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21일 새벽,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구타 지역. 주민이 모두 잠든 그 시각, 민간인 주택과 골목길에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들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은 공식적으로 1300여 명, 시리아 현지 활동가들의 집계로는 1700여 명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그날 학살극의 범인은 치사율이 청산가리의 26배인 사린 화학무기였다. 잠자듯 조용히 누운 어린이 시신 수십 구의 사진이 페이스북과 유튜브 계정에 올라왔다.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시리아에서 유일하게 화학무기를 보유한 집단인 정부가 의심을 받았다. 시리아 정부는 사건이 터진 8월21일 오전 국영방송을 통해 화학무기 사용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세계 여론은 ‘시리아 정부 축출’ 쪽으로 기울었다. 미국의 대공습이 예견되었다.

ⓒAP Photo2013년 8월 다마스쿠스 인근 구타 지역의 사린 화학무기 공격으로 희생된 어린이들. 이 공격으로 1300~1700명이 사망했다.
공습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인권단체와 남미 국가 등이 이라크 공습과 비슷한 비극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금식 기도에 나서며 시리아 공습을 반대했다. 결국 미국과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우방인 러시아가 시리아의 화학무기 폐기를 위한 기본 원칙에 합의했다. 두 나라의 압력으로 2013년 OPCW(화학무기 금지기구)에 가입한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은 겨자가스를 포함해 화학무기 1300t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폭격 계획을 접었다.

1년 뒤 2014년 9월2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 전면 공습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시리아 정부가 아닌 IS(이슬람국가)가 타깃이었다. 현존하는 최강의 공군력이 출동한 첫날에만 IS 조직원 70여 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부상했다. 그럼에도 시리아 반군인 자유시리아군(FSA)의 불만이 폭주했다. 자유시리아군의 한 장교는 “미국의 공습이 정밀하지 않아서 IS뿐만 아니라 우리 반군도 타격을 입었다. 우리 군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한 공중폭격은 미친 짓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으로서는 탈영병 집단인 자유시리아군과 정보를 공유할 수는 없었다.

공습은 엄청났다. IS의 수도 라카에 거주하던 주민 이브라힘 씨(33)는 “마치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어디 피할 데가 없었다. 사람들이 불을 보는 순간 몸이 조각났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요세프 씨(51)는 “어차피 할 공습이었다면 1년 전에 했어야 했다. 그러면 전쟁이라도 끝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공습으로 IS 세력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2014년 9월부터 2015년 말까지 이라크와 시리아 등지에서 IS 대원 2만여 명이 폭사했다. 미국 국방부는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장악한 지역의 20∼30%를 잃은 것으로 추정한다. IS 지도부 핵심 인사들도 잇달아 죽었다. IS의 2인자이자 대변인이었던 아부 무함마드 알아드나니, 고문과 처형 장면을 담은 IS 선전 영상을 제작해 ‘닥터 와일’로 불리며 유명해진 정보장관 와일 아딜 하산 살만 알파야드도 폭격을 당했다. IS의 일인자 알바그다디의 사망설도 돌았다. IS 수도 라카에 있던 지도본부는 와해되다시피 했다. 전직 IS 전사였던 익명의 시리아 피난민은 “한때는 20여 개나 되던 전사훈련 캠프가 2~3개로 줄었다”라고 말했다.

ⓒThe Telegraph 화면 갈무리2014년 1월,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 다라야 지역에 ‘통폭탄’이 떨어져 폭발하는 모습.
내전이 길어지자 시리아 공군은 폭탄이 부족해 임시방편으로 ‘통폭탄(barrel bomb)’을 만들었다. 흔한 드럼통에 화약과 뇌관을 장착하고 그 안에 못이나 볼트 등 파편을 채운 원시적인 폭탄이다. 그 폭탄을 헬기나 전투기에 싣고 가다 불을 붙여 떨어뜨렸다. 담뱃불로 불을 붙이기도 했다. 볼썽사나운 이 폭탄은 화력이 어마어마하다. 반경 1㎞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자잘한 파편이 사람의 몸을 갈기갈기 찢는다. 원가에 비해 화력이 엄청나 시리아 공군은 거의 모든 공습을 통폭탄에 의존한다. 공중에서 대충 눈대중으로 떨어뜨린다. 당연히 명중률이 떨어진다. 민간인 거주 지역에서 무고한 인명을 무수히 살상했다.

알레포의 M10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 모하메드 씨는 주로 통폭탄에 부상당한 환자를 치료했다. 그는 멀리서 통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 바로 수술 준비에 들어간다. 사지가 찢긴 부상자가 금방 밀려오기 때문이다. 환자 대부분이 민간인인데 병원에 왔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부상당한 환자의 70% 이상이 죽는다. 그만큼 통폭탄은 치명적이다.

