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울고 국민도 울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속으로 펑펑 울었단다.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은 2년 전 최순실씨 딸 정유라를 비호한 일을 사과하며 눈물을 떨궜다. 박 대통령이 회심의 카드로 빼들었던 김병준 총리 후보자도 울음을 삼켜야 했다. 이 정국의 깃털인지 몸통인지 모를 최순실씨도 기자들 앞에서 죽을죄를 지었다며 울먹였다. 원래 한참 울고 난 뒤 먹는 곰탕이 맛있는 법이다.

국민은 차라리 대성통곡하고 싶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 되려는 것 아니겠어요?”라고 4년 전 큰소리쳤던 분께서 “이러려고 대통령 된 게 아닌데”라며 울먹이는 모습 앞에 뒷목 잡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이러려고 시리즈’는 ‘우주의 기운’ ‘혼이 비정상’을 뛰어넘는 역대급 드립 등극이 예상된다.

울다 지친 사람들은 홍콩 말에 꽂혔다. 주성치 영화 따위에 자주 나오는 ‘하야(係呀:‘좋아’ ‘그래’라는 뜻)’라는 말 때문이다. 홍콩 길거리에서도 ‘하야~ 하야~’ 하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여기에 일본어 ‘하야쿠(はやく:빨리)’가 더해져 ‘하야쿠 하야’라는 아시아권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앞으로 있을 거리 집회에서 이 새로운 구호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중국, 일본 등 해외 언론의 취재 열기도 뜨거우니 꽤나 시의적절하다. “Do you know 싸이?”를 “Do you know 최순실?”이 눌러버린 마당 아닌가.


국민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국가 살림을 위한 돈을 어디에, 어떻게 나누어 쓸지 계획한 것이다’라는 국가 예산에 대해 물어보는 주관식 시험문제에 초등학생이 ‘최순실’이라고 답하는 세상이다(사진). 누리꾼들은 담임교사의 오답 처리에 아쉬움을 표했다. 서울 어느 중학교에서는 ‘대통령의 법적 지위’에 대해 쓰라는 문제에 대해 ‘최순실의 마리오네트(꼭두각시)’라고 쓴 학생도 나타났다. 세대와 계층을 막론하고 이게 나라냐며 시국선언에 거리시위까지 나서고 있다. 김수영의 시에 빗대자면 현 시국은 ‘풍자가 아니면 하야’다.

조롱과 풍자가 넘쳐나는 이유는 말하나 마나다. 박 대통령의 눈물 담화가 끝난 뒤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문득 옛날 노래를 떠올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1979년 발매된 송골매 1집에 담겼던 노래다. 제목은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김소월 시)’. 가사 일부는 이렇다. ‘고락에 겨운 내 입술로/ 모든 얘기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이 노래가 혹시 저항가요는 아니었을까.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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