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인터뷰 쇼의 세 번째 손님은 정치인이 아니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특별 인터뷰이로 마이크를 잡았다. 11월9일 서울 마포구 베짱이홀에서 11월12일 광화문 촛불집회를 앞두고 급히 편성된 ‘특별판’ 인터뷰 쇼가 열렸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기분파’ 김제동씨는 ‘시민으로서 보는 요즘 시국’에 대한 말을 이어갔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웃음과 환호가 끊이지 않았던 이날의 인터뷰 쇼를 재구성했다.

‘내 인생의 사진’ 몇 장을 준비했다.

(어릴 때 사진을 가리키며) 내가 저렇게 금수저였다. 저 팔각정 뒤에 말이 있어요(관객 웃음). 식구들한테 물어보니까 예전에 사진관에서 사진 못 찍는 가난한 집 아이들을 위해 저렇게 배경을 설치하고 다니던 차가 있었다고 한다. 그 위에 올라가서 찍은 거다. 저때도 나라 걱정을 해서 이마에 주름 깊게 파인 모습 보세요(웃음). 두 번째 사진은 방위로 군복무 중이거나 그 직후다. 군복무하면서 사복 입고 공연을 많이 다녔다. 장군님들 행사하러 다닐 때 사진이다. 소집해제하고도 ‘문선대’ 사회자가 없다고 해서 돈을 조금 받고 공연을 다녔다.

세 번째 사진은 동북아 역사기행이라고 독립운동 유적지와 고구려·발해 유적지를 돌아다닐 때다. 공부하러 간 거다. 날이 더워서 저러고 있으니까 한 중국인이 와서 막 삿대질을 하는 거다. 중국어 통역에게 물어보니까, 빨리 일하러 안 들어가고 뭐 하냐고(관객 웃음).

 

 

 

 

 

 


책 〈그럴 때 있으시죠?〉를 냈다.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니 ‘해리 포터’ 책에 밀렸던데.

영국에도 신들이 있어서(관객 웃음). 영국에서 해리 포터가 빗자루 타고 날아오면 방법이 없다. 원래 샤머니즘은 나쁜 거 아니다. 무당의 역할은 잘 들어주는 거다. 헌법 제9조에도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나온다. 종교 차원을 떠나서 그 시대 민초들의 얘기를 가장 잘 듣고 소화했던 게 하나는 무당, 하나는 광대다. 나는 무당이나 샤머니즘이 무조건적으로 매도되는 게 가슴 아프다(웃음).

지금 대통령을 옹호하는 건가요?

그게 샤머니즘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관객 웃음)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고. 지금 왜 제가 그분을 옹호해요?

사실 김제동씨가 지금껏 자기는 무당파다, 무당파다 했는데….

사람들이 나보고 좌파냐, 우파냐 물어서 ‘난 기분파다’라고 했다. 걸리면 다 쓸어버린다고. 또 넌 새누리당이냐, 민주당이냐 물으면 난 ‘무당파다’ 했다. 그런 게 어디 있냐 했는데…. 토크 콘서트·강연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했다. 사실 내 말이라기보다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집대성한 것이다. 무당처럼(관객 웃음). 자꾸 무당 이야기하면 웃지 마세요. 좋은 무당 분들 많다. 마이크 잡은 사람은 때로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줘야 하는 거니까.
 

ⓒ시사IN 신선영김제동씨(왼쪽)는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씨에게 3년6개월 동안 국정을 다 맡겨놓고 이제 시민이 국정을 말하려니 왜 못 믿나?”라고 말했다.

예전에 나(주진우 기자)와 함께했던 팟캐스트 ‘애국소년단’에서도 대통령을 지키자고 했다.

제가요? 대통령을 지켜야죠. 저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부터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공약했던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한다고 꾸준히 얘기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1공약이 원칙과 신뢰였다. 대통령 선서를 보면 ‘헌법을 수호한다’는 말이 나온다. 내 말인즉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대통령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지금 헌법을 지키지 않고 있으니까. 헌법 제1조 2항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그런데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사적인 권력으로부터 나왔다면 헌법 조항을 위반한 거다(이 대목에서 김제동씨는 마치 헌법 강연처럼 헌법에 대한 이야기를 조목조목 이어갔다).

개그맨이 정치 이야기를 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헌법 제35조 보면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고 나와 있다. 여러분, 지금 쾌적합니까? 광장에 나가야 하는데?(웃음) 헌법 제36조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왜 장가를 못 가는 것 같습니까?(관객 웃음) 연애할 시간이 없고 코미디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더 웃길 재간이 없다. 기자가 코미디언이 왜 자꾸 정치 얘기하냐는데 제가 그랬다. 정치인한테 가서 얘기해라. 정치가 코미디를 그만두어야 우리도 정치 이야기를 그만둘 것 아닌가. 직업이 심대하게 위협받고 있다. 공항에서 우는 거만큼 웃길 방법이 없다(관객 웃음). 검찰청에서 팔짱끼는 것보다 더 웃길 방법이 있습니까?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몇십 년 뒤에 보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큰일을 해낸 분으로 기록될 거 같다. 좌와 우를 통일시켰다(관객 웃음). 진보와 보수 언론을 통합시켰다. 자꾸 ‘하야와 탄핵 이후엔 어떡할 건데?’ 하는데, 심히 기분 나쁜 말이죠. 최순실씨에게 3년6개월 동안 국정을 다 맡겼으면서 이제 시민들이 국정을 말한다고 하니 왜 못 믿습니까? 최순실씨는 믿고 시민들은 믿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관객 박수).