ⓒAFP10월4일 알레포 시에서 민간인 구조대 ‘하얀 헬멧’ 대원이 정부군 공습으로 희생된 아이를 안고 있다.
통폭탄 같은 비인간적인 무기를 사용하는 이면에는 심리전 효과를 노린 꼼수가 있다. 정부군의 위력을 보여주고 반군이 민간인과 소통할 여지를 막기 위해서다. 시리아 정부의 타깃은 IS가 아니다. 정부에 반기를 들고 탈영까지 한 반군이다. 반군이 민간인 지역에 거점을 마련해 민간인 피해가 늘어난다고 떠들어댄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서구 매체와 인터뷰할 때마다 ‘통폭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공식적으로 시리아 정부는 통폭탄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같은 SNS 세상에서 이런 막무가내 해명이 통할 리 없다. 유튜브에 속속 올라오는 영상은 시리아 정부군 헬기에서 통폭탄이 떨어지는 장면을 분명히 보여준다. 알레포 인근 마을에 사는 어린이 함자(10)는 “저는 헬리콥터 소리만 들어도 정부 군인이 통폭탄을 떨어뜨린다는 걸 알아요. 무서워요”라고 말했다. 코흘리개도 아는 일을 알아사드 정부는 모른 척한다. 시리아 정부군은 병원까지도 폭격했다. 2015년 11월 국경없는의사회(MSF)가 지원하는 시리아의 서부 도시 홈스 알자파라나 마을 병원이 공습을 당했다. 구급대원 아흐마드 씨는 “그날 오전 9시40분쯤 헬기 1대가 이 마을에 통폭탄을 투하해 2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우리가 환자를 이 병원으로 옮기고 한 시간 뒤 병원에 통폭탄 3개가 더 떨어졌다”라고 증언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첫 공습 희생자를 도우려는 의료진을 노렸다며 크게 분노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마린 뷔소니에 시니어 코디네이터는 “민간인의 희망을 없애기 위한 심리전이다”라고 규정했다. 즉 어디든 따라가서 죽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 사람들을 절망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2015년 9월 러시아 상원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시리아 파병 요청을 승인했다. 냉전 시대를 주름잡던 두 나라,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화력 쇼를 벌이게 된 것이다. 러시아 전투기가 먼저 공습한 지역은 홈스였다. IS가 아니라 알아사드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반군의 근거지였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전통 우방이다. 미국이나 서방국가와 달리 러시아는 알아사드를 적극 옹호한다. 미국은 ‘IS 제거’를 위해, 그리고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는 ‘반군 제거’를 위해 폭격을 했다. 이렇게 시리아 내전은 프레임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전쟁이 되었다. 강대국 둘이 각자 다른 이유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기 때문에 시리아 내전은 끝날 줄을 모른다.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 역시 참혹한 결과를 빚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지난해 9월30일 러시아의 시리아 공습이 시작된 이래로 총 4408명이 사망했다”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민간인은 1733명이며, 아이와 여성이 각각 429명과 250명에 달한다. 놀랍게도 러시아 역시 통폭탄을 쓴다. 지난 9월 시리아 알레포에서 국제기구 구호물품 호송대가 통폭탄이 포함된 폭격을 받아 최소 21명이 사망했다. 벤 로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우리는 러시아 정부에 이번 공습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알레포에서 구급대원으로 일하는 알리 씨(32)는 “러시아 폭격기가 통폭탄을 떨어트린다는 것은 시리아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복잡한 시리아 내전에 네덜란드·덴마크·영국 등도 지난해 12월부터 뛰어들었다. IS 대원의 ‘귀국 테러(고국으로 돌아가 실행하는 테러)’에 당했거나 당할 위험이 큰 나라들이다. 이렇게 여러 나라가 시리아 공습에 참여하면서 시리아 내전은 더욱 엉켜가고 있다.

시리아 정부는 여전히 화학무기를 사용한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엔은 시리아 정부군이 최소 두 차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통폭탄도 모자라 화학무기까지 쓰며 민간인 지역을 폭격하는 것이다. 미국 CNN 방송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자국 영토에 염소가스를 투하하는 목적은 알레포나 이들리브와 같은 반군 장악 지역에 사는 민간인에게 공포를 퍼뜨려 이 지역을 떠나도록 하는 데 있다”라고 분석했다. 시리아계 미국인의료협회의 자하르 사흘룰 박사는 “어설프지만 잔인한 결과를 가져오는 가난한 자들의 화학무기다”라고 말했다. 이런 무기는 주로 어린이와 노인에게 피해를 주고 산소통 같은 의료물품이 부족한 동네 의료시설을 마비시킨다.

미국은 IS 지역을, 러시아는 반군 지역을 공습

2014년 4월, 유튜브에 푸른색 천에 싸인 아이들 10여 명의 시신이 병원 바닥에 나란히 놓여 있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이 점령한 알레포의 에인잘루트 초등학교를 공습해 최소한 47명이 사망한 어린이들 중 일부의 시신이었다. 폭격이 있던 날 아이들은 전시회를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시리아 국기 밑에 서 있는 자신들과 탱크, 전투기를 그리고 “시리아는 자유로워질 거예요”라는 글까지 썼다. ‘희망의 지문들(Fingerprints of Hope)’이라는 민간인 단체가 시리아 어린이의 심리 치료를 위해 준비한 이 전시회에, 사망한 아이들은 참여할 수 없었다. 시리아 정부군이 학교를 폭격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2013년 알레포 지역의 또 다른 학교에 통폭탄이 떨어져 어린이를 포함한 42명이 숨졌다. 홈스와 다라 주에서도 학교가 폭격당했다. 공습의 목표가 학교와 병원에 더 맞춰지고 있다.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지난 8월8일, 2011년 평화시위가 시작된 이래 7월 말까지 총 29만2817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통폭탄과 화학무기 혹은 어떤 다른 무기에 의해서든 시리아 인구는 두 달마다 1만명 가까이 줄어들고 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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