채택한 항목”이라고 말했다. 클린턴의 남편인 빌 클린턴은 글래스-스티걸법을 폐지한 주인공이다.

클린턴은 도드-프랭크법을 일관되게 옹호하며, 금융 규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다시는 월스트리트가 ‘메인 스트리트(실물경제)’를 위협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월스트리트에 고삐를 조이기 위해 싸우겠다.” 클린턴은 대형 금융기관 임원들의 보수를 일정한 한도 내에 묶을 뿐 아니라 극초단타 매매(high frequency trading:대형 금융기관들이 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해 일반 시민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주식을 사고파는 시스템)까지 규제하겠다고 공약했다. 또한 금융기관이 사고를 쳐서 벌금을 징수당하는 경우, 경영자 개인도 벌금 중 일부를 부담하거나 투옥시키도록 강제하는 법안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은행도 대마불사일 수 없고, 어떤 개인도 감옥에 가지 않을 만큼 특별하지는 않다(No bank is too big to fail, and no individual is too big to jail).”

문제는 클린턴이 미국 정계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월스트리트 인사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온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클린턴이 국무장관 퇴임 이후 월스트리트 금융기관들에서 받은 강연료만 410만 달러(약 46억5000만원)에 이른다. 특히 ‘위키리크스’가 지난 10월8일 폭로한 클린턴의 금융기관 강연문들을 살펴보면 클린턴의 금융개혁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클린턴은 2013년 10월 말, 골드먼삭스 관계자들에게 세 차례에 걸쳐 강연했다. 강연료는 1회당 22만5000달러(약 2억5000만원)였다. 그의 강연 내용에 “월스트리트에 고삐를 매기 위해 싸우는” 투사의 면모는 없다. 오히려 “당신들은(골드먼삭스 임원) 다른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곳을 본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발명한다. 세상은, 당신들처럼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편견을 가지기 마련이다”라며 월스트리트를 찬탄하고 있다. 심지어 민주당이 주도한 도드-프랭크법에 대해 ‘미안하다’는 기색까지 보였다. “(도드-프랭크법을 통과시킨 것은) ‘정치적 이유’에서다. 만약 당신이 의원인데, 지역구 주민들이 직장을 잃거나 폐업하는 데다 언론은 ‘모든 것이 월스트리트 때문’이라고 떠든다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될까?” 도드-프랭크법이 적절한 제도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the jury is still out)”라고 말했다. 특히 “특정 산업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그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라고 강조했다. 금융기관들이 스스로를 직접 규제해야 마땅하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그렇게 했다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다는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힐러리 클린턴에 대해 “월스트리트의 문제점을 교정하기 어려운 인물”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구화 및 월스트리트에 친화적인 <뉴욕 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폭로된 연설문을 읽고 나서 “클린턴이 오늘날의 미국에 필요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라고 쓴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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