 

 

ⓒ김제동 제공김제동씨가 꼽은 ‘내 인생의 사진’ 3장. 돌잔치, 군복무 중이거나 그 직후, 유적지를 돌아보며 중국에서(맨 왼쪽부터).

김제동씨 규탄한다며 행사장 찾아다니면서 시위하는 엄마부대라고 있는데.

엄마부대가 명동성당 앞에 오신 적 있다. 성당 수녀님이나 신부님께는 미안해서 제가 수녀님들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그때 수녀 80여 명이 서서 저한테 그래요. ‘제동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기도부대잖아요(관객 웃음).’ 종교인들이 저를 좋아한다. 북한산 밑에 진관사 스님들이 김치를 몇 년째 준다. 제가 교황님이 너무 멋있어서 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게 기사에 났다. 그런데 마침 스님들이 김치를 보내오신 거다. 미안해서 스님에게 기사를 보셨냐고, 죄송하다고 전화했다. ‘제동씨 세례 받은 거요? 죄송할 게 뭐 있어요, 우리가 영업을 잘 못한 거지’ 하시더라(관객 웃음). 수행자들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혹시 최저임금 얼마인지 아는지?

6030원이죠. 5580원에서 조금 올랐죠. 내가 사는 동네 볼링장에서 일하는 친구가 시간당 6500원 받더라. 그 친구에게 ‘최저임금이 1만원이면 어떨 거 같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너무 행복할 거 같다고 하더라. 그렇게 되면 아르바이트를 줄여도 될 것 같다고. 우리가 그거 못해줄까요? 자영업자들 부담 걱정하면 국가에서 나머지 돈을 보조해주면 되지 않을까. 4년 동안 청년 정책으로 17조원을 썼다고 하지 않나. 누군가의 귀한 아들딸, 누군가의 엄마 아빠가 나와서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가진 이가 경제정책의 수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말 하면 교수나 변호사 같은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야기한다’고 한다. 시민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면 ‘본업에 충실해라, 공부나 해라, 국가가 위기다’ 하는데, 그러면 그분들은 왜 학생들 안 가르치고 왜 법정에 가 있지 않고 뭐 하는 것인가? 엘리트들만 정치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 아닌가. 우리를 최순실씨보다 못 믿을 이유가 어디에 있나. 엘리트만의 시대, 정치인만 정치를 하는 시대가 끝났다고 본다.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8월5일 경북 성주에서 열린 사드배치 결사반대 촛불집회 중 김제동씨의 발언 장면.

이런 어지러운 시대에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좋을까?

버니 샌더스가 한국으로 귀화하면 좋겠다. 샌더스가 몇십 년간 일관되게 온몸으로 밀어왔다. 나는 그런 걸 품위라고 생각한다. 샌더스가 자주 ‘이걸 정의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거 보셨죠? 수많은 흑인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하느냐고.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바꾸자고 한다. 열심히 공부한 착한 애들이 하루에 한 명 이상 목숨을 버린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헌법 제4조에 나오는 평화통일의 정신을 실현시키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여기 계시는 분들의 칠순잔치는 금강산 가든이 아니라 금강산에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북의 정치적 통일은 뒤로 미루더라도 적어도 남북의 경제협력 교류는 할 수 있어야죠.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페이스북 생중계를 통해 독자의 질문이 왔다. 자꾸 이민이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트럼프 당선으로) 지금 미국 이민은 좀 힘들어졌다(관객 웃음).

사회적 발언으로 불이익을 많이 받을 거 같다. 그런 불이익 때문에 사회적 발언을 그만할까 하는 생각은 안 해보았는지(방청객 질문)?

불이익 받은 거 없다. 나는 늘 얍삽한 판단을 내린다. 힘 있는 쪽을 ‘쪽수’로 판단한다. 대통령 5년 권력보다는, 국회의원 4년 권력보다는 죽을 때까지 유권자의 힘 쪽에 붙는 것이 낫다. 또 금수저보다 흙수저 쪽에 파묻히는 게 낫다. 정의니 불의니 이런 차원이 아니고, 그냥 그래야 죽을 때 좀 덜 쪽팔리지 않을까?

평범한 시민이 조직된 시민의 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뭘 해야 할까(방청객 질문)?

주권자로서 너무 기죽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조직된 시민의 힘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개별적 개인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누구도 조직하려 하지 마라. 누가 조직하려고 조직된 거 아니다. 일상 활동을 하다가 재미있는 데 가고 싶다 하면 광화문에도 가고. 그러면 된다. 제가 얘기하는 것보다 여러분들이 훨씬 더 잘 아시잖아요.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은 늘 옳다. 사람들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으면 그건 무조건 옳은 거다. 계산하고 말고 할 게 없다.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분하고 억울하고 어이없을 때 소리치라고 광장이 있는 거죠. 앞으로 〈시사IN〉 인터뷰 쇼에 여야의 대선 주자들이 나온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끄지 않았으면 한다(인터뷰 쇼 동영상은 〈시사IN〉 페이스북(facebook.com/sisain)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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